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타고 가던 기차를 타고 가던 금강산에서 발원한 북한강과 태백산 검룡소에서 발원한 남한강이 만나 합수하여 서편의 한강으로 흘러 보내는 두물머리를 지나칠 때면 목적지는 둘째치고 라도 그냥 내리고 싶더라. 잔잔한 강물 위에 떠있는 듯한 크고 작은 섬들 그리고 이른 아침 녘이면 강에서 아스라히 피어나는 물안개 저편으로 중첩되어 살며시 뚫고 오른 산군들의 모습을 마음으로 길게 느끼고 싶었던 게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 위의 낡은 철교의 모습에서 기억할 수 없는 아련한 추억 한자락 쯤도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천을 따라 강을 따라 홀로 페달질을 했다.
자전거 길이 한강변을 따라 양평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몇 달 전에 충주에서 양평까지 동료들과 함께 라이딩을 한적이 있긴 했으나 그 보다 가까운 한강에서 양평까지는 가지 못했다. 이 강을 따라가면 부산까지 이어진단다. 서해갑문이 시작되는 아라뱃길에서 낙동강까지 700여 Km. 현 몇몇 이들이 이 자전거 길을 따라 남진 중이다. 꼭 국토 종주를 한다는 그런 마음보다는 집에서 출발하여 양평까지는 한 걸음에 가능할 것 같기도 했다. 토요일 이른 아침, 나름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페달을 밟았다. 동행이 없으니 바쁠게 없다. 강변 풍경을 즐기면서 주변 유적지도 보면서...
동네 김밥 가게에서 김밥 1줄을 샀다.
이온음료 1리터, 생수 500cc, 얼린 냉커피 500cc, 쥬스 2개, 비상용 머핀빵 1개를
핸들바 백과 배낭으로 분산했다.
안양천을 달린다.
여의도로 가지 않고 학의천으로 해서 양재천
그리고 탄천을 거쳐 한강으로 가는게 좀 거리가 덜 되려나.
안양천과 학의천으로 나뉘는 3거리.
숱한 다리 밑을 지난다.
이 즈음에서 인덕원으로 올라서던가...
잘못 올라왔더라.
그래도 인덕원이 가깝다.
금계국이 천변으로 줄지어 피었다.
양재천의 물고기.
메리다 XC300
청담 2교 아래에서 탄천과 한강이 만난다.
저편으로 잠실 88올림픽 주경기장.
한강으로 접어 들었다.
하남시의 자전거 도로가 시원하다.
직선으로 가다가 살짝 굽어진 운치있는 미사리 부근의 천변 자전거 도로..
팔당대교 아래.
국토 종주 자전거 길은 P턴으로 팔당 대교를 올라서서 강건너로 가야한다.
직진하여 팔당댐까지 가서 돌아나왔다.
그 많던 안내판이 저 쪽 끝의 진작 P턴하는 곳에 없더라.
직진하면 광주 퇴촌으로 가서 수철리를 거쳐
정암산 아래의 들쭉 날쭉한 강변 풍경을 따른다.
그 쪽에도 자전거 도로가 건설 중이더라.
자전거 도로 중간중간으로 이런 간이 휴게소가 즐비하다.
팔당댐.
자전거와 보행은 금지되고 차량도 주말과 휴일에만 통행 가능하다.
터널이 나온다.
부용터널.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방 통행 차도였다.
시원한 터널이 연속으로 이어진다.
뜨거운 여름철엔 피서지가 따로 없다.
자전거 도로마다 명칭이 있다.
여기는 다산길이다.
다산 정약용의 고향인 마현이 가깝다.
갈길이 멀어도 아니 갈 수 없잖아.
다산 정약용의 고향인 마재(현, 조안면 능내리)의 강풍경.
다산 정약용(1762 ~ 1836)은 이 곳에서 유년과 말년의 생을 보냈다.
다산 문화관.
진주 목사였던 부친 정재원의 본처 사별후 맞이한 해남 윤씨가 다산의 어머니다.
외가쪽으로 고산 윤선도의 5대 후손이 다산의 어머니였고
증조부는 자화상으로 유명한 화가인 공재 윤두서다.
