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설 속의 한강기맥(금물산) 그리고 구제역... 101231

강기한 2011. 1. 1. 15:48

 

 

 

 

뭐 어쩌다보니, 본의 아니게 기맥길을 걷고있다.

모른다 모른다 하면서 슬쩍슬쩍 발길을 들여 놓는 이 심사...

교통편에 무리가 없는 한 가는데 까지 잇기는 한다만 동진할수록 점점 어려워진다.

아무리 봐도 강원도 오지 근처에 가서는

두어번 정도는 비박마저 해야할지 모르겠다.

애고, 어떡하나...

 

*

 

대충 지도를 보아하니 삼마치에서 신당고개까지 22.4Km.

이건 하루에 무리다.

더군다나 걸음이 짧은데.

 

 그나마 교통이 좋다고 하는 상창고개라면 가능할 것도 같았다.

그래도 19.4Km.

다들 그렇게는 걷던데, 뭘...

 

*

 

홍천터미널에서 양덕원으로 가는 8시 40발 버스 승객은, 객 포함하여 둘이었다.

아니 홀로 라는게 맞겠다.

한 분은 버스 기사와 친분이 있어 바로 옆 자리에 앉아

이바구를 하고는 얼마 가지 않아 내리더라.

 

출발 후 딱 17분 만에 3거리에 도착한 버스는 회차를 하더라.

'그 참 노선이 짧기도 하구먼.'

바리케이트를 친 저리로 올라가면 상창고개란다.

그러니가 구제역으로 도로가 페쇄되었다면서...

 

*

 

그게, 칠십년대 초반쯤 되려나.

콜레라가 발병했었다.

부산일보 1면에 발병한 마을로 이르는 길목으로 바리케이트를 치며

도로를 폐쇄한 이따만한 사진이 내걸렸었다.

먹고 살만한 지금에서야 냉장고 없는 집이 없으며 샤워시설이 다 있어

청결이니 나아가서 자연환경보호니 하지만 어디 당시야 그런게 어디있나.

콜레라, 장티푸스 하면 온 나라가 떠들썩 했다.

신문과 라디오에선 연일 (당시엔 테레비는 귀했다)  '물을 끓 마시고 깨끗이 씻어며...'

병으로 죽은 사람은 있어도, 병 때문에 죽인 사람은 없었다.

 

맹렬한 기세로 번진 구제역으로 살처분한 가축이 백만마리쯤 된다나.

아니 이게 무슨 말인가.

큰일도 보통 큰일이 아니다. 

 

*

 

구제역 발병이후 통 산행을 못했다.

도심 인근의 산행이 아니고 발길 뜸한 곳을 주로 찾다보니

'혹 전염을 시킬 지도 모른니까 자제 해야지' 라는 이런 사명감 때문이라면

그래도 착실한 국민이겠는데, 아쉽다.

그건 아니다.

이런일 저런일, 그리고 무엇보다도 십이월 치고는 너무 추웠다.

겨울 아침 6시의 깜깜한 거리를 생각하면

따뜻한 이부자리를 박차고 나올 생각이 쑥 들어간다.

전날 밤 야무지게 마음먹지 않으면 헤롱헤롱한 상태가

쭉 연결되는 그 달콤함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못갔을 뿐이다.

 

*

 

눈 덮힌 산으로 인적이라곤 없다.

그 눈에 첫 걸음 새기며 산을 오른다.

 흔적이 없다해도 길 놓칠 염려는 없다.

국유지를 관리하는 기관에서 이정표를 곳곳으로 세웠기에 별 어려움이 없다.

한가지 아쉬움은, 아니 절대 바로 잡아야 될 것은 진작 필요한 곳의 이정표가 빠졌더라.

금물산에서 성지봉과 시루봉으로 갈라지는 3거리에서다.

그럴리야 없지만, 도심에서야 설사 길을 잃더래도 얼마든지 다시 찾아가는 거야 아무 문제도 아니다.

허나 산길은 그렇지 않다.

