만경대 리지 2003-12-14
정릉 길에서 올라서기 시작한 칼바위 능선의 제일 끝 봉을 탈 때만 해도 ‘이 정도 쯤이야…’ 했었다.
이 건 칼 바위라기 보다는 차라리 송곳 바위라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지난 주 산행하였던 신불산의 칼바위 능선에 비해서 허공으로 빠르게 쏟구친 그 모양새가 송곳에 더 가깝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산성 능선길로 접어들어 대동문에서 컵라면 국물에 밥 말아 먹을 때만 해도 오늘 산행 역시 보통 때와 별 다를 바 없는 것 처럼 보였다.
그냥 집에서 빈둥거리기 싫어 일요일 오전 느즈막 즈음해서, 가보지 않은 능선 길을 오르고 싶어 그렇게 나선 북한산행 이었다.
식사도 마치고 헤이즐넛 커피로 향을 음미하다가 뭐가 그리 아쉬운지 과자 몇 조각으로 계속 오물거렸다. 예까지 왔으니 의례히 백운대나 한번 오를 요량으로 북쪽 능선 길로 올랐다.
북한산 대피소를 지나 용암문을 오른쪽에 두고 얼마 가지 않았다.
용암문에서 만경대와 백운대 사이의 위문까지는 그 나마 비탈진 바위 옆면을 지나치기도 하고 가끔은 돌 계단으로 가야 하는 능선길 중 험로에 속한다.
서너번도 더 다닌 길을 걷는데 별 다른 느낌이 올 수도 없어 그냥 터벅터벅 발 걸음을 옮겼다.
그러던 중 오른편 위로 장엄하게 늘어선 바위 비탈과 그 위쪽 봉우리가 궁금 해진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하겠다.
45도 경사의 비탈진 바위 면을 오르는 것은 아무 문제도 아니다.
대략 100 미터 정도 올라가지 않았나 싶다.
하늘과 맞닿은 바위 끝엔 놀랍게도 조선 숙종때 축조하였을 성곽이 있었고 그 성곽 아래는 깊은 낭떠러지 이다.
굳이 이런 절벽에 성곽을 쌓을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엉거주춤하게 엎드려 엉덩이를 뒤로 잔뜩 뺐음에도 불구하고 벼랑 아래를 쳐다보는 것 조차 조심스러웠다.
사실 거기서 남들이 오지 않은 절벽 끝에 온 것 만으로 만족을 하고 기존의 등산로로 다시 내려 왔어야 했었다.
그 때였다.
예기치 못하게 저쪽 앞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웅성거리는가 싶더니 잠시 후 그 길로 무려 10 여명으로 구성된 일련의 무리가 성곽을 경계 삼아 지나쳐 온다.
한마디쯤 해주면 좋으련만 무심하기 짝이 없다.
힐끗 쳐다 보며 지나치는 그들을 향해 초보 등산객의 반갑고 불안한 마음은 그들이 지나쳐온 길에 대해 퉁명스럽게 말 동냥을 구했다.
마치 노련한 산 꾼인 것 처럼…
“이 길은 가이드가 있어야 한다.”
딱 한마디 하고 간다.
왜 난 그런 충고의 말을 귀하게 여기질 않고 직접 확인해 보아야 하는 그런 객기를 부렸는지 알 수 없다.
그랬다.
그들이 날개가 달린 것도 아니고 하물며 바위를 오르내릴 만한 별 다른 장비도 보질 못했다.
앞에 직벽으로 쏟은 바위의 오른 쪽으로 올라 붙었다.
그건 오른편의 바위에서 혹 떨어진다 해도 대략 3미터 정도의 낙하는 어느 정도 자세를 잡아 감당 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거기서부터 였다.
내가 선 위쪽으로 다시 3,4 미터 더 직벽을 올라야 하는데… 거기서의 낙하는 감당할 수 있는 높이가 아니었다.