이복 큰형인 정약현의 사위가 천주교도인 황사영인데
그는 조선의 천주교도 박해를 청의 힘을 빌려 막으려 했던
이른바 황사영 백서사건으로 온 집안이 풍비박산이 난다.
동복인 둘째형은 흑산도로 귀양가 그 곳 어민들과 함께 어울리며 문맹을 깨쳐주던
정약전으로 현산어보(자산어보)를 집필하였고
동복인 세째형 정약종은 끝내 배교를 하지 않다가 그 아들과 함께 목이 잘렸다.
그는 죽는 순간에 누워서 칼을 받았다고 한다.
하늘을 우르러 본다며...
정약용과 정약전은 초기에는 천주교를 실용 학문인 서학으로 받아들였으나
조상을 모시는 제사를 지내지 않는 등으로 배교를 하였다.
경북 장기면(현 포항 부근)에서 짧은 귀향 살이 후
강진에서 18년 이나 유배 생활을 해야 했다.
강진의 다산 초당에 머물면서 1표 2서라 불리우는
방례초본(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 등을 비롯하여
무려 600여권에 이르는 방대한 저술을 남긴다.
동학 농민항쟁의 주역들에게 비결서가 전해 졌다고 하는데
이게 방례초본이라는 구전이 있다.
확인된 건 아니다.
이 무렵에 그는 백련사 주지였던 아암 혜장과
차로 유명한 초의선사 그리고 추사 김정희와도 학문적 교류를 쌓았다.
조선 최초로 세례를 받은 이승훈이 다산의 매형이다.
1800년 정조의 죽음으로 노론의 남인에 대한 핍박이 본격화되자
다산은 고향인 이곳 마재로 낙향하여 여유당을 짓고 학문에 몰두한다.
당시 노론 독주의 혼란한 정세는 다산으로 하여금 모든 걸 피하게(與) 되었고 모든게 두려웠다.(猶)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여유당으로 행차하는 관람객의 발걸음만이 잦다.
진주목사로 재직 중이던 부친 정재원이 죽자 3년상을 모시러 낙향 중에
정조의 명에 따라 화성 축성에 대한 책임자가 되어 축성을 설계하고 거중기를 발명한다.
여유당 뒷편 동산엔 다산과 부인의 합장묘가 있다.
다산은 조선 제일의 실용주의 학자였으며
암울했던 시대에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몸소 보여준 시대의 선각자였다.
묘에서 바라보는 여유당.
홍이포.(紅夷砲) ; 구경 11.3Cm, 유효 사거리 2.5Km (최대 9Km)
명에서 포루투칼로 부터 수입하여 후금(청)의 공격에 대항하였으나
후금은 이를 복제하여 나중에는 주력화기로 하였다.
청은 병자호란시 이 홍이포로 남한산성에 갖혀 농성 중인
조선군에게 큰 피해를 입혀 조선군에게는 공포의 무기다.
실학 박물관 개관식을 기념하기 위해 가져와 전시를 했다는데,
글쎄, 홍이포와 실학박물관의 상관관계가 좀체...
서양문물에 대한 이해 ?
북한강 철교
기차가 다니던 북한강 철교는 지금은 자전거와 인도 전용교가 되었다.
강 풍경이 좋다.
역전으로 늘어선 금계국.
터널을 빠져나온다.
유명한 옥천냉면.
갈증을 채우려 국물을 먼저 들이켰다.
입안에서 얼음이 서걱거린다.
그리고는 굵고 쫄깃한 면발을 씹었다.
쇠맛이 스며들까봐 가위질을 하지 않았다.
굵고 쫄깃한 면발을 앞니로 자르며 입안으로 우겨 넣고 씹는다.
시원하고 담백함이 온몸으로 가득이다.
몇 젖가락 질에 이내 동이 났다.
근데 왜 곱배기가 없더냐...
허긴 죙일 페달질하너라고 허기가 졌으니 뭔들 맛이 없었겠나.
8천원.
농로 옆 자전거 도로에서 보는 용문산에서 백운봉으로 이르는 능선.
직경이 굵은 클램프를 구하여 핸들바 백을 장착했다.
무거운 것 보다는 부피가 있는 잡동사니를 넣기가 좋다.
리어랙을 장착하여 팩킹하면 왠만한 무게의 짐도 가능.