그 길이 아니면, 이게 전혀 예기치 않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산행하면서 예의, 그 알바라는 걸 하지 않은 분이 없겠지만

이거 한 번 겪고나면 맥이 다 빠진다.

위험은 둘째 치더라도 말이다.

 

*

 

그런데, '알바'

이게 뭔 말일까.

신종 산행 용어로 자리 잡은지 오래되었다.

첨에는 한참 헤깔렸는데 전체 문맥으로 봐서

제길로 못가고 엉뚱한 길에서 헤메는 걸 이렇게 칭하더라.

주업이 아닌 부업으로 하는 '아르바이트'를  줄여, 속칭 '알바'라고 하던데,

주 등로를 제대로 찾지 못하고,

가지 친 등로에서 헤메는 걸 그리 칭하지 않나 하며 짐작한다.

하루가 다르게 신조어가 생겨 나는데, 정신 바짝차려야 한다.

 

*

 

눈길 걸음이 더디다.

저 먼 아래 마을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눈 길로 인적은 없어도 야생동물의 흔적은 여럿있다.

눈위로 찍힌 발자욱도 선명한게, '웬 인기척' 하면서 막 사라진 듯 했다.

도심에 까지 내려오던 그 흔한 산돼지의 발자욱은 없다.

 '있으면 좋겠는데...'

,하면서 올라가기 좋은 등로 옆 나무를 끊임없이 찾고 있었다.

 

지난 해 겨울,

백둔봉에서 명지산으로 가다가 본 발자욱만 아니면 좋겠다.

크기가 내 머리통만 했다.

그것도 7개 뿐이었고 나머지는 홀연히 사라졌더라.

혹시나 하며 빙 둘러 나무 위를 쳐다볼 땐, 등골로 싸한 냉기가 흐르더라.

안그래도 짧은 목을 악착같이 어깨로 더붙였다.

 

 

작년 1월 17일 백둔봉에서 명지산으로 가는 외진 등로에서 찍었다.

 가지런하게 일자로 걷는 이 발자국의 주체는 뭘까.

 

*

 

간신이 금물산정으로 올라섰다.

갈기산이 뚜렷하나 이 걸음으로는 안된다.

 

4시간 걸렸다.

예상 소요시간에 비해 1시간 반이나 더 걸렸다.

 의욕만 앞섰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신당고개까지는 무리다.

 

'겨울산, 그리고 러셀...'

새삼 느낀다.

70% 만.

 

*

 

내려선 발귀현에서 마을로 이르는 도로는 폐쇄였다.

그러고 보니 그저껜가, 홍천군 남면으로 구제역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순간 겁이 덜컥났다.

 

하나는, '잡혀가면 어떡하나.'

또 하나는, '내가 옮기는 건 아닐까...'

 

*

 

바리케이트를 헤치고 어렵사리 접어든 마을은 인적이 없다.

고립되었다.

까만밤을 가르는 마을 길을 걷자, 개가 짖는다.

그 개소리는 점점 커지는가 싶더니

마을 벗어나는 한시간 이상 이나 끊어지지 않고 줄기차게 이어졌다.

 

손전등의 촛점을 하이 빔으로 맞추며

그 중 제일 사나와 보이는 한 놈의 눈으로 쏘았다. 

스틱 손잡이 줄울 손목으로 야무지게 움켜 감으며 그 기나긴 길을 하염없이 걸었다.

 

*

 

두어시간 도로를 따라 간신이 탄 양덕원으로 가는 버스는  

아침에 객을 상창고개 3거리에 내려 준 그 기사였다.

  

"저기 골짜기에 돼지 축사가 있는데, 2만마리 라더군요."

얼음이 가득 붙은 소독제 살포기를 지나면서 기사가 그랬다.

 

*

 

도로는 폐쇄한다지만 산길은 어떡하나.

그 많은 산행 버스가 전국으로 가서 수십만, 아니 수백만에 이르는

산객들이 무차별적으로 산야를 누빌텐데...

그리고 산행 들머리나 날머리는 어김없이 우사나 돈사가 있던데...

 

 

*

 

 

구제역으로 도로폐쇄.

