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27 시간' 리뷰.

강기한 2010. 12. 13. 17:51

 

                                                   ▲ 영화 '127시간' 포스터                                                         

 

 

 

고산 등반과 관련하여 사선을 헤쳐온 숱한 산악인들의 체험들이 적잖은 책과 영화들로 소개된 있다.  아득한 단애 아래로 추락한 동료에 의해 벼랑 끝으로 끌려가던 절체절명의 순간에 자신이 살기 위해 함께 묶은 동료의 자일을 끊어버린 어느 클라이머의 행위가 선택 이전에 필연이라고 여긴다면 이게 잘못된 생각일까.  이와는 달리 홀로 등반 떨어지는 바위에 손목이 끼인 채로 6일을 버티다가 그 팔 스스로 자르고 탈출한 행위는 피할 없는 필연인가 아니면 선택인가.  선택이라면 누구나 있는 것일까.  파트너의 자일을 끊은 '사이먼' 그리고 자신의 팔을 자른 '아론', 그들이 바로 나라면

 

세상을 살아가는 누구나 원하던 그렇지 않던 간에 끝도 없이, 선택의 기로에 서며 자신이 택한 삶을 살아간다선택의 결과에 따른 책임은 자신이 져야 한다.  결과가 좋은 선택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영화 ‘127 시간 '슬럼독 밀리어네어' 아카데미상 8 부분을 수상한 '대니보일' 감독의 신작으로홀로 등반을 하려다 떨어지는 바위에 끼인 자신의 팔을 자르고 탈출한 '아론 랠스톤'의 충격 실화를 영화화 것이다.   무대인 말발굽 협곡은 황량한 벌판에 사람이 겨우 들어 있는 정도로 갈라진 땅이 지하 수십미터 깊이로 길이 나있다히말라야 빙하라면 눈으로 가려진 크레바스에 비유할 있겠으나 이건 감춰진게 아니고 오픈 되었으며, 그는 암벽으로 어프로우치를 하면서 곳으로 다니는걸 즐기는 했다.  

 

등반 중에 불의의 사고로 손이 잘려 나갔다면 차라리 시원했을게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말발굽 협곡으로 그가 홀로 등반을 하러 가는 도중에 침니로 떨어지는 바위에 손목이 끼이게 되고 이를 벗어나려 힘으로 바위를 들려고도 했으며 무딘 칼로 바위 틈새를 판다든지 그리고 자일을 위로 던져 어렵사리 걸린 확보지점을 이용하여 홀링으로 바위를 들어 손을 빼려 했으나거대한 바위를 들기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바위에 손목이 끼인 발짝도 없는 극히 제한적인 공간에서 자신이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하여도 어찌 없는 상황은 절망,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순간순간으로 스쳐가는 지난 날의 회상과 환상 끝에 결국 팔을 잘라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하기 까지 그의 내면에 쌓여 갔을 고통의 크기는 짐작만 뿐이다.   갈증으로 오줌을 마셔가며 구원의 손길을 기다렸으나 환각이 찾아 들고 이상 어찌할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게 되면서 결국엔 자신의 팔을 자르며 탈출한다는 내용이다.   차피 한정적인 시간 내에 소멸되며 꺼져가는 생의 마무리에 즈음하여 자신의 팔을 자르는 것은 선택이기 보다는 어쩌면 당연한 필연이지 않을까 

 

영화가 끝나고 시사회 장을 빠져 나올 동안,  나라면…?’ 이라는 화두가 슬그머니 떠오른 , 그건 여전히 선택사항이었다.  누군가 구조해 같은, 막연한 기대.

 

실화를 소재로 거의 모든 영화가 그렇듯이 주어진 화면과 제한된 시간 속에 모든 담기에는 어렵다.  대개가 원작으로 나온 책을 보는게 감동있게 다가온다. 영화도 다르지 않았다.  자신의 팔을 자르고 탈출에 성공한다는 소재의 훌륭함에도 불구하고 일인의 배우에 의존할 밖에 없는 등장인물의 특성상 배우의 연기, 특히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내면의 심리 변화를 묘사하는 부분에 대해서 절체절명의 순간을 마주한 자로 보기에, 그는 너무 담대했다.   아쉬웠던 장면들을 보자면,

 

떨어지는 바위에 손목이 끼일 순간에 감내할 육신의 고통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허나 영화는 고통을 관객으로 하여금 충분히 즐길 있는 여유를 주지 않고 촉스톤에 끼인 손을 빼려는 장면으로 연결시켰다.  그가 락음악을 즐기며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생을 즐기며 살아가는 자유분방한 자라 하더라도 생사의 갈림길에 처한 자의 행위라고 보기 어려웠다사실적인 측면에서 얘기하고 싶은 게다.

 

하나는 영화의 도입부에서 단독 등반을 즐기는 클라이머가 착각이나 깜박하여 챙겨야 장비들을 챙긴게 아니라 쉬운 곳에  상비되어 있어야 암벽장비들이 보이지도 않는 선반의 상단에 두어, 이것을 손을 더듬어가면서 챙기는 장면 또한 쉬 납득하기 어려웠.  결국 잘 벼른 스위스제 칼을 챙기지 못하고 무딘 중국제 칼로 팔조차 자르기도 어려웠다는 나중의 설정을 위한 것이라 여겨졌을 , 뒤늦은 실소가 흘러 나왔다.  사실여부를 떠나 그렇다 치고식의 익스큐즈가 영화 전반으로 몰입하는데 방해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말하고 있는가.  자신의 잘라야 하는 엄청난 댓가를 치루면서도 스스로 생의 끈을 놓지 않는 절망은 없다는 점을 그려 내고자 것은 등반인들 뿐만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누구에게나 시사하는 바가 있다.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포기하지 않는 삶에 대한 의지마저 외면하려는 아니라 비단 산에서만 그런 상황을 한정하기 보다는, 누구라도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떤 선택을 하던 그건 새로운 도전이라는 측면에서 생각해 보았다.  선택에 대한 결과는 어디까지나 자신의 책임임을 인지할, 그러한 '선택과 도전'은 숭고하지 않을까.

   

영화는 2011 2월에 개봉한다.  2003 4 25일 유타주 캐니언 랜드의 말발굽협곡에서 일어난 사고로 내용이 다큐멘터리로 소개되어 삶에 대한 강한 의지가 미국전역에 감동을 주었다고 한다.  원작은 '6일간의 깨달음'으로 책이 나온 지는 제법 되었다는데 읽어 보질 못했다.  책을 보면 리얼하지 않을까 기대한다.

 

 

 

 

  - ▼ 이하, 캡쳐 화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