양평의 직장인 밴드 '소름'의 양평역전 개천에서 공연.
얄실하게 찢어지며 허공으로 울려 퍼지는 해금의 전주를 깔더니 이선희의 '인연'을 부르더라.
튜닝 중이라 다 못듣고 온게 아쉽다.
양평역에서 용산역까지 전철을 이용하여 공간 이동했다.
*
산행 장비치고 중요하지 않은 건 없겠지만 전문 산꾼 이던 아니면 처음 산을 가던 누구라도 가장 먼저 장만하는 것이 등산화다. 그만큼 산의 지형은 돌과 바위 때로는 나무뿌리 등으로부터 발을 보호해주기 때문에 일상에서 사용하는 신발은 험한 산길에서는 부적당하다.
등산화의 선택 기준이라면 개인별 선호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체로 편안한 착화감과 비탈진 사면에서도 미끄러지지 않는 바위 등과의 접지력 그리고 나아가서는 발의 열기를 배출하며 방수가 되는 투습 등의 기능 그리고 디자인 및 내구성 등으로 꼽아진다.
몽벨브랜드의 모토는 ‘Light & Fast’ 다. 도심의 작은 산을 오르내리는 행위라면 상관없으나 장기간 종주 산행을 한다던지 긴 산걸음 일수록 무게는 산행에 역행한다. 산행의 형태에 따라 중 등산화와 경등산화 그리고 암릉 어프로우치 용인 리지화 등올 구분하고 보다 세부적으로는 가벼운 산책, 말하자면 둘레길 등에서 신을 수 있는 트레일 워킹화 등이 있다.
리지화로서 나아가서는 암벽화로서 활용을 했었고 간단한 산행과 라이딩에서 활용하였다. 바위 와의 접지력을 보건데 그리고 그로 인한 내구성을 보건데 기존의 전문화 보다는 기능이 못 미침은 당연했으나 1켤레로 다양한 아웃도어에 활용하려면 추천할 만했다. 단 이 경우에도 가벼운 암릉 등에는 상관없으나 난이도가 높은 나이프리지나 암벽화 용으로는 맞질 않다. 몽벨의 크로스오브 GTX 등산화는 어느 한 분야의 전문화로서의 역할보다는 이 모든 걸 카바하는, 이른바 '아웃도어용 멀티슈즈' 라는걸 지난 1달여간의 체험에서 나름 결론을 내렸다.
다이얼로 핏팅시킨 착화감은 걸음시 전혀 거슬림이 없었으며 등산화 선택에서 경량화가 요즘의 대세로 이 점에서도 370gr.에 불과하여 전혀 무게 부담이 없었다.
Fast의 관점에서 적용한 보어 클로져 시스템은 기존의 끈 묶음이 주종인 등산화에 비해 한결 편리했다. 이건 기존의 산행에서는 집에서 신고는 산행을 마칠 때까지 있다가 귀가해서야 등산화를 벗던 것이 일반적이다. 그건 산행 중에 끈을 풀고 묶는 것이 여간 귀찮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투습 등의 기능성 소재로 발의 열기가 배출되기는 하나 아무려면 벗는 것 보다야 좋을 순 없다. 이런 점에서 끈으로부터 자유로운 보어 시스템은 획기적이다. 한가지 아쉬움이라면 현 외측으로 돌출된 다이얼은 외부 충격에 쉬 노출되어 있다. 이를 텅(Tongue)의 중앙 상단으로 옮기면 한결 보호를 받는다. 보다 지형이 평탄한 골프나 스키 등과는 달리 거친 산행 길에서는 매 걸음마다 예측하기 어려운 것들로 부터 부딪힐 위험이 많으므로 현 다이얼의 위치는 편의성 이전에 내구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즉 '제품은 1) 실용적이어야 하고 2) 기능성이 있으면 좋고 3) 보다 업그레이드된 제품을 추구해야 한다' 고 여긴다. 본 크로스오버GTX 등산화가 ‘Light & Fast’ 측면에서 업그레이드에 포커싱을 맞춘 것은 당연하나 보어 다이얼의 외측 부착은 핸들링의 편의성을 제공하기는 하나 내구성의 측면에서는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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