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그것도 아주 모처럼,
수월한 숨은벽을 겸사하여 간다고 하니 예상보다 많은 악우들이 모였다.
한차례 비지 땀을 쏟은 후 도착한 인수 야영장으로 늦여름 수풀을 헤친 아침햇살이 나뭇잎으로 투영된다.
참나무 등걸에 막힌 빛은 한층 입체적으로 새겨지며 산란되고는 돌담을 연하게 물들여 놓는다.
나뭇잎에 투영된 아침햇살
인수야영장
팀은 인수봉과 숨은벽 팀으로 나뉘어 등반 완료 후에 만날 요량으로 숲으로 흩어졌다.
숨은벽으로 어프로우치를 위해 짙은 수음 사이를 지나던 팀은,
숲 속에 잠복해 있던 완장으로 부터 제지를 받는다.
숨은 벽은 밤골 쪽에서만 허용된다.'
'허나 인수리지는 이 길로 갈 수는 있으나 혹, 숨은 벽으로 가면 동료에게 연락을 취하여 과금을 한다'
말하자면, 인수봉과 숨은벽 사이의 좁은 쿨르와르 지역은 통제구역임으로 여기서는 갈 수 없으며,
그 지점에서 발각되면 과도한 벌금을 물리겠단다.
이건 협박이다.
새 자일 사용전 등반 안전을 비는 세레모니
잠시 동요가 있었다.
'악법도 법이다.' 라는 그런 요상한 말이 있긴 하다.
법.
이 세상에 절대적인 법이란 없다.
동일한 법에 대해서도 법학자들의 의견이 다 같지는 않다.
마찬가지로 하나의 사건에 대해서도 서로 상반된 주장이 있다.
법은 해석하기 나름이고 동일한 사안에 대해서도 판례가 바뀐다.
우습다.
허나 이게 법이다.
말하자면 법은 상대적일 수 밖에 없다.
법은 가끔, 법없이도 사는 사람들을 범법자로 만드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렇다고 내가 법이 필요없다고 하는 무법론자는 물론 아니다.
법은 필요하다.
다만 최소한도로...
그래서 살다보면 각자 나름대로 법의식이 있으며,
아니 법의식 이전에 '양심'에 의해 자신 외의 남들과 교류를 하며 이 세상을 살아간다.
'이 길을 통제하며 범하면 과금을 한다'
이게 과연 국회를 통과한 법일까.
아니면 그들이 내건 금칙사항일 뿐 일까.
설사 국회를 통과 했다손 치더라도 그에 상반된 기존 법들도 분명히 있다.
어쩌면 공단, 그들의 편한 관리만을 위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건 시비를 가리기 꺼리는 심리를 악용하는,
또는 힘의 논리에 의하여 약자를 괴롭히는 양아치 법과 다름 아니다.
1차 하강 준비 작업
인수리지 초입에 갑자기 수십명의 등반객이 모였다.
악우의 새 자일에 대한 안전의식 고사를 치루기가 급하게 바삐 벽으로 붙었다.
느닷없는 완장의 출현으로 마음 상한 악우 몇은 막걸리 한사발 들이킨 후, 백운대로 발길을 돌렸으며
나를 포함한 나머지는 인수리지로 가게 되었다.
하강 직후 건너편 바위로 가기 위하여 슬링을 잡고 올라서야 한다.
인수리지의 난이도는 상대적으로 숨은 벽 보다는 높은 수준이나 그다지 어렵진 않다.
손 뻗치면 반가운 홀드가 즐비하고 적당한 경사의 슬랩에선 암벽화의 마찰력이 믿음이 갈 정도로 감이 좋다.
2차 하강
인수리지의 최고 난이도인 사선 크랙 직전의 넓다란 테라스에서 등짐을 풀었다.
앞 팀의 진행이 더딘 틈을 타 점심을 한다.
반주로 막걸리 한사발 후 삭은 홍어 한 점 입에 넣고 어금니로 지긋이 으갠다.
꼬릿한 향이 입안에 가득이다.
채 다 삼키기 전에 또 한점 초장 듬뿍 발라 연이어 오물거린다.
온 산으로 삭은 홍어 냄새가 진동하는가 보다.
뒤 이어 내려온 등반객들이 입맛 다시는 걸 보고 그런 줄 알았다.
사선크랙 오르기
인수리지 최고 난이도인 사선 크랙을 오른다.
별 높은 난이도는 아니나 워낙 많은 등반객들이 지나갔기에
그 좋은 홀드가 뺸질뺀질하다.
몸을 오른 쪽으로 한채 실크랙으로 손과 발을 간신이 넣은 다음 레이백 하면서 오른다.
조금씩 허물어지는 정도의 발 끝 미끌림 정도는 용케 버텨야 한다.
30미터 크랙 등반
30미터가 약간 넘을 직벽은 쩍 벌어진 크랙으로 홀드는 무지 좋다.
왠만하면 별 어려움은 없이 수월하게 오르나
마지막 민탈은 슬링을 잡아쳐는 순간에 오른발을 올리면서 재빨리 볼트를 밟고 일어나야 한다.
쉬울 것 같아도 바란스가 없으면 허물어진다.
경험이 있으면 사실 별 것은 아니다.
사실상 등반종료로 이제 부터 정상까지는 수월한 안자일렌
인수봉 정상 / 건너편 백운대를 찾은 산객들 인산인해
하강준비
큰 어려움없이 올라선 인수봉에서 사위로 펼쳐진 광경은 여전하다.
예전 처음으로 이 봉을 올라왔을 때 들뜨기만 했던 감흥은 지금은 없을 지라도
철 마다 바뀌는 산국의 풍경은 그 때 마다 새롭다.
인수봉과 백운대를 사이에 둔 숨은 벽으로 온산이 불타는 듯한 단풍물이 들 때 쯤,
여기 인수봉으로 또 하나의 가을이 익어갈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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