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맥에서 비껴선 가리산
의정부에서 포천 가는 47번 국도를 따라가면 우측 하늘로 남에서 북으로 이어지는 산맥의 기세가 등등하다. 한북정맥이다. 백두대간의 추가령에서 분기된 그 맥은 갈비로 유명한 포천의 이동면에서 가까운 국망봉에 이르면 뻗쳐나가는 그 힘은 최고조에 다다른다. 어느 때고 산행이 안 좋은 계절이 없겠으나 흰 눈이 온 세상을 덮는 맑은 겨울날, 방화선이 길게 이어진 이 능선마루를 걷노라면 사방으로 거침없이 펼쳐지는 설국을 바라보는 가슴 속의 상쾌함이 이를데 없다.
올 3월초, 국망봉에서 신로령으로 가다가 보는 왼편의 가리산.
가리산은 한북정맥의 신로령에서 서편으로 내려서다가 다시 홀로 솟아있다.
화면 중앙은 신로봉 능선이다.
국망봉에서 북으로 지근인 신로령은 도마치 봉으로 달려가는 기존의 정맥길 외 또 다른 험한 암봉 몇 개를 서쪽으로 보낸다. 신로봉 능선이다. 이는 좌의 국망봉에서 흘러내린 능선을 사이에 두고 자연휴양림 내의 장암저수지로 닿는 광산골이 흐른다. 이 즈음하여 신로봉 능선은 완전히 몸을 숙이며 사그라지는 듯 하다가 다시 암봉을 세워 올린다. 그러니까 남북을 잇는 정맥 길이 아닌 서편으로 뚝 떨어져 있는 쌍봉인데, 가리산이다. 산중에 홀로 떨어져 있어 이게 가평과 포천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남으로는 남양주 북으로는 철원 등지에서도 볼 수 있다. 그만큼 남북으로 흐르는 정맥과 거리를 두고 있으며 서편 아래로는 포천의 외진 시골마을을 가로지르는 국도 뿐인 외딴 봉이어서 멀리서도 쉽게 드러난다.
... 그래도, 가는거야.
가리산을 간다. 년중 산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한북정맥상의 고봉들에 비해 홀로 뚝 떨어진 탓에 아무래도 발걸음이 뜸할 수 밖에 없다. 허나 그 정도는 지리적인 문제일 뿐, 산객들의 발길이 없는 이유는 진작 따로 있다. 그건 그 일대가 장뇌삼을 재배 하는 사유지라 주변으로 빙 둘러 출입통제를 하고 있다. 객역시 그러한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여차하면 눈에 걸리던 곳이라 어찌 그 곳이 궁금하지 않겠는가.
(가리는 비료로 사용되는 원소번호 19번인 칼륨(K)의 일본식 발음으로 과거 이 일대에 칼륨광산이 있었다는 데서 유래한다고 한다.)
삼밭
그 첫번째 이야기.
첫 발걸음은 실패였다. CCTV 카메라가 쬐려보는 철문이 열린 삼 재배 구역으로 들어갈 때만 해도 별 개의치 않았다. 제지하면 되돌아 나오면 그 뿐. 허나 그게 그렇지 않았다. 입구에서 졸고 있는 경비견을 조심스레 통과하는가 싶었는데, 아 이게 웬걸 목줄 풀린 개가 사납게 짖어대며 쫓아올 때, 관리사의 너른 공터가 떠나갈 정도의 비명이 튀어나왔다. 연방 달려들 것 같은 개는 일정 거리를 두고 예기치 못한 상황에 처한 무단 침입자의 허점을 노리며 위협하기 시작했다. 기싸움이었다. 분기탱천한 경비견과 대치하는 그 길고도 긴 일촉측발의 팽팽한 긴장 속에서도, 주변으로 위기에 처한 객을 도울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한마디로 식겁했다.
꽃향유
임도를 따르다 본 왠 산.
신로봉인가 ?
그렇다면 서있는 곳은 광산골이 되어야 하는데.
그럼 아닌데...
삼 농사를 위해 닦아 둔 임도를 곧장 따라가다가 고개를 넘는다. 여전히 통제구역이다. 임도가 끊어진 작은 폭포가 있는 계곡아래도 내려 갔었고 지난 비에 사면이 허물어진 산으로도 잠시 올랐다가 다시 내려왔다. 아무튼 어딘지도 모르고 뺑뺑이만 돌았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산으로 올라 붙을 수도 없었던 건, 방향감각도 없었거니와 산비탈 곳곳으로 팻말을 세워두고는 ‘입산금지’와 ‘형사책임…'운운하는 걸 보고는 입산은 엄두 조차 내질 못하겠더라.
