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록빛 잠행, 석룡산에서 도마치. 100529

강기한 2010. 5. 30. 09:14

 

청량리에서 가평(목동)가는 1330-2(3)번 아침 7시경 버스는 늘 널널하다.   운전석 뒤, 3번째 좌석 2개를 널직하게 차지하며 선잠을 즐기기도 하고 배낭을 옆 좌석에 두고 1시간 반 가량, 신문이나 뭘 보기에도 부족함이 없는 그 공간을 찾아가는 것은 적잖은 즐거움이다.    덕분에 후반부가 지겨워 수삼 년 제쳐 둔 '토지'의 마지막 장을 넘기게 된 것도 주말 산행을 위해 오며 가며 하던 버스 안 이었다.

 

5월의 마지막 주말, 가평향 버스를 기다렸다.  , 이게 왠걸.  환승센터에 도착한 1330-3은 이미 만원이었다.   가평 목동에서 첫 출발한 버스의 회차지점이며 종점격인 직전의 현대코어 정류소에서부터 승객들을 가득 태운 채 도착했다.    그렇잖아도 환승센터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예전과 달리 십여명을 쑥 넘어가는게 의외라 여겼었는데...

 

가평은 겨울에 즐겨 찾던 심설 산행지였기에 이런 풍경은 낯설기만 하다.     허긴 온 산이 신록에 잠기고 산나물 채취를 겸사한 나들이 하기에 알맞는 날씨로 인해 어딘들 안그럴까.   단잠은 물론 뭘 보는 건 고사하더라도, 등짐지며 선채로 꼬빡 1시간 반이나 이리저리 흔들거리며 버티고 서있는 공간마저 위태로울 지경이다.

 

 

 

버스 좌석을 잡으려 미리 줄을 선 산객들.

 

 

 

도착한 가평 터미널 역시 예전과는 달랐다.   커피한잔으로 겨우 한 숨 돌리며 찾아 간 군내 버스에도 산 객들의 긴 줄이 늘어져 있는게 아닌가.

 

 

 

용수목버스 종점의 매발톱

  

  

 자줏빛 매발톱

 

 

목동에서 몇 산 객을 더 태운 시골버스는 명지산 입구에서야 비로서 반 이상의 산 객들을 쏟아 내었으나 여전히 좌석에 여유가 없긴 매 한가지.

'두시간 이상 버스를 서서 타고 오는 것 보다, 차라리 그 시간 만큼 산길을 걷는게 덜 피곤할게다.'

 

 

 

 수국

 

 

용수목, 가평 군내버스의 종점.  좌는 국망봉을 위시하여 한북정맥을 잇는 고산준봉이 가로 막으며우는 경기 최고봉인 화악산이 장엄한 산국을 이루며 버티고 서 있다.  빠져 나갈데 라고는 좌우측 산을 피해 북으로 갈 수 밖에 없다.  그렇게 이어지는 75번 국도는 한북정맥의 주요 기점인 도마치 봉 아래의 도마치재를 넘어서, 포천에서 올라 오는 광덕고개를 지나 화천의 사창리로 가는 길에서 3거리를 이룬다.   역으로, 그만큼 사방천지가 산이라 한결 깊이있는 산행지로 제격이다.

  

번잡한 도심인근의 산행에서 뭔가 새로운 산걸음이 그리울 때면, 여기 주변의 산이야 말로 기가 막힐만한 하다.   용수목까지는 아니더라 해도 지나가는 길 옆의 연인산과 그리고 명지산 등지로 가는 숱한 등로를 포함하여, 어지간하면 다들 천 미터 정도는 쑥 넘어간다.  굳이 높이가 그 정도에는 못 미친다손 하더라도, 산행의 느낌만은 널직한 등로에서 어깨를 부딪히며 때로는 앞질러 피해가야 하는 도심 산에서의 산 걸음과는 사뭇 다른 산들이 지천이다.   하물며 계곡에 발 담그기 조차 쉽지 않은 근교 산과는 달리 여기는 그런 것 쯤은 아무런 문제도 안된다.  몇 가지 조건만 맞다면 깊숙한 계곡 어디쯤에서는 심산을 훑어 내려온 차가운 계류 속에서 산행으로 한껏 데워진 몸을 단박에 식혀 내릴 수 있을 정도의, 농밀한 숲으로 감춰진 소와 담이 여럿있다.

 

 

 

 얜, 이름이 우째되지. 

 

 

석룡산을 간다광덕산을 내려온 한북정맥은 캬라멜 고개에서 백운산으로 다시 올라 도마치봉으로 이어진다여기서 남으로는 정맥 최고봉인 국망봉으로 솟구치고 다른 한 줄기는 동남의 화악산을 향하여 뻗어간다.   이는 화악지맥으로 불리우며 석룡산은 경기 최고봉인 화악산 가기 직전에 솟은 산으로 천혜의 자연림과 청정한 계곡을 거느리고 있다.  산행은 조무락골 상류를 따라 쉬밀고개에서 석룡산을 오르고 내친 김에 정맥과 지맥의 분기점인 도마치까지 긴 능선을 이으려 했다.

 

화악지맥 ; 경기와 강원을 가르는 도계가 지난다.

'도마치봉>도마치재>석룡산>화악산 북봉>실운현>응봉>촛대봉>홍적고개>몽덕산>가덕산>북배산>계관산>소계관산(촛대봉)>물안산>보납산'

 

 

 엉겅퀴

 

 

외길로 이어지던 등로는 외딴 산장을 지나자 이내 나타난 3거리에서 갈렸다.  정상이 가까운 능선길로 단체객을 포함하여 대부분이 그 길을 따랐고

불과 몇몇만, 걸음이 긴 계곡을 계속 따랐다.