 

 

강원도 횡성과 홍천의 군계가 지나는 상창고개.

좌는 금물산을 올라 신당고개로 이어지는 한강기맥의 서진방향이고

우로 가면 오음산으로 오르는 기맥길의 동진 방향이다.

 

좌로 간다.

목표는 신당고개~

 

아쿠등산화의 스위테라 스웨이드

첫 걸음이다.

 

뒤돌아 본 오음산 방향.

 

벤치의 눈을 쓸어 내고 게이터와 아이젠으로 무장했다.

 

아침 햇살이 내리는 설사면을 올라선다.

 

횡성의 상창봉리 마을

 

나타난 임도 저 앞으로 이정표가 보였다.

 

 

 

홍천방향

 

더 멀어진 오음산

 

 

 

눈 위로 첫 발자욱을 새긴다. 

 

산행 2시간 만에 능선으로 올라섰다.

 

눈 길 걸음이 더디다.

산행 3시간이 다 되어간다.

 

홍천방향.

중앙 좌측으로 솟은 봉우리가 갈기산이다.

 

금물산

 

금물산정.

 

성지봉은 기맥길이 아니다.

1.72Km 거리를 보더라도 기맥의 시루봉으로 표기해야 옳다. 

그러니까 誤記였다.

 

기맥의 이정표에 꽤 정성을 들였다는 느낌을 받았다.

심심하지 않을 정도로 세웠더라.

허나, 진작 중요한 50M 앞의 3거리에서는 이정표가 없더라.

자칫하면 직진하기 십상인데 직진하면 성지봉으로 빠진다.

3거리에서 우로 급하게 올라가는 작은 비탈의 리본을 따라야 한다.

 

금물산에서 시루봉으로 가는 길엔 이정표가 전혀없었으며

등로도 그리 시원찮아 내내 긴가민가 했다.

 발귀현 쯤 가야 제대로 길을 찾은 걸 알게된다.

 

성지봉 능선을 따라 경기도 양평과 강원도 횡성의 도계가 지난다.

따라서 금물산은 횡성군, 홍천군, 양평군의 접점인 三郡峰이다. 

 

 

중앙으로 보이는 갈기산.

저기를 넘어가야 신당고개로 내려선다.

허나 눈속을 러쎌해온 체력과 시간상 무리라는 판단이 이미 섰었다.

발귀현에서 탈출하기로.

 

 

 

바람에 부대끼는 단자함에 비쳤다.

좌는 금물산.

3거리에서 우로 꺾어 올라선 태양열발전기가 있는 철구조물 봉.

 

육산인 금물산에서 드물게 보이던 능선상 선돌.

 

 

 

성지봉 가는 능선길에서 흘러내리는 지릉

 

금물산 이후 부터 시루보에 이르기 까지는 조망이 좋다.

 

전망좋은 655암봉에서 사방으로 한바퀴 둘러봤다. 

 

금물산 방향

 

성지봉 방향

 

진행길 방향

 

시루봉

 

한층 가까워진 갈기산

 

임도로 내려서기 직전,

저 앞으로 뭔가 잽싸게 뛰어가는 듯 했다.

임도에 쌓인 눈 위로 노루 1마리가 달려갔다.

 

 

 

 

 

어지간히 해가 누웠다.

한 해가 저문다.

 

발귀현.

좌의 사면은 갈기산으로 간다.

도로 폐쇄 안내판이 서있다.

 

 

양평의 신론리와 홍천의 시동리 간의 도로는 구제역으로 폐쇄.

 

 

 

신론리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는  군 사격장으로 이어졌다.

나침판을 놓았으나 더욱 헤깔렸다.

 

1시간이나 왔다리 갔다리 하고는

 결국 발귀현으로 다시 되돌아가

길을 막은 몇 개의 바리케이트를 뚫었다.

단속한다고 누가 잡는다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간만에 나타난 마을은 인적이라곤 없었다.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던 길이 끊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또 걸었다.

길게, 아주 길게...

 

아, 차라리 야밤이라도 갈기산을 넘어갈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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