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 전 안경다리가 부러지고 홍천군에서 올린 버스 시간표가 맞지 않아
서석까지 택시로 간 것부터 스케줄이 틀어지기 시작한게
나중 고단함의 전초였다는 걸, 알지 못한 건 당연한 일.
택시비 삼만오천원.
그것도 천원 디스카운트 받아서...
그간 이사가고 짐 정리하너라 가지못했던 산병이 단단히 도졌다.
3월말 경 관악산 칼바위능선으로 지기들과 함께 화기애애하게 다녀오긴 했어도,
그건 산행이라기 보다는 친목도모를 위한 봄 야유회 비스무리했으며
그 직전의 치악산 시산제 역시 산행으로 볼 것도 아니었고
천안 광덕산에서 설화산으로의 종주 정도가
그나마 다리에 힘이 들어간 산행으로 칭할 수는 있어도
아무래도 기맥길의 오지산과는 강도나 느낌에서 비할 바는 아니다.
그러니까 입맛맞는 산행이라곤,
지난 3월초, 깍아지른 설산 오름길 수리봉에서의
기맥길 산행 이 후 한달도 더 지났다.
몸이 달았다.
급히 동한 칼바우님과 홍천행 막차에 몸을 싣고는
터미널 인근의 어느 후줄그레한 찜질방에서 짧은 밤을 뒤척였다.
*
생곡리에서 보는 구목령
원주에서 출발한 5시40분 버스는 서석을 경유하여 생곡리까지 들어간다.
홍천군 내면 생곡리는 구목령으로 이르는 유일한 길목이다.
애초 원주에서 이 버스를 타려했으나 생곡리에서의 어프로우치가
시간상으로나 비용상으로도 유리했기에
홍천군에서 올린 배차정보는 그야말로 딱이었었는데...
이미 틀어져 버린 스케줄이긴 하나
그래도 칼바위님의 잔뜩 이골난 씩씩거림은 사납게 다가왔다.
"서석에서도 버스 연결 안되면 오늘 산행 포기할꺼여..."
생곡리의 밭으로 뿌리는 봄 햇살
부실한 차림으로 서석에서 버스를 기다리면서 행여나 하며
지난 겨울 야밤에 S.O.S를 받고 먼드래재에서 픽업해 준 파출소를 찾았으나 근무자가 다르다.
이른 아침 썰렁한 찬공기를 피하려 했었는데,
그만 머쓱해져 그냥 되돌아 나오자 바깥공기는 한층 더 썰렁해졌다.
7시가 채 되지 않아 도착한 버스는 이방인 둘만 태운 채,
운두령으로 이어지는 56번 국도를 타는 듯 하다가
이내 우측으로 꺾어 작은 공그리 다리를 건너고는
아침 물빛이 수면으로 부서지는 생곡저수지를 지나친다.
산골마을로는 봄이 완연하게 내려 앉아 있었다.
괭이눈
구목령까지는 대략 7Km.
마을을 벗어나 산으로 접어드는 긴 시간 동안 인적은 없었으나
예의 시골 집집마다 키우는 개들만이 이방인을 향해
릴레이를 하며 짖는 개소리만이 이른 아침의 산골 마을로 가득찬다.
사면을 치고 오르자 이어지는 소로.
구절양장같은 임도를 벗어나 골로 이어지는 리본을 따른다.
잘하면 구목령까지 어프로우치 시간을 단축할 수 있겠는걸...
허나 그건 희망사항일 뿐 이었다.
구목령까지 꼬박 2시간 걸렸다.
한가지 소득이라면, 다음 어프로우치시에는
임도를 가로지르는 지름길로 갈 수 있겠다는 정도.
비록 급사면이긴해도.
생강나무꽃.
산수유와 엄청 헤깔리더라.
해서,
산수유는 산이래서 높고, 생강나무는 강이래서 낮다.
꽃이 달린 길이를 기준하여, 나름대로 이렇게 구별하고 있다.
구절양장같은 구목령 정상에 2시간만에 도착.
좌는 동진으로 운두령으로 이어지고, 우는 서진으로 먼드래재로 이어지는 구간이다.
먼길을 가야하는데 구목령으로 이르는 산길은 길었다.
허나 4륜차 아니 일반 승용차라 해도 오를 수 있을 정도로 비포장 임도는 양호했다.
임도를 가로지르는 땅밑으로 두더쥐가 지나간 흔적이 많다.
'인적도 드물어 편하게 위로 다녀도 될텐데 뭣하러 굴을 파고 다니는감.
그리고 임도위에 죽어 널부러져있는 저 놈은 어인 일일까'
한강기맥의 애로는 아무래도 교통편이다.
그래서 홀로가는 산행은 예사로 어렵지 않다.
본 구목령 구간은 그 중에서도 가장 교통편이 곤란한 구간이다.
