水山이 되어버린 관악산 斷想 100829

강기한 2010. 8. 30. 13:12

 

<서편인 삼성산 방향에서 본 관악산>

능선의 좌로 부터 통신철탑 그리고 바로 우측의 둥근 기상레이더,

안부를 지나 케이블카의 종착지인 KBS방송 중계탑.

좌측 산기슭의 건물은 서울 공대 캠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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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산, 그 강력한 火山

 

조선의 도읍이 한양으로 정해지고 정궁인 경복궁을 창건할 즈음, 정문의 방향을 놓고 조선의 개국공신인 무학과 삼봉은 서로 다른 주장을 펼친다.  그건 관악산 때문이었다.  경복궁에서 정남으로 위치한 관악산은 마치 불이 활활 타오르는 형상을 하고 있어 자칫 조정에 화를 미치게 되므로 동으로 정문을 내어야 한다는 무학의 주장에 대하여 삼봉은 궁궐의 문을 어찌 동향으로 하겠느냐 하며 남향을 주장하였다.  무학은 나말의 도선국사이래 풍수의 거두였고 삼봉 또한 대단한 풍수의 대가였다.  팽팽한 대립 끝에 남향을 정문으로 하여 경복궁을 건립하고 한양으로 들어오는 4대문을 풍수지리에 따라 세운다. 그 중 중심이 되는 남대문을 경복궁과 관악산을 일직선으로 잇는 위치에 세운다.

 


그 화기에 맞서라.

 

관악산의 강력한 화기를 막기 위해서는 보다 철저한 풍수지리가 동원된다.  음양사상에 따르면, 仁 義 禮 智 信은 순서에 따라 東 西 南 北 그리고 中央을 뜻하며, 南은 곧 불(火)을 뜻한다.  관악산의 화기를 막기 위해 남대문 앞에 연못을 파고 광화문에는 상상의 바다동물인 해치상을 세운다.  물로서 불을 맞서는 한편 숭례문의 ‘崇’자가 불이 타오르는 상형문자이고 ‘禮’자 또한 남쪽의 불을 뜻하는지라, 숭례문이라는 강력한 불의 기운으로 관악산의 화기를 막고자 했다.  그러면서 다른 대문의 가로 현판과 달리 숭례문의 현판은 세로로 세웠으니 이 얼마나 불에 잘 타겠는가.  즉 해치상과 연못으로 남쪽 관악산의 화기를 누그러뜨리고 최후로는 글 자체에서도 화기가 가득한 숭례문을 현판 마저 세로로 세웠으니 이보다 더 강력할 수가 없는 맞불작전이었다.  이로서 남대문의 고유명칭인 숭례문(崇禮門)은 음양오행에 따라 지어졌으며 또한 예를 숭상하는 유교 국가인 조선에 걸 맞는 명칭이 아닐 수 없다.  

 


관악산의 火는 禍로 이어졌다.

 

허나 이러한 비보풍수(裨補風水;땅의 기운이 부족한 곳은 보하고 강한 곳은 누르는 풍수)에 따라 관악산의 화기에 대비를 하였으나, 2차례에 걸친 피비린내 나는 왕자의 난이 당대에 있었으며 그 후로도 크고 작은 전화(戰禍)로 이어지다가 600여 년이 지난 몇 해 전, 급기야 방화로 인해 송두리째 타버리고 만다. 

 


이런상상.

 

광화문의 해치상이 이전되고 南池 연못도 메워진 탓에 화마에 전소되었다는 설도 있으며, 남대문을 건립한 삼봉 정도전은 후세에 남대문이 소실되면 나라의 국운이 다하니까, 이 때는 새로운 천도를 해야 한다고 했단다.  어쩌면 작금, 세종시로의 행정수도 이전에 따른 모종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을까… 하는 데에 생각이 미친다. 

 


물에 젖은 冠岳山을 간다.

 

7월에 이어 8월 주말에도 내내 비가 내렸다.  낮게 내려앉은 하늘로 검은 구름이 모여드는가 하더니만 이내 폭우가 퍼붓는다.  그렇게 쏟아지는 비는 잠시 그치는가 했는데 갠 하늘로 천둥이 치면서 또 한차례 소나기를 뿌려 대었다.  하루에도 여러 번 겪는다.  여름 소나기는 소 잔등을 가른다는 말이 있듯이 비가 내리는 지역 또한 국지적이다. 

 

일요일 오전 내내 비가 내렸다.  오후 4시.  비가 그쳤다.  잽싸게 등짐을 지고 전철을 타고  관악산을 간다.  거의 1년만의 걸음이다.  물 귀한 관악산에서 그나마도 큰 계곡인 과천 향교 앞을 흐르는 계류가 심상치 않다.  몇몇 하산하는 산 객들의 발이 제각각이다.    맨발로 내려오는 사람, 물에 흠씬 젖은 등산화를 신고 내려 오는 사람 그리고 드물기는 하나 그나마 말짱한 상태의 등산화를 신은 사람… 휴식을 취할 겸하여 등산화를 갈아 신었다.  헌 등산화를 여름의 계곡에서 신을 수 있도록 구멍을 뚫었었다.  계류를 건너는 징검다리는 이미 물에 잠겼으나 상관없다.  첨벙대며 들어가니 무릎까지 잠긴다.  계곡은 말할 것도 없고 등로도 물이다.  온 산으로 물이 철철 넘쳤다. 

 


역사는 흐른다.

 

며칠 전 총리를 비롯하여 새 내각을 구성하기 위한 청문회가 있었다.  이미 알려져 있다시피 여러 의혹들과 평소의 처신이 문제가 되어 줄줄이 중도 사퇴하고 만다.  관악캠퍼스 출신들의 굴욕이라는 짧은 신문기사를 보았다.  늘 타오르는 불꽃이었던 관악산이 이렇게 오래토록 물에 푹 젖어 있는게 그 이유 일까. 

 

그 보다 며칠 전 광화문 복원이 있었다.  경복궁을 가로 막고 서 있던 조선총독부(중앙청) 건물을 허물고, 원형대로 살짝 비켜서 복원을 하였다고 한다.  그건 관악산에서 뿜어져 나오는 화기를 비키기 위한 것이었다.  어찌되었건 역사는 흐른다.  

 

물에 잠긴 관악산을 심야에 간신이 벗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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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는 폭포가 되었다.

 

 등로는 물에 잠기기를 수 번.

 

 연주암 계단

 

 연주암 요사채 뒷편 

 

 연주암 경내.

 

 연주대로 가면서

 

안개 속의 범종각의 風磬

 

 연주암 대웅전 뒷편

  

 숲은 안개비로 어둡기만 하다.

  

 연주대.

그렇게도 붐비던 연주대에는 산객이 딱 둘.

 

안개에 잠긴 통신용 철탑 

 

 하나는 외로워서...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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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가 있으면, 딱인데.

   

'소녀와 가로등'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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