篤材洞
조탁을 하는 연습 바위일련지.
정리가 된 듯 하더니만 난잡하다.
夢齋
좌측으로 '추사' 각자가 있다.
可濯泉
흐트러진 마음을 씻어내는 샘이 솟는다... ?
流磨瀑
眉叟先生杖屨之所.
미수 허목의 자취가 있었던 모양이다.
미수 허목은 청남의 영수로 불리운다.
효종 사후 계모인 자의대비 복제문제로 서인의 영수인 우암 송시열의 기년복(1년복)설에 맞서
참최설(3년복)을 주창하였으나 현종은 우암의 손을 들어 주었다.
이로 인해 허목은 삼척부사로 좌천되고 수많은 남인들이 삭탈관직 당하고 귀양을 갔다.
고산 윤선도 또한 이로 인해 귀양을 갔다.
이른바 기해예송(1차 예송)이다.
정권을 누가 잡느냐에 따라 목숨이 오가던 시절이라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논쟁을 하였다.
허목은 송시열로부터 사문난적으로 몰린 백호 윤휴와 함께 노론 영수인 우암 송시열의 최대 정적.
미수 허목
하얀 눈섭으로 88세 (米壽) 까지 살았다.
... 해서 정권에서 밀려난 남인들이 수려한 북한산 계곡으로부터
서편으로 산을 2개나 넘은 노고산 독재동은 서슬퍼른 서인들의 핍박을 피한 남인들로서는
산새 소리와 계곡물소리에 묻혀 음풍농월을 읊으며 이곳에서 마음을 달래며 후일을 도모하는
그야말로 꿈에서나 그려보는 '夢齋'가 아니었을련지.,
추사 역시 양반 가문의 노론 후손이었으나 중인인 실학자 연암 박제가를 스승으로 두고
다산 정약용을 받드는 등 실학자인 남인들과 깊은 학문적 동지애를 나누었다.
노고산정에서 바라보는 동편의 북한산.
*
허우단심님과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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