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덕고개를 지나 국망봉을 향하여 시원하게 달려가는 한북정맥은 도마치봉에 이르러 그 힘 그대로 남으로 달려가는 정맥외에 좌로 별도의 맥을 분기시킨다. 화악지맥으로 명명된 이 능선은 석룡산을 지나 경기 최고봉인 화악산에서 그 위세를 마음껏 떨친다.
위치상으로 한반도의 중앙이며 사방으로 펼쳐지는 주변 고산을 굽어보는 눈맛이 그저 그만이다. 여전히 힘찬 그 맥은 가평과 화천을 잇는 실운현에서 잠시 고개를 숙인 듯 하다가 응봉에서 다시한번 솟구친 후 이내 남의 촛대봉으로 달려가서 동쪽의 가평과 서춘천을 잇는 홍적고개로 내려서면서 거친 숨을 고른다.
경기와 강원의 도계를 따르는 그 능선은 고개를 가로질러 동으로 재차 달려가고 여지껏 고산을 가푸게 오르내렸던 그 힘은 이 즈음하여 한결 유순해져, 너른 방화선이 길게 이어지는 이른바 몽가북계(몽덕산 가덕산 북배산 계관산)의 능선길이 남을 향하여 여유롭게 흘러간다. 주변으로 시야를 가리는게 없어 가을 억새가 간들거리는 능선 길 내내, 동으로는 호반으로 자리한 춘천이 지근이고 지나온 등 뒤의 고산준봉을 비롯하여 우측으로는 가평북면은 물론 사방 둘러 저 너머로의 산 들이 중첩하여 늘어서 있는게 유한 능선길의 산걸음이 한결 여유로워진다.
그리고는 계관산에서 지근인 작은 계관산에 이르면 길은 다시 두갈래로 나누어지는데, 본래의 지맥은 월두봉을 거쳐 보납산을 끝으로 가평천으로 녹아든다. 그러니까 화악지맥의 생성이 도마치봉이고 소멸은 보납산이다. 혹자는 작은 계관산(작은 촛대봉)에서 동남쪽 춘천방향으로 의암호에서 잠기는 삼악산을 말하기도 하더라. 능선 길이는 보납산 쪽이 더 길다. 그래서 그게 본류로 여기는지에 대해 아는 바 없으나, 길이가 길던 짧던 별 상관없다.
지난 4월 말, 작은 촛대봉(작은 계관산)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꺾어지는 내림길이 월두봉을 거쳐 물안산과 보납산으로 이어지는 걸로 짐작했다. 허나 대충 훑어 본 지도는 그렇지 않았고 오히려 직선에 가까웠다. 숲으로 가려진 우측 내림길의 발걸음이 영 시원찮은 건, 오만분의 일로 축소한 지도와 실제 등로와의 차이라고 홀로 자위했기 때문이다. 그렇기나 말기나 산걸음을 마무리하는 보납산을 내리면서 화악지맥의 끝이 가평천으로 잠기는 걸 확인했었다.
갈림길 이정표에서 망설였던, 바로 그 작은 계관산을 다시 간다. 잇지 못한 저 편 삼악산으로 향하는 길이 그리웠던 것이다.
버스하차 후 들머리까지의 어프로우치는 2시간 정도의 긴 거리다.
시골 길 담벼락의 가을 끝자락
노변의 시골집도 기웃거리면서 .
산아래 어느 외진 별장의 석조물 들.
근데 왠 모아이상 ?
이른 새벽 집을 나선 이 후 세 번이나 갈아타는 차편은 기다림 없이 바로 연결되었고 어프로우치가 1시간 이상 걸리는 개곡리 종점까지 지나가는 차량을 얻어 탈 수 있을 때만 해도 운이 좋았다. 억새가 끝물 이긴 해도 남겨 둔 삼악산으로 가는 걸음이 그 만큼 더 여유로울 수 있다.
도로 끝에서 빤히 올려다 보이는 작은 촛대봉을 향하여 산으로 드는가 했는데 이내 희미한 등로마저 사라졌다. 낙엽이 잔뜩 깔린 급사면을 그냥 치올리기는 하나 애써 딛는 걸음은 실속도 없이 반은 미끌어진다. 몇 번이나 사면의 나무에 등을 대고 숨을 몰아 쉬었다.
올라선 능선으로 지난 4월에 지나쳤던 월두봉으로 향하는 이정표가 반갑기만 했고 그 방향을 거슬러 한결 수월해진 걸음으로 도착한 작은 계관산에서 비로서 한숨을 길게 쉬었다. 산행 1시간 남짓이었다.
낙엽이 잔뜩 깔린 급사면을 간신이 올라서자 능선으로 닿았다.
좌는 작은 계관산으로 가며
우측으로 가면 작은 계관산에서 월두봉, 물안산으로 해서
보납산까지 이어가는 화악지맥의 끝구간이다.
산중에 왠 깔끔한 푸대가 있나...하며 들어다 봤다.
작은 계관산(작은 촛대봉)의 삼거리 이정표에 올라서면서.
