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국의 중심, 그 화악산정에서 ... 080119

강기한 2008. 1. 19. 23:07

 

 

 

*

 

 

딱 한 산객을 좀 전에 마주 지나쳤던 것 외에는 이 길을 걸었을 인적이 꽤 오래되었음이 틀림 없을 눈 덮힌 사면은 뭉그스레한 흔적만이 희미한 등로였음을 알릴 뿐, 훤한 대 낮이라고는 해도 겨울 산 속의 짙은 고독은 서걱서걱하며 발아래 엷게 부서지는 습설과 빈객이 품어 내는 거친 숨소리와 함께 내내 동행하였고 혹 뭔가 옆에서 어른거리는 것 조차 곁눈으로 나마 보기 두려웠던 것 인지 저도 모르게 자라 목을 앞으로 길게 내밀며 애써 덤덤한 표정으로 시야를 좁게 하며 길을 재촉하는 것이 그나마 외진 산 길을 홀로 가는 객의 마음이 편했으리라.

 

썩어 넘어진 고목 옆을 숨죽이며 지나치고는 저 편의 앙상한 가지 끝에 힘없이 붙어 있는 색 바랜 리본을 찾는 것 만이 적막하기 이를 데 없는 산중에서의 유일한 희망일 만큼 온 몸을 휘감으며 도는 긴장은 진작부터 팽팽하게 산 가득히 메우고 있었다. 
 
쉬밀고개에서 아래로 내려선 후 다시 올라야 되는 걸 수 차례나 본 지도를 잘못 기억했나 보다. 

석룡산에서 바삐 내려선 고개에서 '등산로 없음. 화악산, 중봉' 이라는 이정표를 보고 곧장 치 오른 것이 잘못이었을까.  

그건 3시간 이상 홀로 설산을 헤메이다 지친 탓 일 게다.
 
좀 그럴 듯한 자리를 찾으려 했으나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심설 산 중 어느 곳에서도 편안한 자리가 없을 듯 하여
조그만 바위 위의 눈을 건성으로 밀어 내어 상으로 하여 식은 밥 한 덩어리를 인스탄트 된장 국물과 함께 입으로 구역꾸역 밀어 넣고는 커피 한 잔으로 점심을 마무리 했다.
 
올라선 봉우리가 중봉이려니 하던 생각이 틀어진 것은, 아까 부터 철 구조물이 자리한 군 기지만이 눈에 가까이 다가 오더니만 여지없이 화악산 정상으로 안내되었다.

아무런 흔적 없는 등로 위를 무심히 발길을 내밀었다가 느닷없이 쑤욱하며 빠져 드는가 싶었는데 가슴까지 눈구덩이에 잠겨 버린다.   

놀란 마음에 본능적으로 깊숙하게 파묻힌 발걸음을 흐느적 거려보나, 어림없다.  

허공에서 헤엄을 치는 것과도 다름 아니다.
스틱의 아래끝 부분을 두 손아귀에 바투 쥐며 빠지기 직전의 둑에 찍으며 교통호를 간신히 벗어났다.  

어떡하나.... 백설 위에 이리저리 흩어진 노루나 고라니 따위의 발자욱을 따라 걸어 볼려고 하였으나 그 치들과는 달리 무릎까지도 더 빠져 버리는 통에 이건 꼼짝없이 눈속에 갇힌 꼴이었다. 
 
그렇게 산정에 올라섰다.
화악산이다.
중봉도 아닌 정상....1468M...경기 최고봉...
 
날이 흐릴 뿐 개스가 없어 동서남북으로 시선에 거침이 없다.

아마 저편으로 아련히 펼쳐지는 스카이라인은 민통선인 대성산 아래의 수피령을 올라 복주산을 일으켜 세운 후 여유롭게 흐르다가

하오고개에서 살짝 고개를 숙이는가 했는데 이내 광덕산으로 이어 받은 한북정맥이다.   

거침없는 능선이 시원하다.  

정맥을 살짝 비켜 자리하는 상해봉은 아스라한 쌍봉으로 자리하는 변격의 아름다움도 놓칠 수 없다. 몇해 전 가파른 암봉에서 내린 동앗줄을 잡고 오르던 기억이 있다.  

이내 고산능선은 화천으로 오르는 캬라멜 고개에서 잠시 숨을 고를 듯 내려 서다가 그도 잠시, 여지없이 백운산과 강씨봉 그리고 국망봉으로 쉼 없이 오르내리면서 서남의 청계 운악으로 맥이 이어지고는 서편으로 달려 간다.   

언젠가 저편의 국망봉에서 그리고 명지산정에서 바라보던 우뚝 쏟은 흰 봉우리가 눈에 확 들어차던 그 곳,

바로 여기 화악산정에서 예전에 익숙하게 더듬었던 능선을 되 바라 보는 맛이 새롭다.

 

둥그른 기상탑을 머리에 얹은 광덕산 저너머로 잔잔이 흐르는 저 능선은, 글쎄...금학, 고대산을 넘어 북한의 무슨 산이 되려나.

가평천 건너의 서남으론 경기 제 2봉인 명지산이 볼만하고 그 시선을 좀더 멀리 던지면 연인산의 여러 능선을 거칠게 오르던 기억들이 일어난다.


머나먼 남쪽으론 구름을 뚫으며 뾰족한 구조물을 머리에 이고 있는 것은 양평의 용문산이 틀림 없다.

