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할 만경대 바위길의 전경
*
몇 걸음 떼지도 않았는데 거친 호흡을 연신 개어내고
등 줄기엔 끈끈한 땀이 흘러 내린지 오래다.
한결 짙어진 수음 사이로 쑥 잠기는 등로 일지라도,
잔뜩 데펴진 대지와 끕끕한 대기의 열기 모두를 가두진 못했다.
허긴 도선사 주차장의 거대한 좌불 아래를 쉼없이 돌아가던 차량의 거친 바퀴 소리도 개의치 않고,
퍼질러 자던 누렁이가 오죽했으리라 마는...
(그래... 이 보다 더 늘어질 순 없다.)
하이고, 앞으로 남은 이 기나긴 여름 산을 어이할꺼나.
단내가 폴폴 피어나던 타는 목마름은 용암문을 통과하기 무섭게 등짐을 내 던지며
단숨에 작은 생수 한통을 상그리 비우고 만다.
남은 물이라고는 작은 생수 하나밖에 없는데...라며
리지의 초입도 못간 오늘의 등반이 슬슬 걱정이다.
지난 오봉리지 등반 후, 3주만에 참석하였다.
첨 뵌 일흔을 눈앞에 둔, 조 선배님을 비롯하여 구면인 산 박사이신 구선배님
그리고 한분의 여성 선배님과 칼마님, 무크님, 산돌이님, 원장님 그리고 나.
산행으로 다져진 선배분들의 걸음은 가벼운 것 까지야 그러려니 했는데, 숨소리 마저 곱다.
‘…으음…산행으로 다져진 내공은 무시할 수가 없어...’
용암문에서 이어지는 능선길은 중나리가 줄지어 고개를 숙이긴 했으나
화려한 몸매를 아낌없이 드러내 있었고,
연한 자줏빛깔의 꿩의 다리도
여린 솜털 같은 꽃 몽오리를 간간이 허물어진 성곽 능선을 심심잖게 따르고 있었다.
너른 공터에서 한 숨 돌린 후,
개인 장비 세팅시 안전 및 장비 사용에 대한 교육이 잠시 있는가 했었는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는 건 이내 이어진
리지의 매 구간을 지나칠 때에야 비로서 알게 된다.
원장님은 ‘이리 모여’ 하면서 현장교육이 내내 이어졌었다.
별 수없이 암벽등반의 초년생인 무크님은,
그 덕(?)에 세컨을 맡어 자기 확보는 물론 선등 및 후등자를
8자 하강기로 빌레이(확보) 보는 방법 등을
고스란히 배울 수 밖에는…
장비의 핸들링이 서툴기는 하나 그대로 따라 하느라 그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인도어에서 배우는 이론 교육이 중요하기는 하나,
이런 실전에서 몸으로 익히는 등반 장비의 사용법은 한결 이해가 빠를 수 밖에 없다.
이는 사방으로 펼쳐지며 발아래로 뚝 떨어지는 단애 끝에서
그 만큼 집중력이 뛰어날 수 밖에는.
물론 숱한 경험이 쌓여야 겠지만…
암벽을 하던 안하던 등반 장비의 사용법은
일반 산행시에도 요긴하게 쓰일 수가 있다.
산행시 배낭으로 짧은 줄이나 카라비너 한 개 정도만 넣고 다니면,
간간이 위험구간을 만난다든지 할 때의 비상시에
자신은 물론 위기에 처한 여타 산객을 도울 수도 있다.
해서, 나의 배낭엔 암벽이 아닌 워킹시에도 10미터 길이의 슬링줄과 퀵드로우 2개는
한구석에 들어있으며 가끔 그것을 사용할 때의 효용은
늘 기대 이상이었다.
용암문에서 위문 방향으로 오름길로 느린 행보를 하는
우리와는 달리 마주하며 지나치는 산객,
속칭 리지꾼들을 간간이 대하곤 하였는데
한결같이 헬맷을 비롯한 개인 장비들은 다들 잘 갖추었는데 진작 중요한 자일은 없었다.