이때만 해도 포기하고 다시 내려 서야 했었는데…
아니 사실을 말하자면 ‘그런 바위에 한번 올라서 본 적이 있다’ 라는 작은 만족만 얻고자 했음이 더 솔직한 표현이다.
허나 꼭 결정적인 순간에 내 의지와 상관없는 묘한 상황들이 전개 된다.
어디서 올라 왔는지 모를 3명으로 구성된 팀이 내 발 아래의 바위에 나타났다.
2년 전에 이 길을 갔는데 어디로 올라야 할 지 잘 모르겠다면서 직벽으로 선 바위의 왼 편으로 오른다.
거긴 오르기는 오른편 보다는 쉬워도 자칫하면 아찔한 벼랑으로 떨어지는 길이라 애초부터 내 계산에 넣질 않았는데…
사람의 심리라는 것은 자신의 의지 보다는 주변 상황,
그러니까 나 혼자 보다는 함께하는 동료가 있다는 것이 그런 용기를 불러 일으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팀원이 되면 서로에게 의지하는 그런 마음이 생기는 것인가 보다.
대신 올라가 줄 것도 아니고 어차피 자신의 힘으로 올라서야 할텐데도 말이다.
어줍잖게 그들과 팀원이 되기로 작심을 하고 왼편 낭떠러지의 바위 면으로 몸을 붙였다.
잡고 버틸 만한 돌출 부위도 없는데 손가락으로 바위의 작은 돌기를 후려 파며 딛고 올라서다가 어떨땐 손바닥을 좌악 펴서 바위의 편편한 곳에 강한 마찰을 주었다.
그건 교육은 아니고 아주 절박한 본능이었다.
살아 남아야 한다는…
그들 중 3번째로 겨우 올라선 바위 위 쪽은 또 다른 절벽이 놓여 있다.
오금이 저린다.
허나 이미 저지른 일이었다.
지금 여기서 어쩔 것인가.
따라 갈 수 밖에.
멀쩡한 길에서도 발걸음이 꼬이는 경우도 있어 넘어 지기도 하는데 하물며 사방 천지가 벼랑인 여긴 조금의 빈틈도 용납 되지 않는다.
리더도 길을 잘 모르는 듯 했다.
어렵게 택하여 올라선 바위 저편으로 이런 식 이나마 길이 계속 이어 진다면 다행 이겠지만 길을 찾지 못한다면 낭패다.
다행스럽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게 경험인가 보다.
길도 모르는 초보가 객기에 올라설 그런 길이 아니었다.
그것도 혼자서.
바위 중간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갇혀서 길을 찾느라 헤메이다 급한 마음에 사고 나기 십상이다.
건너편 바위 길로 가기 위해서 우측으로 깍아내린 벼랑 쪽으로 경사져 그 폭이 겨우 한 자 조금 더 될만한, 평지로 치면 세 걸음 정도 거리의 길에 접어들어서는 온 몸에 소름이 끼치고 아… 내가 여기를 왜 왔던가 하는 후회가 밀려 왔다.
말 그대로 벼랑 끝에 서기를 무려 다섯 번도 더했던 것 같다.
바위와 바위 사이에 크랙이 생긴 곳을 내려 올 때는 그 얼마나 안도가 되던지.
한쪽 어깨를 벌어진 크랙 속에 푹 묻고는 손바닥으로 한 면을 받치고 팔꿈치와 어깨로 낙하 속도를 조절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내려 설 때는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었다.
비록 한 걸음 비켜 선 아래가 낭떠러지라 해도.
그렇게 몸 한번 제대로 펴지 못하고 떨어지지 않은 발걸음을 겨우 겨우 옮기는데 또 다른 무리의 등반인 들과 마주친다.
폼 새를 보자 하니 중무장을 하였다.
우리가 올라 서려는 바위는 그들이 내려 서고자 하는 터라 자일을 옆의 우뚝 쏟은 바위 봉에 이중으로 둘러 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한다.
