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 전경을 제대로 보려면
맑은 날 보다는 차라리 비 오고 흐린 날이 낫다.
그렇다고 산행 내내 내리면 곤란하겠으나
비 그치고 막 개이기 시작하면 티없이 맑은 하늘에
저편 산등성이를 감고 도는 하얀 운무가 바람결에
이리저리 몰려 다니는 광경을 보노라면,
그야말로 산행 길은 행운이다.
전날 밤,
차창 앞을 때리는 폭우를 가장 빠른 와이퍼로 연신 걷어 내어도
빗물로 인해 시야가 흐릿하게 퍼졌다.
낼 산행을 갈 수 있을까.
장마전선이 동으로 이동하면서, 비올 확률 100% 라고 했는데…
이른 아침.
거실의 창 밖을 본다.
비는 오질 않았으나 하늘을 덮은 비구름은 여전하다.
이 정도 날씨만 종일 이어진다면
년 중 손가락으로 꼽아도 좋은 산행으로 기대해도 좋으리라.
비내리는 우중 산행 역시, 운치 있다.
올지 안 올지…
오히려 불확실성이 더 나을 수도 있다.
확실한 거 보다 그게 인간적이다.
차창 밖의 한강 풍경
하늘을 뒤 덮은 두터운 비구름
양수리로 이르자 비구름은 좀 더 짙어졌다.
차창으로 본 한강은 탁류가 되어 거세게 서로 달려가고,
그 방향을 거슬러 버스는 동으로 1시간을 달렸다.
비는 내리지 않았으나 하늘은 좀 전 보다 더 내려 앉아 있었다.
갈아탄 군내버스를 내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한다.
급하게 키 작은 나무 아래 곤욕스럽게 쭈그리고 앉아
등짐을 풀어 제치는 등의 부산을 떨며 우중 산행을 준비한다.
이미 반은 젖었다.
흠뻑 젖은 ...
그림같은 집 울타리를 끼고 돌면 백운봉 등로가 수도골을 따라 놓여있다.
백운봉을 동에서 오르는 연수리의 수도골은
그간의 장마비로 계곡으로 놓여 있을 징검다리 조차 쑥 물에 잠겼다.
산객이 그리 많이 다니는 코스가 아닌 듯
등로는 잡풀로 무성하게 덮여 가는 금만 그어져 있을 뿐,
별 수없이 얼마 오르지 못하고 바지가 흥건히 젖고 만다.
"이 길이 아닌가벼..."
" 맞어, 이 정도면 대로다, 대로."
함께한 지우의 우려를 간단히 잠재운다.
장마로 불은 계곡을 대여섯 번이나 이렇게 건넜다.
숲은 어두웠다.
숲은 이내 어두웠다.
폭우로 쓸고 내려간 등로 옆의 풀은 죄다 아래를 향해 사면으로 누웠고,
발걸음은 등로로 쉼없이 흘러 내리는 물을 디디지 않을 수 없다.
물 천지다.
그나마 등로가 한층 넓어져 풀로 인한 오름 걸음에 간섭이 없는게 다행이다.
어둑한 숲 길을 거닐다가 간간이 열리는 숲의 빛
등로를 가로 막은 고목에 핀 버섯
녹음 짙은 숲을 뚫고 내리는 찬란한 햇살은 없었으나
간혹 지근의 산등성이 보일 정도의 좁은 하늘이 열리곤 할 땐
반가운 마음에 디카를 꺼내어 들었다.
오름 길 내내 비는 내리지 않았다.
온 몸을 감고 도는 꿉꿉한 느낌은 꼭 열기로 인한 땀만은 아닌 건,
어둑한 숲으로 가득찬 습도가 이 보다 더 하진 않으리라.
‘상대습도 100…’ 그런데 이런 수치도 있나.
조리개 2.8, 광감도 -2, ISO1600으로 세팅을 하여 겨우 얻은 스피드 1/20.
백운봉 바로 아래의 형제 우물터에서 잠시 한 숨을 돌리고는
도상에서 표시한 좌측 갈림길을 택하려 했으나, 그렇하지 못했다.
우측의 이정표를 따르지 않고 좌의 좁은 샛길로 접어 들었다.
결과론적이지만 준비한 도상의 갈림길 표시가 잘못되었다.