그래서 팀을 이루어 대절 차편을 이용할 수가 없다면
갈아타는 건 그렇다손 치더라도 어프로우치를 위해
긴시간이 걸림은 각오해야 되고 경우에 따라선 택시를 이용해야한다.
경기도계를 벗어난 비슬고개에서 신당고개 그리고 상창고개와 삼마치를 지나 먼드래재...
그리고 이번 구목령까지 오면서 교통비를 포함한 여타 비용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다음번 역시 구목령에서부터 동진하여 운두령까지 이으려 하는데
이건 단 걸음으로는 거리상 무리이고 중간쯤 산에서 비박을 하려한다.
물론 늘어난 짐에 따라 등짐의 크기도 2배쯤 되겠지만
신록으로 덥힌 산에서 저 산마루를 붉게 물들일 저녁노을과
까마득한 저 아래 마을의 희미한 불빛에 묻어나오는 이야기를 엿 듣고 싶다.
그리고 고산의 이른아침,
동해를 뚫고 솟아오를 일출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몸이 단다.
별이 총총한 밤하늘 아래에서,
밤새 이런저런 사연들도 색다른 맛이 날게다.
모르긴 해도 긴 밤이 날 밤이 된다한들 그게 뭔 대수겠는가.
... 아니, 그건 곤란하겠다.
청명한 하늘 아래의 거목.
능선길은 대체로 완만했다.
구목령만 해도 800고지를 상회하므로 1,000미터 내외의 산길은 여유로울 수 밖에.
간간이 등로 옆으로 얼굴을 내민 봄꽃들을 찾는 재미도 쏠쏠하고
왠만한 참나무 가지 끝은 겨우살이가 잔뜩 달려있는게
'아, 여기가 심산오지였구나 !'
얼레지.
온 산으로 걸쳐 딱 한송이 봤다.
고개를 수구린 것 까지는 좋은데, 제껴도 너무 제겼다.
그래서 가끔은 민망하더라.
키작은 산죽이 능선을 따라 쭉 이어졌다.
남측으로 가까이 보이는 태기산의 풍력발전기.
발걸음 돌리자마자 이내 터졌을 얼레지.
군락으로 피는 다른 곳과 달리 딱 한송이씩만 있더라.
능선은 대체로 완만했었다.
단, 운무산 직전까지만.
평창, 홍천, 횡성군의 3접점인 삼계봉.(三界峰)
'三道峰'을 보더라도, 차라리 '三郡峰'이 더 어울릴 것 같은데...
삼계봉에서 태기산이 있는 영월지맥으로 분기한다.
최고봉인 덕고산(1,125M)
감질나게 보이는 봄 꽃에 눈 맞춤하느라
가끔은 배를 낙엽 위로 깔고 거친 숨을 멈추며 포커싱을 하자
온 몸으로 힘이 잔뜩 들어가다가
급기야는 우측 가슴에서부터 뻐근함이 번져나온다.
그랬기나 말기나 날렵한 자태로 고개 숙인 얼레지,
바이올렛 빛깔의 쫑긋한 귀를 세운 청노루귀가 반갑기만 했고
퇴색된 낙엽더미 속에서 노오란 금빛을 품으며 올라 와있는 복수초는 신비감마저 들었다.
단지 애로는, 오름길에서는 몰랐는데
내림길에서 오른쪽 둘째 발가락 등이 까진 통에
엉거주춤한 자세로 내린 걸음을 딛너라 허벅지로 괜한 힘이 드는 정도.
등산화를 벗고 반창고라도 붙일까 하다가 그대로 진행을 한다.
청노루귀.
노루귀.
봉복산 갈림길의 이정표.
복수초.(福壽草)
풍력발전기가 능선으로 늘어서 있는 태기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웠고
봉복산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만큼, 기맥의 3거리에서 단숨의 거리였다.
지난 구간과는 달리 산림청에서 반듯반듯하게 정비한 이정목이 아니더라도
두어군데의 3거리 외, 능선 길 내내 외길 일색이어서 길을 놓칠 염려는 없었다.
발아래로 보이는 청량저수지.
원넘이재
운무산.
100 미터 뚝 떨어졌다가 바짝 세운 200 미터는 더 올라야했다.
아... 그러나 안부에서부터 시작된 양다리의 경직.
그 이후 최악의 연속.
운무산이 빤히 쳐다보이는 지봉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는 까진 발가락에 반창고를 붙이자
뚝뚝 떨어지는 내림길이 한결 낫다.
노루귀.
이 때까지만 해도 오지 기맥길의 호젓함으로 모처럼의 산걸음엔 활력이 넘쳤다.
전혀 예상치 못한 낭패가 시작된 시점은
운무산으로의 오름이 시작되는 황장곡으로부터
한무리의 단체 산객들이 올라서는 것과 거의 동시였다.