아니 있더라도 배낭 속에 넣어두고 다닐지도 모른다.
단지 귀찮다는 이유로.
만경대리지는 인근의 원효봉에서 백운대로 이어지는
염초리지와 인수봉과 백운대를 사이에 둔 숨은벽 리지와 더불어
북한산의 3대리지로 불리어지곤 한다.
예전에는 이 리지들을 아무런 안전장구없이 다니며 스릴을 즐기곤 하였는데
가끔 발생하는 사고로 인해 지금은 장비를 갖추지 않으면 출입을 통제한다.
허나, 여전히 단속의 눈을 피해 다니는 분들이 있다.
이 곳은 벽 등반과 같이 완전한 등반장비 없이도,
사실은 그냥 다닐 만은 하다.
나도 초년 시절에 두어 번 그런 적이 있었다.
물론 중간에서 많은 후회를 하면서 체계적으로 암벽을 배워야겠다는 계기가 되었지만.
암벽사고의 주된 발생 장소가 벽등반(클라이밍)이 아니라,
장비없이도 다닐만한 이런 리지길에서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건,
통계로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바위길에서의 추락 등으로 일어나는 사고는 최소한 중상이다.
그것도 운이 좋아야…(?).
안전장비를 갖추지 않고 100번을 안전하게 갔다 왔다 한들
101번 째는 없을지도 모른다.
즐기고자 하는 일에 목숨을 내 놓을 것 까지야.
클라이밍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게 아니라
장비의 유무에 따라 사고의 발생 빈도가 다르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다.
어디에서나 암벽사고는 치명적이다.
다소 느린 진행인 덕에 바위 능선의 좌로 때로 우로 열리는 광경을
굽어 볼 때 쯤은 땡볕의 노곤함은 이미 느낄 수가 없다.
아마 아슬한 스릴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와 그런지도 모른다.
만경대에서 바라보는 지근의 백운대와 인수봉의 자태는 빼어난 절경이다.
해가 뉘엇뉘엇 저물어 넘어갈 때라던지,
아무려면 새벽이면 또 어떻겠는가.
그리고 눈 내린 겨울은…
푸른 하늘아래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꼿꼿하게 자세를 잡고 서 있는
거대한 2개의 바위 봉은 장엄하다 못해 참 잘생겼다.
리지가 끝나는, 백운대를 오르내리는 산객으로 번잡한 위문으로 곧추 내려서지 않고,
만경대에서 아래로 연 이어지는 곰바위 능선으로,
남은 아기자기한 능선길을 호젓하게 계속 이었다.
바삐 4시간이면 끝날 산행이 여유롭게 8시간이 걸렸다.
*
비즈니스 파트너쉽을 위해 마운틴 월드로 찾아온
네팔에서 온 셀파 일행과 뒷자리를 함께하였다.
뜻하지 않게 대단한 산악인으로 격상된 것 같은 이 느낌은…
해 저물고 나서도 어둠에 걸린 북한산의 흐릿한 자태는 여전히 그림이다.
이 늦은 시간까지 우이동에 있는 것도 생경한데,
함께한 님을 찾는 전화를 핑계삼아
느닷없이 도봉산 아래로 죄다 모여 그나마 얼마 남지 않은
하루를 깡그리 소진하였다.
*
... 상팔자.
참 더웠다. 그래도 너무 했다. 쉴새없이 차가 돌아가는데도, 최소한의 경계는 해 줘야 되질 않겠니...
믿는 구석이 있나 보지 뭐...
그늘진 계곡길이긴 해도 땀을 한바탕 쏟고 숨이 턱으로 몇번이나 닿고서야 도착한 용암문.
만경대 능선 어프로우치 중, 등로 옆으로 줄지어 만개한 중나리.
숨이 가팠구나~
초절정의 중나리
요게...그러니까...홧 이즈 디스?
8명이 40m, 30m, 20m 자일 3동으로 등반.
