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의 산...소구니,마유,용문 100220

강기한 2010. 2. 22. 13:07

 

 

'농다치 고개' 는 시집가는 새색시의 혼수품으로 장농을 운반하다가 좁은 산길에서 행여 농에 흠이 날까봐 조심스레 옮겼다는 데서 그 유래가 있었다.   고개는 중미산을 사이에 둔 북편에서 오르는 인근의 서너치 고개와 더불어 양평의 소구니산을 서편에서 오르는 주요 등로다.    서너치고개 역시 깊은 산골에서 쳐다보는 하늘이 겨우 서너치(3,4 寸) 정도 밖에 안된다는 그럴싸한 전설이 있었다.   혹자는 지근의 어비(漁飛)산에서 짐작되는 신선한 물고기라는 선어치(鮮漁峙) 라고 칭하기도 하나, 그게 쳐다보는 하늘이 서너치 만큼 좁던 아니면 날아 다닐 만큼 원력좋은 물고기 였던 간에 전해 내려져 오는 고개이름이 이 정도의 풍류를 담고 있다는게, 그 고개를 지나치는 길손에게는 흥미로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양평에서 청평으로 잇는 산도로를 여전히 고단한 발품으로만 다니는 이는 없겠으나 도로가 닦이기 이전의 좁은 고갯마루에서  나누었을 이런저런 얘기들을 상상하면서 버스를 내리는 고개마루로 아련한 정취가 전해져 왔다.    차를 타고 뉘엇뉘엇 넘어간다손 치더라도 두 고개마루에서 잠시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려 기지개를 펴며 맑은 산기운을 가슴 깊이 들이키고는 이리저리 열리는 산아래의 마을로, 때로는 하늘을 가르며 중첩되어 버티고 서있는 저편 산능선으로 여유롭게 시선을 던져도 좋겠다.  그건 이 길이 아니면 갈 수 없는, 청평에서 양평을 바로 잇는 특별한 볼일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말하자면 양평이나 가평 쪽에 볼일이 있는 자라면 적어도 큰 길을 두고 이런 산길을 부러 찾아 오지는 않을게다.   쭉 빠진 도로로 잽싸게 길을 가느니 보다는 가끔은 예정에 없는 이런 길에서 게으름을 피울 수 있는 여유 정도는 있어 줘야 한다.   더군다나 먼길을 달려와서 힘겹게 땀을 흘려가면서 산을 찾는 이라면 더더욱...

 

 

 

구글어스로 본 산행행적

 

  

 

용산역에서 6시 43분에 출발한 전철은  8시가 잠시 지나자  양평역에 도착하였다.    역은 지난 연말에 수도권 전철이 용문까지 연결되면서 신청사로 말끔하게 꾸며져 있었다.  양평으로의 접근은 그 이전에는 중앙선 기차를 타거나 시외버스 정도로 올 수 있었는데 이제는 한결 발걸음이 가벼워 졌다.   당연히 교통비도 절감이 되고.  

 

양평에서 설악을 거쳐 청평으로 가는 험한 고갯길을 넘는 시골 버스는 여전히 하루 4,5편에 불과한 지라, 양평에서 소구니산이나 유명산을 찾으려면 시간표를 잘 맞추어야 한다.    물론 반대 편에서 오는 청량리에서 청평을 거쳐오는  대중교통편을 이용할 수도 있지만 여러모로 보나 시간적으로 잘 맞지 않는다.      양평 버스 터미널에서는 8시 30분에 고개를 넘어가는 버스가 있다.    터미널은 역에서 1Km 남짓하므로 역의 우측 게이트를 빠져 나와 잠시 걸어가면 인근의 터미널에서 제시간에 버스를 타는데 지장이 없다.       

 

37번 도로를 따르는 버스는 양평읍을 거쳐 이내 산길로 접어들었다.   차창 밖의 산은 며칠 포근했던 날과는 상관없이 여전히 하얀 눈이 산의 대부분을 덮고 있었으며 아낌없이 드러낸 근육질의 산세는 눈앞에서 거뭇거리고는 앞서거니 뒷서거니 이쪽에서 저쪽으로 그리고 좌우로 능선이 길게 흘러 가고 있었다.   '역시 잘왔어...' 라는 생각이 절로 난다.    20분만에 도착하여 내린 고개는 싸한 산공기가 코끝을 스치는가 했는데 폐부가 다 뚫리는 듯 하다.    발목정도는 쑥 잠기는 눈길로는 발자욱 몇이 찍혀 있었으며 오름길의 구배는 만만하리 만치 여유롭다.    중미산과 소구니산을 가르는 서너치고개에서의 등로에 비해 그리 급하지 않았다.   산행은 농다치고개에서 소구니산을 올라 유명산(마유산)정상을 거치면서 ATV오프로드 길을 따른 후 배너미 재에서 용문산으로 잇는, 그러니까 서에서 동으로 가는 겨울산행치고는 만만치 않은 산길이다.  

 

 

 

농다치고개에서 오르는 소구니산 등로

 

 

잠시 올라선 설산으로는 앙상한 겨울나무 가지를 훓으며 내리는 아침햇살의 작은 눈부심 정도는 굳이 외면할 필요가 없었으며 산정으로 다가설수록 햇살에 비치는 서리꽃이 무성한 나무가지 위로 펼쳐진 서편 하늘은 푸른물이 잔뜩 들었다.

 

 

산정이 가까워지자 피어나던 서리꽃.