접어든 샛길은 정상등로가 아닌 그저 샛길이었을 뿐 희미하게 이어지다가 간혹 끊어진다.
백운봉을 바로 위에 두고 제법 애로가 있긴 하나 그렇다고 하여 많이 곤란하진 않았다.
백운봉 아래의 형제우물
백운봉 정상 직전의 계단
운무에 잠긴 백운봉으로 강한 바람이 불었다.
2시간여 가쁘게 달려온 정상에서의 가려진 시계가 아깝다.
등짐을 내리고 간단한 요기를 하며 구름에 잠긴 산정에서 여유를 가진다.
등로 표시가 잘못된 지도로 잠시 방향을 놓치긴 하였으나
이정표가 가리키는 용문산과 컴퍼스의 방향이 일치한다.
정상엔 강풍이 불었으나 춥지는 않았다.
정상에 있던 꽃
정상에서의 바위 채송화
백운봉에서 오른쪽으로 틀어진 북향의 용문산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은 두어시간의 거리다.
시계가 좋으면 발아래의 양평시가지와 남한강 물줄기의 조망과
인근으로 펼쳐지는 산군으로 눈 맛이 좋다.
저 멀리 북으로는 가평 북면의 화악산이 공제선 상으로 뚜렷이 볼 수 있다.
탁한 하늘을 깨끗하게 씻어 내리는 장마중의 어느 맑은 하루를 기대하고 온다면,
비단 여기 말고도, 그 만큼 마음이 맑아진 느낌을 얻을 수 있다.
그런 기대를 가지고 왔었다. (예보가 틀렸으면 좋았다.)
운무
백운봉을 내리자 마자 하늘의 두터운 구름은 기어이 소나기를 퍼 붓기 시작한다.
푹 젖은 수풀을 헤쳐 나가느라 바지는 물론
비싼 방수 등산화의 속으로도 물이 흥건해져 내딛는 발걸음 내내 질퍽거린다.
바지 끄댕이를 타고 흘러 들었을 걸로 믿고 싶다.
와중에 간간이 디카를 꺼내어
푹 젖은 산의 구석구석으로 이런저런 포커스를 맞추긴 하였으나
그나마 얼마 지나지 않아 작동을 멈춘다.
산행내내 폭우가 내리다 그치다를 반복.
서편의 함왕골이 있는 사나사로 방향을 잡아 능선을 내릴 동안,
소나기는 내렸다 그쳤다를 내내 반복한다.
거침없는 천둥소리로 골을 메우며 폭포수로 되어 떨어지던 하류의 마지막 계곡을 건널 즈음엔,
등 줄이 쭈삣하게 서며 식은 땀이 흘러 내리는 걸 느꼈다.
그건 이미 온몸이 비로 흠뻑 젖었던 그런 물줄기와는 분명히 달랐다.
벼르고 찾은 백운봉에서의 조망도 없었다.
시간이 멈춘 옛 절집의 절제된 풍경 또한 사진으로 담지 못했다.
괜찮다. 불확실해서 더 좋다.
그래도,
오늘은 비가 안왔어도 되었는데…
급하게 담는다고 했는데, 디카가 비에 흠씬 젖었다.
애고...그 후 디카 작동 불능...
*
요즘 예보가 왜 이리 잘 맞을까.
장마전선이 물러가도 여전히 예년처럼 비가 내리는 우기가 이어질지 어떨지…
그건 두고 볼 일이다.
*
양평 산행 교통편 팁
1) 연수리에서 오르는 등로는 용문터미널에서 9시에 출발하므로,
동서울에서 7:50분 발 용문향 버스(5,700 원)를 타고 가면 딱 맞다.
동서울에서 용문시외버스 정류소까지 1시간 소요.
(용문터미널에서 출발하여 시외버스 정류소를 거쳐 감 ; 3분 걸림)
2) 중원계곡이 들머리인 중원산이나 도일봉으로의 산행은
청량리역에서 8시에 출발하는 기차(3,800 원)를 타고 용문역에 내리면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용문 터미널에서 9시 10분에 출발하는 중원리행 버스를 타면 된다.
청량리역에서 용문역까지 1시간 소요.
3) 봉미산이나 소리산행 버스는 용문터미널에서 8시50분에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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