 

지근의 정동으로는, 손에 잡힐 듯 꾸물거리는 하얀 능선이 이어지며 발아래 쏟은 저 군시설물이 있는 곳은 화악산의 지봉인 응봉이 놓여 있었고 그 능선을 계속 이으면, 촛대봉을 오뚝하게 빗어 놓고는 홍적고개에서 고개를 숙인 듯 하다가 다시 서서히 일어나는 저기는 방화선에서의 오르내림이 유순하였던 몽가북계의 여유로운 산행의 기억이 아스라하였으며, 그대로 달려 나간 선은 저 끝의 삼악산 등선봉에서 마지막 기력을 모은 후, 북한강 상류로 빠르게 녹아 들고는 강촌 너머의 검봉과 그 뒤의 홍천에 이르기 까지 ...그야말로 일망무제.

 

주변 산국을 조망하며 그 중심에 홀로 서 있는 객의 마음은 무량하기 그지 없다.

 

길을 찾고자 되돌아 나간다는게...그게 작은 봉 9부 능선을 한바퀴 돌고 만다.
아무런 흔적도 없는 눈 길을 다시 되돌아 가느냐 아니면 지근의 저쪽에 있는 중봉으로 가서 등로를 찾느냐 하는 짧은 선택의 기로에 선 것은 여지껏 헤쳐 올라온 돌아가는 저 길이 그리 만만치 않았던 것이, 어쩌면 '설마 군인들이 민간인들을 어떡하겠어' 라는 배짱...

그런 작은 거 하나 믿고 군 경계 철조망을 손으로 잡고는 중봉으로 긴 트레버스를 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철조망이라는게 그 너머 들어 오지 말라는 의미에서 있다고 봤을 때 '그 경계를 간다 한들 무슨 문제가 있을 것 같지는 않으리라' 라는 그런 믿음.
 
그런데 그게 그리 간단한게 아니었다.

산의 형세에 따라 놓여진 철망을 오르내리는 이게, 머리를 들이 밀며 잡목을 헤치려고 하다가 가지에 걸려드는 성가심은 그려러니 하더라도 발아래는 적어도 무릎까지 빠지는 눈 구덩이를 올라설 재주가 없는 지라 왼 손가락과 오른 손가락을 번갈아 가며 철 경계망으로 넣으며 체중을 지탱하는 참으로 더디고 더딘 길도 아닌 눈구덩이를 헤엄치며 가는 형세는 마치 수영이 서툰 자가 코밑에서 날름거리는 물을 멀리하고자 발 끝으로 간신히 버티며 허우적 거리며 걸어가는 꼴상 사나운 그 걸음마.
몇 걸음 되지도 않는 거리를 무려 한시간 반이나 용을 쓰며 중봉에 도착했다.
 
막차 시간까지는 1시간 20분 가량이 남았다.
굴러 떨어지듯이 산을 내려서나, 관청리로 향하는 큰 골 계곡을 이리저리 건너다가 어느새 사라지고 마는 희미한 등로에서 몇 번이나 애를 먹는 통에 걸음이 더디나, 무심한 산골은 어김없이 어둠을 내어버리고 만다.

엷은 달빛은 백설에서 부서지며 되 피어나 그나마 랜턴을 쓰지 않아도 될 정도는 되었다.  

내려가는 길도 아득하다만 무사히 내려선다 하더라도 가평까지 끊어진 교통편은 어찌 할 것인가.
 
도로의 외등에 희미하게 놓여진 관청리 보건소앞.
날아 가듯이 옆을 스치는 승용차에 간간이 무안을 당한 후, 얼마 지났을까.
소형트럭을 기어이 히치 하고는 가평까지 와, 정체로 멈춰서 있던 청량리 행의 버스에 간신이 몸을 실었다.

승객이 드문 버스의 좁은 좌석 한 켠에서 그제사 긴 시간을 함께한 긴장이 빠져 나갈 수 있도록 고어자켓과 등산화를 벗으며 무장을 해제하고는 비스듬히 몸을 뉘였다.

 

사례를 마다하는, 긴 시간 트럭 옆자리를 내어 준 말 수 적은 젊은 분의 호의가 따뜻했다.

 

 

 

*

 

鳥舞樂 산장 

 

 

 

석룡산정 

 

쉬밀고개(방림고개) / 우측이 화악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고 중봉으로 가는 우회길은 아래로 내려서야 한다. --> 모르고 능선으로 갔던 것이 더 나았었나? 

 

화악산

 

 

 

 

 

 

 

 

매봉(鷹峰) 

 

촉대봉과 그 너머 봉의 허연 곳이 아마도 북배산정으로 오르는 급사면의 등로...

 

먼저 지나간 이 놈은 어떻게 안 빠지고 다녔을까...(이 발자욱 뒤를 따라 철멍을 잡고 중봉까지 갔다)

 

너무나 반가웠던 중봉...(그 곳엔 등로가 있기 때문에....) 

 

정남으로 봉우리만 보여주는 양평의 용문산 (주밍하였다) 

 

                                

                                                                                                              

 

 

07:10   청량리 출발 (1330-3)

08:50   가평도착

09:00   가평출발 (33-3)

09:50   용수동 종점

10:00   38 / 조무락골 입구

10:15   조무락 산장

11:22   능선 이정표

12:22   1100

12:35   석룡산

12:58   쉬밀고개(방림고개) / 화악산방향으로 능선을 (등로 없음)

13:30   점심

14:02   헬기장

14:43   화악산(군부대도착) / 9 능선  눈구덩이에서 알바 30

15:10   군부대 철망 옆으로

16:23   중봉

18:15   관청리 (큰골로 하산)  /  산행시간 8시간 15

18:35   소형트럭히치

19:05   가평에서 1330-3번을 도로에서

20:45   청량리 현대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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