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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말... 아니면 6월초
곽상병이 귀대했다.
휴가 나간지 무려 한 달만이다.
전남 해남이 고향인 그는 서울로 오는 모든 교통로가 차단되는 통에 생면 부지의 인근 부대에서 20여일을 지내다가 사태가 진압이 되자 돌아온 것이었다.
“아 ~~그 노무 쌔끼들 땜에, 휴가도 제대로 못 보내고…까딱해스믄 나도 주글뻔 해서야잉..~~~”
“ 어따, 곽상뱅님도, 한 판 해 부리지 안고요”
귀향시에 잠시 훑어 본 무법천지에 대한 곽상병의 목격 무용담에, 우리는 힘이 펄펄 끓을만큼 때론 묘한 아쉬움을 가졌다.
‘아, 거기에 내가 있어야 하는 건데…’
지난 근 한달여간, 참으로 편하게 지냈다.
작업과 훈련이 없는 병영생활은 그야말로 군대가 이래도 되나 할 정도로 한가하기만 했다.
기껏 하는 일 이라고는, 포반에 가서 하릴없이 오월의 햇살이 부딪혀 부서지던 삐까뻔쩍한
155미리 포신을 어루만지며 포탄이나 닦고, 평소에는 지급도 안하던 그 무시 무시한 신관을
포탄 헤드에 체결했다 풀었다 하는 장난 아닌 시간 죽이기로 그야말로 늘어진 상태였으나 숨막히
는 긴장감이 병영 곳곳에 팽팽하게 흐르고 있음을 누구나 감지하고 있었다.
여차하면 “장약 제 x호, 사각xxx, 편각xxx. 제 3포반 사격준비 끝”이라며 늘 상 훈련 받아 온대로 입에 배인 수치들이 포반장이 손에 쥔 유선전화로 ‘발사’ 라는 명령이 흘러 나오기를 은근히 기대하곤 했다.
지난 5월 초에는, 서울역에서 학생 폭도가 몬 버스가 전경을 치고 길 옆에 휘 둥그려져 있는 것이 신문에서 보곤 했는데…
아 글쎄, 그게 제대로 진압이 안되었는지 저 멀리 광주에서 빨갱이들의 사주를 받은 폭도들로 무법 천지가 된 것이었다.
“니이미, 쓰벌노무쎄끼덜….우리는 전방에서 이리 초뺑이치고 있는데, 저노무 쌔끼덜 모두 대암산 꼴짜구에다 쳐 너어버리믄 조케따아”
160이 채 안되는 다부진 포대장은 연병장에다 부하들을 집합시켜 놓고는, 누란지위의 이 시기일수록, 우리는 더욱 더 훈련과 교육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훈시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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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전역에서 군용열차를 타고 심야에 논산 연무대역을 내릴 때, 인근 마을에서 나온 듯한 아이들이 건빵을 달라고 구걸을 하던 이래로 시작된 이 엿 같은 군대생활은 하루도 편할 날이 없는 뺑뺑이의 연속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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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시월이십육일.
추석 때부터 시작된 침투 무장간첩 소탕전에 투입되어 대암산의 빤치볼 주변의 야산에서 엠16 총한자루와 5.56미리 실탄 백다섯발, 모포하나 그리고 세열 수류탄 2발을 2인 1조로 지급 받고는 밤낮으로 매복을 펴왔었다.
식사는 저 아래의 작전도로 까지 하산하여 반합에다가 밥과 온갖 부식을 짬뽕으로 비벼 먹기를 한 달 가량 군인이 아닌 차라리 산적이 되다시피한 생활을 하곤 했었다.
후방에서 외출복에 서너줄 칼 주름 잡으며 다니는 머찐 군인의 허상이 깨어진 지는 이미 오래였었다.
자수 간첩 김신조의 투항권고 비행기가 대암산의 상공을 누빌 때, 착검을 한 상태로 괜한 수풀 더미를 푹푹 찌르며 산을 뒤지면서, 사람이 없는 듯한 곳만 찾으며 음산한 곳은 아예 피해 다녔다.
고도로 훈련 받은 간첩과의 조우는 즉사였었음을 무의식 중이나마 느낀 듯 했다.
인근
매복지에서 밤새도록 총질과 수류탄이 터지는 와중에서도 쏟아져 오는 잠은 어쩔 수가 없는 듯.도무지 잠이라고는 없는 말년 병장의 숱한 협박에 가까운 지적도 갓 일병을 단 내게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튿날, 밤사이 아군끼리 주고 받은 총격전으로 몇 명이 죽어 나갔다는 확인 할 수 없는 소문이 돌았으나, 다행히 우리 부대에서는 사상자가 없었다.
이십칠일 새벽.
한 달 가량 지속되었던 작전이 끝났다고 하며 육공트럭을 타고 산을 내려오는 와중에도, 그 어느 누구도 무장 간첩소탕에 대한 얘기를 전해 주지는 않았었고, 부대에 오자마자 그냥 긴 대기시간이 이어졌던 것이었다.
불과 1년 전에 일어난 부마항쟁과 사북탄광의 그 무시무시한 사건에 이은 10.26 사건 그리고 광주항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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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도 부러워 했었던 개구리 복을 입고는, 소양강을 3년 만에 회색 군용배로 건너왔다.
34개월 13일.
그 동안 3명의 대통령이 바뀌었다.
그 때마다 특별식으로 나온 종합 선물세트를 받고는 즐거워 한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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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면서,
저으기 밑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벅찬 감정을 추스릴 수가 없었다.
도청의 어느 구석진 계단에서 카빈 한자루를 끌어안고는 가슴에 붉은 선혈을 흘리고는 가뿐 숨을 몰아 쉬며 죽어가는 내가 있었다.
격동의 시대를 살다 간, 호흡을 같이한 알 지 못하는 나의 님들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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