 

소구니산정에서 본 유명산

 

여지껏 호젓하기만 하던 산길은 소구니산정에 이르자 한무리의 산객들로 부산하였다.         지근의 유명산과 그 선을 이은 용문산 구조물이 눈으로 들어온다.   늘어선 산객들의 유명산으로 향하는 걸음은 단하나의 눈 길로만 내어져 있어 고스란히 앞 산객의 꽁무니만 따르는 산행이 유명산정까지 이어졌다.   

 

산정으로는 너른 분지가 있어 예전에는 말을 키우기에 적합하다는 의미를 가진 마유(馬乳)산으로 불리웠는데, 그게 유명(有明)산으로 변한지도 거의 반세기나 되는 듯 하다.    억지 작명이라는 느낌이 있어 늘 불편하기만 한데 산의 정상석 역시 장대하게 떡하니 유명산이라 세워 놓고 있으니...  그것도 산림청에서.  

푸른 하늘로 전투기 한대가 하얀 꼬리를 길게 그리며 용문산 쪽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유명산정에서 바라보는 용문산 방향.

창공으로 비행기가 난다.

좌측으로는 폭산(천사봉)

 

 

유명산 패러글라이더 활공장을 뒤돌아 보면서.  

 

 

오프로드로 접어들었다.   길은 차가 다닐 정도로 넓은데 발목으로 잠기는 눈위로 찍힌 두어개의 발자욱을 따랐다.    우측의 너른 분지로는 행글라이더 활공장이 시원하게 열려 있는게 얼마전까지만 해도 글라이딩 장비를 실은 차가 다닌 듯 바퀴 자욱이 뚜렷했다.    지도를 펼치며 방향을 확인 하고는 인적없는 설산을 홀로 걸었다.   

 

용문산이 한결 가까워진 분지의 푸른 하늘로 한마리의 솔개가 너른 날개를 활짝 펼치며 한 점으로 머물고 있었다.    기풍당당한 그 모습을 담으려 디카를 꺼내려 하자 이내 저편으로 가버리고 만다.   그 높은데서도 땅위의 낯선 물체에 대한 경계가 예사롭지 않은 듯 하다.    섭했다.   '내가 뭘 어쨌다고...괜한 제스처 였나 보다.'   

 

배너머 고개를 가로 질러 오르는 등로의 첫 이정표.

  

 

좀전 산객들로 붐비던 유명산정에서의 번잡스러움과는 전혀 다른 호젓한 걸음이 길게 이어지면서 설매재 휴양림으로 닿는 배너머 고개로 내려섰다.    고개는 유명산과 용문산을 가르며  북의 설악까지 연결되었다.   고개는 유명산 분지에서 오프로드나 행글라이딩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주 이용자일 듯.  

 

길 건너 소나무 숲으로 연결되는 산은 여전히 호젓하기만 했고  눈으로 점차 더 깊어져 가는 등로를 헤치는 고단한 걸음이 버거워질 무렵, 사방이 열리는 눈 밭에 서 늦은 점심을 했다.   

 

 

너른 개활지에 눈위에 앉아 점심을 먹었다.

 

용문산 공군기지.

 

 

이내 도착한 군기지 위로  빤히 보이는 통신용 철구조물이 놓여 있는 저기가 용문산정이다.   기지 정문을 지키고 서있는 초병의 이방인에 대한 무심함이 서운하였다.   비상까지는 아닐지라도 고산 설원으로 불현 듯 나타난 객에 대한 최소한의 경계조차도 없는게...  정상적인 등로가 아니라도  기지주변을 오다가다 하는 산객들이 그만큼 많은가 보다.   허긴 이 곳 보다 더 높고 깊었던 화악산 기지 주변을 그렇게 활보하며 다녀도 전혀 제지가 없었는데...  

 

기지의 펜스를 가이드겸 손잡이 하여 흔적없는 설사면에 거친 발걸음을 찍으면서 백운봉에서 용문산으로 이어지는 주등로를 찾았다

 

 

군 기지의 펜스를 우회하면서...

 

용문산정

 

산정까지 1Km 남은 눈덮힌 능선길은 숱한 발자욱으로 어지러히 늘려 있었으며 산정으로 오르는 빠르게 각을 세운 나무계단을 오르내리는 뭇 산객들과 함께 부대끼며 용문산 가섭봉에서 긴 산행의 마침표를 찍었다.   

 

지난해 개방된 정상이 좁은 건 그렇다손 치더래도 거대한 철 구조물이 서편으로의 조망을 가리는건 여전히 아쉬웠다.   철탑 사이로 지나쳐온 유명산정에서 이어지는 산길을 간신이 바라보는 답답함을 외면하고는 북과 동편으로 거침없이 펼쳐지는 산군들을  조망하느라 긴 시간 머물렀다.  

지나쳐온 거친 발걸음의 기억들을 되새기면서...

 

 

구조물 사이로 보이는 유명산

 

용문산 가섭봉에서의 조망.

용문봉과 그 뒤의 중원산 그리고 우뚝 솟은 도일봉에서 좌로 흐르는 싸리봉,단월봉 능선으로 이어지는 한강기맥의 폭산과 저멀리 봉미산

 

하산하면서 바라보는 용문봉

 

용문사 심검당 처마 밑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용문산정

 

 

용문사 대웅전

 

 

 

心劒堂에서는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이 매주말에 걸쳐 운영 중이었다. 

 

용문사의 쇠북 

 

누구라도 鐘을 치고 싶으면 요청하면 된단다.  

계단 아래에는 佛田函이 있었다.  그러니까... 이게, 에...얼마면 될까?

 

군내 교통편이 예전보다 2배는 늘었다.

수도권전철이 용문까지 연결된 때문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