여기도 지나쳤다.
그리고 한참 후에 다시 돌아 나올 땐, 이미 산행은 접었다.
아~ 가리산은 어딘가...
인기척을 느끼자 폴짜거리며 뛰어 다니더니만
그러다가 가만이 멈추더라.
손으로 건드려도 꼼짝도 않는게, 그냥 죽은 채...
산비장이와 표범나비.
도감을 뒤져봤다.
아니 엉겅퀴일 지도 모른다.
螳螂拒轍당랑거철
곤충의 왕으로 군림하는 사마귀는 거칠 것이 없었다.
'감히, 누가 내 앞에서...' 라며 커다란 집게 발을 곧잘 들어 올리곤 했다.
따스한 가을 햇살이 내리는 어느날,
여유롭게 길을 건너던 사마귀.
저기서 부터 웬소리가 땅을 울리며 오는게 아닌가.
'아니 누가 이리 소란한가' 하고는,
예의 앞발을 치켜들며 아낌없이 그 위세를 떨었다.
가까이 굴러오던 마차는 그대로 사마귀 위를 지나가 버렸다.
아무 일없이...
디카를 들이대자 작업 중인 사마귀들이 곁눈질하며 슬슬 자리를 피한다.
발걸음을 돌려야 겠다고 마음먹은 순간, 개 3마리가 지키던 그 곳을 어떻게 빠져나가느냐는 생각에 머리가 다 지끈거렸다. 그러면서도 별 수없이 초라한 걸음은 그 임도 길을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차라리 관리인이라도 만났으면 했다. 사람이니까 얘기는 통하지 않겠는가. ‘사유지 무단 침입... 죄송…’ 하면서. 저 만치 관리사가 보이는 임도 시작점에서 계곡으로 내렸다.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가 그 놈들(개 3마리)의 청각을 방해하고 낮은 자세로 살금살금 내려가면 은폐는 물론 냄새까지도 상당히 상쇄되리라.
큰엉겅퀴
개울 옆의 산부추.
이게 뭔 꼴인가. 산을 올라가기는커녕 몇 시간이나 주변을 헤메다가 포기하고 그냥 빠져 나가려는데, 길을 두고 뫼로 아니 개울로 경비견의 눈을 피해야 하다니... 가을 햇살이 잘게 부서지는 계류를 따라 숨 죽인 걸음을 내렸다.
철문 입구를 얼마 두지 않고 개울을 거의 다 벗어나올 무렵, 여태까지 잘 내려오다가 이끼낀 바위에 미끈하며 중심을 잃고 만다. 풍덩하며 온몸이 물에 빠지는 것과 개들이 짖어대기 시작한 것은 거의 동시였다. 철벅거리며 빠져나온 도로에서 푸른 가을 하늘아래의 가리산이 눈에 잡힐 듯 가까웠다.
아...왠노무 하늘은 저리도 맑은가.
*
두번째 이야기.
1주일 후 다시 찾았다.
번째 이야기.
흐리다. 의정부 역에서 승차한 138-5번 버스는 2시간을 달려 가리산이 빤히 올려다 보이는 장뇌삼 재배단지 앞에 홀로 내린다. 포천의 일동을 얼마 지나지 않은 금주산 등로 입구에서 두어명의 산객이 내렸고 사향산을 가려는 듯한 산객이 이동에서 하차한 데에 비해 전주와 마찬가지로 가리산을 가려는 산객은 여전히 혼자다. 좀체 접근이 용이하지 않은, 가리산은 섬이다.
장암저수지에서 오르는 등로와 연결된다.
폐쇄라는 곳으로 부터 올랐다.
도로에서빤히 올려다 보이는 가리산을 중심으로 하여 좌측 능선이 도로로 내려서고 우측으로 내리는 능선의 그 우측 아래는 광산골로, 이는 장암저수지로 이어진다. 선답자의 행로를 살핀 결과 우측능선에서 가리산으로 오르는 등로가 있다는 걸 알았으나 3시간이나 걸린다는 기록에는 고개를 갸우뚱 했다. 1시간이면 될텐데...하는 느낌을 쉬 떨쳐 버릴 수가 없을 정도로 지근이었다. 기록이 없는 좌측 능선을 고려하지 않기로 한 것은 그 곳 역시 통제구역 내이며 등로 역시 알려진 바 없었다. 공부 많이 했다. 지난 번 시행착오의 결과로 한결 신중해 졌다.