만경대 바위길은 초보코스로 별 어려움없이 바위 맛을 볼 수 있으나 아무리 쉬워도 자일은 필수.
용암문에서 위문 방향은 하강이 없어, 등반팀의 호흡만 잘 맞으면 30m x 2 동 이면 적당.
피아노 구간을 리딩으로 트레버스하는 원장님.
발아래는 뚝 떨어지는 바위단애이며 이를 건너가기 위해 손으로 바위 홀더를 잡고 옆으로 가는 모습이 마치 피아노를 치는 듯 한 모습.
좌의 봉우리는 노적봉
발아래는 아찔하나 홀드가 좋아 건너가는데 별 무리는 없다.
단 자일에 확보줄을 카라비너로 연결해야 한다.
그리고 세컨으로 등반하며 다음 등반자를 위해 별도의 자일을 달고 오름.
세컨은 등반하면서 리딩자가 설치해둔 확보물(캠 등...)을 제거하던지 또는 뒷줄로 통과.
등반자 바로 뒤는 의상능선의 마무리인 문수봉.
그 뒤는 응봉 능선의 마무리인 사모바위를 볼 수 있으며,
문수봉 바로 뒤편의 왼쪽은 구기동에서 올라서는 사자능선의 끝봉인 보현봉이 머리만 살짝 내밀었다.
위문방향에서 내려오는 여러 산객들이 본 구간을 클라이밍 다운하느라 등반이 잠시 지체 되기도 하였는데,
한결같이 헬멧등의 개인 장비는 갖추었으나 진작 필요한 자일은 없었음.
목숨걸 것 까지야...
클라이밍 다운 후 단애 올라서기.
위문에서 연이어 넘어 오는 산객으로 잠시 지체.
만경대 능선에서 바라 보는 동편의 우이동 과 그 너머의 서울 시가지.
클라이밍 다운하는 칼마님.
위에서는 자일로 확보 중.
자세 좋고...
또 하나의 재미있는 구간인 뜀바위로 오르는 산돌이 님.
아래에서 위로 1m 이상을 뛰어야 하므로 바짝 긴장이 됨.
물론 아래는 10여 미터에 이르는 단애.
클로즈 엎.
나뭇잎 끝으로 살짝 걸린 백운대와 푸른 하늘.
그리고 작게 보이는 헬기.
오늘도 인수봉 오아시스 방향으로 헬기가 날았다.
주말, 휴일엔, 늘... 그런 ...우울한...
백운대의 또 다른 장쾌한 면면을 만경대에서 바라보다.
그리 쉽지만은 않은 트레버스 구간.
역시 긴장...
위태로운 사면으로 피어있던 돌양지 꽃.
左 백운대(816M), 右 인수봉(810M) 그리고 여기, 만경대(799M) 그래서, 삼각산.
만경대 마당바위에서 북편으로 바라본 인수봉은 생기기도 참 잘 생겼다.
곰바위 능선으로 접어들고...
여기를 클라이밍 다운 할때도 등줄에 힘이 제법 들어간다.
인수봉의 또 다른 모습이 보여지고.
진지하지 않으면 안돼...
비지니스(히말리야 등반)를 위해 마운틴월드 사무실로 찾아온, 네팔의 셀파와 그의 벨기에 사위.
오투월드 옥상에서 바라본 북한산으로 해가 저문다.
뒷풀이 자리에 자연스레 함께 한 네팔인 셀파(파상 다와), 右는 통역.
서서히 우이동의 밤은 깊어가고...
북한산으로 달이 떴다.
아깝다....흔들렸다.
그리고, 산순이님의 연락으로 자리는 도봉산 아래로 늦은 시간까지 계속 이어지고...
'登'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용조봉과 조계골 090711 (0) | 2009.07.11 |
---|---|
수종사 둘러보기 090705 (0) | 2009.07.06 |
릴렉스...또, 릴렉스... (0) | 2009.06.26 |
왠, 블로그를 방문하고는... (0) | 2009.06.24 |
한 편의 시를 위한 길 090614 (0) | 2009.06.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