같은 조건이라면 오르는 것 보다 내려서는 것이 더 어렵겠다.
오를 땐 그나마 시야가 어느 정도는 확보 되지만 내려 설 때는 발끝을 지지 할 만한 작은 틈 조차 빠르게 훔쳐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 건 발 끝에 눈이 달리지 않은 탓 이기에.
어떤 바위에선 손톱 끝에 겨우 물릴 정도의 조그만 흔적을 더듬어 80도 각도의 바위를 손가락 바짝 세우며 손바닥 전체로 마찰을 주고 등산화 바닥을 최대한 넓게 하여 몸을 바위 면에 완전 밀착시켜 올라서야 했다.
그나마 아래가 벼랑이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등산화가 바위에 쫙 달라 붙는 느낌이 없으면 도저히 시도 못 하였을 것 이었음은 당연 지사다.
그렇게 넘고 넘어서다가 아주 아슬 아슬한 한쪽 벼랑 끝에는 다행스럽게도 앙카볼트로 양쪽을 지지한 길이 한발 짜리의 와이어가 있었는데 그 것을 잡고서 건너 가는데도 왜 그리 불안 하던지.
‘혹 앙카 볼트가 빠지진 않을까.
볼트와의 연결 부위에 두어 가닥 풀린 이 와이어를 믿어도 돼나’ 하는 못 미더움이 밀려 왔지만 여태까지 지나쳐 온 것과 마찬가지로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어떻게 순간 순간 그 험로를 지나 왔는지 모르겠다.
백운대 사이의 위문으로 내려 설 때에서야 비로서 흙을 밟을 수 있었다.
줄에 매달린 ‘진입 금지’라는 위험 팻말이 단지 경고만은 아니었다.
애초 생각치도 못한 만경대 바윗길의 아슬아슬한 행로에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온전한 길로 내려서서도 온 몸의 전율이 가시질 않았다.
얼마 전 백운대에서 만경대 쪽으로 바라 봤을 때 그 위로 올라선 어느 산악인의 모습에 ‘아니 어떻게 저런 곳에…’라는 의구심에 앞서 몹시 걱정스러운 눈 길로 바라 본 적이 있었는데…
백운산장에서 인도해 준 그 들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여전히 배낭 속에 남아 있는 커피며 간식 등으로 보답했다.
헤어질 때 제대로 인사도 못했다.
어느 유명 영화감독(씨받이를 찍었다)을 닮은 내 뒤를 봐 준 동갑내기인 그를 다음에 만나면 아주 반가울 것 같다.
휴---우----!!!!!! 십년 감수한 산행!!!!!
지금 이 글을 새길 수 있는 것이 그저 황송할 뿐이다.
생각 할수록 모골이 송연해진다.
색다른 경험이다.
아…. 그런데…. 그로부터 3일 지난 지금 이 건 무슨 심뽀일까….
‘릿지를 배우고 싶다.’
벼랑 끝에서 내려다본 산국에서의 호쾌한 광경이 눈앞에서 아롱거린다.
후기.
우이동 버스 정류장 옆에 있는 블랙야크 매장에서 지난 늦여름에 등산 정보를 줬던 정용기 대리가 나를 알아봄. 커피 한잔 대접받음. 달력도 챙겨줌. 그 매장으로 찾아온 60 초로의 소위 북한산 반바지라 불린다고 하는 호탕한 분을 소개 받음. 50 정도밖에 보이 질 않음. 대번에 친근감을 표시하는 그 분의 성함은 박동렬 씨 이고 전번은 016-704-5678. 겨울에도 반바지로 북한산을 오른다고 함. 걷어 올린 바지위로 드러난 장딴지의 알근육은 마치 아령을 박아 넣은 것 보다 결코 적지 않을 그런 알통이 박였음. 12/26일에 10시간 계획으로 불수도북을 감행한다고 함. 수 받들고 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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