커다란 문인석이 자리하는 묘를 끼고 돌아가는 우측 능선을 살핀다. 색 바랜 표지기가 반갑다. 사면 왼편의 오름길을 따라 장막이 산을 둘렀다. 들어오지 말라는 얘기다. 그렇지 않아도 더 이상 갈 이유없다.
올라선 첫 암봉에서 보는 주변 조망.
위 좌로 부터 가리산 그리고 신로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아래 좌로 부터 정맥에서 뾰족한 봉은 국망봉, 포천의 마을
조망없는 사면을 1시간 오르자 나타난 이정표가 반갑다. 국망봉 아래의 장암저수지 쪽에서 연결되는 등로로 신로령으로 오르는 길이다. 이정표에 따르자면 들머리로 했던 묘지 뒤길은 폐쇄된 등로였다. 허긴 묘부근에서 부터 ‘등로없음’ 이라는 표지판을 보기는 했다.
이내 올라선 첫암봉에서 가리산이 임도를 사이에 두고 지근이다. 조망좋다. 여차하면 좌로 곧장 떨어져 통제구역인 임도에서 가리산을 올라 갈 수도 있겠다. 그러고 보니 전주, 저 길 어디쯤서 갈피를 못 찾고 헤맨 기억이 아프다. 출입금지라는 표지판은 그 뒤로 몇번이나 나타난다. 허나 그건 등산로 라는 또 다른 표시와 다름아니다. 기존 등산로를 폐쇄하는 곳엔 늘 그런 식의 알림 글이 세워져 있다는 건 경험으로 안다.
왼편으로 가까이 보이던 가리산은 이미 지나치고 신로령이 점점 가까워 질 때 까지도 연결되는 등로가 보이질 않는다. ‘아까 알림글 표지 뒤로 다시 돌아 갈까… 아니 말까…곧 나오겠지, 뭐...' 조급증이 마음속으로 이는 걸 막을 수 없다. 그러면서도 걸음은 그저 신로령으로 안내되는 가이드 줄을 잡으며 미씸쩍은 오름질을 할 뿐이었다. 그러다가 저 아래의 임도를 본 것은 반갑기 그지없었다. ‘됐다. 이젠 등로고 뭐고간에 무조건 고~’ 하면서 길도 없는 급사면의 흙을 체중을 실어 뭉게며 간신이 내려간다.
나뭇가지 사이로 본 허연 임도가 좀 더 확연히 드러날 무렵, 또 다른 낭패를 맛보게 된다. 그건 임도가 아니라 바위슬랩이었다. 그걸 무릅쓰고 라도 더 이상 내려설 순 없었던 건, 주변의 숲은 여기서도 가름할 수 없을 정도로 보이는데 하물며 그 숲 속에서는 벗어나기가 여간 예사롭지 않을 것 같았다. 헛걸음질한 급사면을 다시 힘겹게 올라선다.
신로령에서 서편으로 이어지는 암봉.
선택의 여지없이 초라해 질대로 초라해진 걸음은 그냥 신로령으로 이을 뿐이었다. 차후에 하산하면서 찾을 수 밖에... 그러다가 다시 조망이 터인 곳은 신로봉에서 서편으로 내리는 3거리의 작은 암봉에서 였다. 가리산으로 이어지는 등로는 여기에 있었다. 여전히 통제라는 표식보다는 그만 포기를 하고 신로봉으로 갈까, 아니 여기서라도 가리산을 갈까. 거리는 비슷해도 적잖은 고민을 한다. 간다면, 지긋지긋한 삼재배 단지의 개들의 경계를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그렇다고 이번이 아니면 다음에 국망봉을 거쳐서 하산로로 이용하는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삼세번 !’
허나 그런 고민과는 상관없이 발걸음은 철망을 넘어서 가리산을 향하고 있었다.
좌의 절개지에서 내렸 오른다.
구절초
가리산정
온갖 시행착오 속에 올라선 가리산은 멀리서도 두드러졌듯이, 정상은 사방둘러 막힘없는 조망을 내어 준다. 그저 날이 흐린게 아쉬울 따름이다. 늦은 점심을 먹는 사이 가는 빗방울이 떨어진다. 오는 겨울, 신로령에서부터 하산로로 해서 다시 오고 싶다. 그땐 온 천지로 하얀 눈이 덮여야 하고 날씨는 맑음이어야 한다. 그랬으면 좋겠다.
가리산은 산 속의 섬이다.
가리산정에서 빙 둘러 보이는 조망
야생화 중에서 들국화라 불리우는 것들은 참 많더라.
벌개미취와 쑥부쟁이가 같은 건가.
이고들빼기
감국
잔대 혹은 모싯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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