양 다리로 순식간에 근육이 경직되면서 극심한 통증이 몰려왔다.
새어나오는 비명은 어금니로 틀어 막어면서
간신이 등짐을 내리고 채혈침을 꺼내어 바지 입은 채로 사정없이 찔렀다.
잠시 통증이 물러나는가 하여 걸음을 다시 옮기려 하자, 어림도 없다.
깎아지른 암봉으로 솟은 운무산은 손 짚으면 땅 닿을 정도로
이전과는 판이하리만치 등로를 바짝 세우고 있었다.
시원한 반바지 차림으로 앉은 젊은 서양친구의 눈 인사는 애써 외면했는데,
"하이" 하며 손까지 까닭이며 환한 웃음을 띠워 보내는
서양 처자는, 날더러 대체 어쩌란 말인가.
하는 수 없이 웃음으로 보답한다고 했으나,
'아, 이건 아니다.'
잔뜩 일그러진 표정은 스스로 느끼고 있으니.
'난 말이여 통상적으로 힘든 그런 산행의 고통은 아니란 말이여...'
운무산의 고사목.
雲霧山.
홍천과 횡성의 군계가 지난다.
시도군의 경계에는 늘 이런 식이다.
어떻게 운무산을 올라왔는지.
침을 찌르는 순간은 잠시 풀리다가 이내 뭉치기를 수 번. 양 허벅지를 빙돌아가며,
그러니까 다리의 근섬유다발이 번갈아가며 경직을 하며
때로는 양다리에 때로는 한다리에 쉴 새없이 문제를 일으키면서
통증은 점점 더 심해져가고...
정상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자 풀리는 듯한 다리는 잠시 뿐.
내림길에서 이내 다시 뭉치며 참기 어려운 통증이 동시에 몰려왔다.
'...어떻하나 '
늦게 그 사실을 알은 칼바위님께, 고민 끝에 먼저 내려가라고 했다.
허나, 이건 진심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혼자였다면 더 편했을 것 같다.
보조를 맞출 필요없이 충분한 시간을 두고 경직된 다리를 풀 수 있을테니까.
침으로 찌르고 다리를 주무리고 간신이 한발 한발 디디다가
약간의 경사면에서는 도저히 걸을 수가 없어 마냥 서 있을 뿐.
'아, 이걸 어떻하면 좋을까...'
운무산은 2등 삼각점으로 조망이 좋다.
능현사로 빠지는 3거리.
오르내림이 심한 능선을 계속이으면(3Km) 먼드래재로 간다.
통증이 시작된 이 후, 3시간 이나 쉬다가다 하면서, 더 능선길을 이었으나
운무산을 전후하여 산길은 이전과는 달리 격한 오르내림이 많았다.
먼드래재를 3Km 앞둔 갈림길에서 속실리로 내리는 능현사 방향으로 탈출을 했다.
계획된 산길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없진 않다.
허나 그 까짓건 별 것도 아니다.
산행이 늘 좋지만은 아니라는게 새롭다.
예기치 못한 버스시간의 오류,
그리고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체력.
... 그보다는 마음이 아프다.
산은 또 다른 교훈을 줬다.
해는 저물고...
마지막 햇살이 산으로 드리운다.
노후를 보내려 은퇴후 집을 지었다는 분의 차를 얻어타고 19번 도로까지 나왔다.
*
서석에서 원주로 넘어가는 막차 버스를 탔다.
귀경 차표를 끊어 놓고 미리 따신 밥을 시켜둔 쵸이님을 원주 역전의 해장국집에서 만났다.
그리고 전화로 수차 염려해 준 칼마님으로부터
헐렁해진 마음을 위안 삼았다.
*
근데 이게 뭐냐.
흡혈진드기.
귀가 후 샤워를 하다가 옆구리에 대가리를 박고 있던 걸, 어렵사리 떼어내었다.
날카로운 포크같은 이빨로 살을 뚫고 8개의 발로 살을 움켜잡고는 체액을 빤다.
간신이 떼어낸 자리의 중앙으로 구멍이 뚫렸고
전체적으로는 불에 달군 쇠젓가락으로 지진 듯, 흉하기 짝이없더라.
물렸다는 아무런 감각도 느끼지 못했는데, 뭐 별일없겠지.
아마 그럴꺼야.
글쎄 그랬으면 좋겠는데...
딱딱한 플라스틱 조각을 집은 듯, 왠만한 압으로도 어찌할 수가 없더라.
음식물 공급을 끊었더니 만 하루가 더 지난 뒤에서야 비로서 죽더구먼.
*
... 4월은 여전히 잔인한 달일까.
*
April - Deep Purple -
***
여행을 함께 가보면 동행한 이의 다른 면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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