억새가 길게 늘어선 저 끝으로 삼악산이 운무를 허리에 두르고 있었다. 날이 그리 맑지 않으나 이 정도를 보는 것만 해도 이게 어디 쉬운 일이던가. 작은 바위 위에 올라 저 편을 바라보며 긴 시간 게으름을 피웠다.
작은 계관산 바로 아래의 삼거리.
여기에서 월두봉으로 물안산, 보납산으로 가는 맥과
석파령을 거쳐 삼악산으로 가는 맥과 나누어진다.
작은 촛대봉(소 계관산)에서 보는 삼악산이 운무 위로 떠있다.
줌엎.
삼악산 정상인 용화봉.
흡사, 해무 속의 절해고도 같다.
꺼내 본 지도는 석파령을 지나서 삼악산을 오를 때 까지는 그야말로 산책로라 할 수 있을 만큼 완만하게 그려져 있다. 끝물이긴 해도 여전히 운치있는 억새풀 사이를 한적하게 걸을 수 있나 보다 했다. 그건 방화선 끝에 걸리는 산불감시초소에 와서도 그리 달라지진 않았다.
0
임도 저쪽 끝으로 산불감시탑이 보였다.
저 쯤에서 점심을 먹을까.
라면을 끓이고 국물에 밥을 말아서.
이제사 사진으로 보니, 우측 능선으로의 길은 뭔가.
초목은 늙어도 아름답다.
아니, 늙을수록 아름답다.
버너 불을 피우며 밥을 먹는 감시인 더러 석파령 방향을 물었으나 모른다. 재차 삼악산을 물었으나 저 아래의 마을을 가리킨다. ‘밥 먹고 있는데…’ 라는 무언의 모르쇠 내지는 ‘관심이 없으니 그냥 가시오.’ 다. 객 역시 몰라서 물은 건 아니다. 인사치레의 질문에 지나지 않는다. 나아가서 그는 산불감시인이 아니던가. 저 멀리서 내려오는 길이 아니라 올라오는 중이었더라면 아마 그는 팔의 완장을 휘두르며 한껏 본연의 임무에 충실했을지도 모른다. 고분한 태도를 내보이며 훤한 방화선 길을 다시 이어가는 객이, 유도리있는 그를 고마워 했다는 걸 그가 알까. “교전규칙대로…”를 운운하던 전 국방장관의 얼굴이 오버랩되었다.
저기 산불 감시탑을 지난 후,
그 넓은 임도 길이 끊어지는가 했는데 아예 길이 없었다.
두 어 번 왕복을 하다가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산행은 끝이 났다.
의도와는 상관없이...
길이 이상했다. 방화선이 끝나자마자 임도는 마을로 이어질 뿐, 산길은 더 이상의 흔적이 없었다. 두어 번이나 짧지 않은 거리를 왕복을 한다. 길을 잘못 들었다고 결론짓지 않을 수 없었다. 속이 쓰렸다. 아니 이 넓은 방화선은 뭐였던가.
그러고 보니 우측으로 앙상하기 이를 데 없는 나뭇가지였던가 아니면 억새였던가, 그 끝으로 볼품없이 몇 개 걸려있던 낡은 리본이 떠 올랐다.
막다른 능선 끝에서 허기진 배를 채운 후, 오를 때 보다 더 심한 급경사면을 내려설 동안 온 동네의 개들이 사정없이 짖어대고 있었다.
*
길없는 급 사면을 간신이 내려선 곳은 덕두원리 52번 버스 종점.
요즘 전국으로 유행하는 '길'이 여기에도 있었다.
'봄내길'... 춘천 출신의 소설가인 김유정의 이름을 딴 '김유정역'이 여기서 그리 멀지 않다.
아마 그의 대표작인, '봄봄'에서 따와 그 길을 연상시키는 듯...
그러니까, 억새가 핀 능선으로 산행도 했고,
둘레길 올레길 그런 도보여행도 한 셈이다.
'一切唯心造' 라 생각하면 되는가.
과연 그런가.
의암호 건너의 드름산.
드름산? Drop ...?
그러니까 산이 이어지지 않고 하나만 딸랑 떨어뜨려 놓은 듯 해서?
산의 6부에 돌출된 바위 꼭대기로 사람들의 움직임이 몇 보였다.
저기가 춘클리지인가 보다.
에전에는 없던 새로운 형식들의 문화가 이제는 어디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적당한 스토리텔링만 갖추면,
그야말로 '新 전설따라 삼천리...'
강촌역은 그래피티 문화의 자유구라 했다.
벽면으로 만화같은 그림들에게서 친근함이 아니라 거부감을 느꼈다.
원색적인 색감도 그랬었고,
정체불명의, 아니 원산지인 외국 슬럼가 뒷 골목을
그대로 따라간 듯한 식으로 역사의 벽면을 도배했다.
말하자면 여행에서 느낄 수 있는 어떤 정취나 그 지역 특유의 풍류가 없었다.
취향 문제인가.
아니면 세대차이에서 오는건가.
그러니까 '그래피티는 꼭 이래야 되는가' 라며 예술에 대해 문외한이 묻다.
Graffiti Art ; 벽면 등에 낙서처럼 긁거나 스프레이 등을 이용해 그림을 그리는 거리예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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