 

 

 

웅크린 호랑이, 伏虎洞 폭포.

조무락골 상류를 따르면 우측 지계곡으로 년중 내내 빛이 들지 않을 듯한 좁고 깊은 곳이다.

음기가 가득하여 오래 있을 수 없었다.

'아이고 무씨라 ~'

 

 

조무락골 상류에 있는 등로 바로 왼편의 쌍룡폭포.

이번 남아공 월드컵에서 쌍용(이청용 기성용)의 종횡무진하는 활약을 기대한다.

 

鳥舞樂계곡.

수도권 최고의 청정지역 중 하나로 봐도 될 듯.

알만한 사람은 알고 있겠지만, 안내및 소개는 조심스럽다.

 

 

 온산으로 개화해 있던 벌깨덩쿨.

 

 

조무락 계곡은 석룡산과 화악산 능선사이로 깊이 자리하는 청정계곡이며, 등로는 그 조무락 계곡 상류를 따르다가 석룡산으로 이르는 쉬밀고개 길과 화악산 중봉으로 오르는 갈림길이 나타날 때 까지는 편한 걸음이 이어진다.   쉬밀고개로 향하는 왼편으로의 잠깐 급한 사면만 지나면 그리 힘들다 할만한 길은 없다.   등로는 가끔은 화악산정이 빤히 보이는 조망도 있으며 때론 신록으로 가득찬 숲을 따르기도 한다. 

 

 

 

호피무늬를 한 나방

 

 

 싱그러운 숲 길

 

 

신록에 투영되어 내리는 햇살은 은은한 빛으로 수음을 이루었고, 천고지를 쑥 넘어가고 있는 숲 길섶으로는 낮게 엎드린 벌깨덩쿨을 비롯하여 피나물 등이 허리아래로 걸렸으며 개화한 분홍 철쭉이 가끔 저편으로 보이는게, 숲은 고요와 편안함으로 가득했다.  그러다가 잠시 우측으로 열리는 저 편 하늘아래로 군 구조물이 세워진 화악산정이 보였다.   올라선 쉬밀고개로 부터 석룡산정은 그리 멀지 않다.

  

 

 

분홍철쭉

 

 

석룡산정.

정상은 잡목이 가려 조망은 없다.

서북으로 300 M 거리에 있는 2봉이 낫다.  

 

 

 석룡산에서 서북쪽 지근거리의 제2봉에서 본 화악산정.

좌 봉우리가 석룡산정상.

 

 

 도마치 고개로 가는 갈림길의 이정표.

 

 

도마치 재로는 마음 단단이 먹어야 한다.   일단 들어서면 중간 탈출로는 없으며 오로지 전진만 있을 뿐이고 처음 절반은 그런대로 널널하여 상대적으로 편하나 나머지 절반은 은근히 난이도 있다.   길이 어렵다는게 아니라 등로는 뚜렷하나 지나치는 발걸음이 귀하기에 녹음 짙은 좁은 등로로 뻗치고 나온 철쭉가지를 고스란히 감당해야 함은 물론 수시로 얼굴로 감기는 거미줄을 왠만큼 딲아낸들 여전히 이리저리 걸치게 된다.   이런 점에선 녹음 짙은 여름보다 차라리 잎을 다 떨궈낸 눈덮힌 겨울이 더 용이할 수도 있다.

 

 

 

 피나물.

푸른 잎을 꺾으면 붉은 진액이 나온다.

 

 

지면 가까이로 자리한 은방울꽃.

물론 배를 땅으로 바짝 엎드렸다.

 

 

 딱 하나가 있었는데,

넌 뭐지 ?

 

 

 병꽃.

나뭇잎으로 주렁주렁 달려 있는데 볼 때마다 좋다는 느낌이 오질 않는다.

퇴색되는 듯한 우중충한 붉은색은, 늘 시들은 것 같기도 한게...

병을 닮았다고 해서 '꽃'이 아니라 어쩌면 '病꽃'이 본 이름 일지도 몰라.    

 

 

몰라(아이돈노)

 

 

 한북정맥이 공제선으로 널렸다.

숲으로 사방이 꽉 막힌 능선으로 가끔 조망이 열리기도 한다. 

 

 

 

 앵초.

반갑더라.

 

  

 화천군 삼일리.

지난 해 겨울, 화악산 북봉에서 석룡산으로 가려다 길을 잃었다.

해 짧은 오후, 겨우 내려선 곳이 알고 보니 삼일리 였다.

마을 이라기 보다 군부대.

  

  

 공제선 중앙은 광덕산, 그 우측으로 상해봉.

그리고 회목현으로 떨어지다가 회목봉으로 다시 일어난다.

역시 한북정맥의 줄기다.

 

 

 둥글레.

 

 

긴 숲을 헤메다가 모처럼 나타난 개활지에서 겨우 한 숨 돌렸다.

방화선 인가.  거리가 짧아서 별 의미가 없을 듯 한데.

 

얼마 지나지 않아 발걸음 앞에서 뭔가 꿈틀했다.

... 배암이.

잘 담으려고 포커스 맞추고 있는 중에, 그만 휘리릭 ~

 

 

 

 딱 한그루였던 어떤 야생화.

 

 

 우측 끝으로 보이는 화악산.

그 뒤는 이칠봉과 응봉.

  

 

삼거리서 부터 접어든 길은 그나마 인적을 쉽게 찾을 수 있던 오름길과 달리, 접어드는 순간부터 발걸음이 귀한 길이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거의 평지와 같이 오르내림은 오히려 덜했으나 한결 좁아진 소로임에도 불구하고 발걸음으로 채이는 길섶의 낮은 풀들의 자세가 꼿꼿하기도 했으며 왠만큼 깊은 산이 아니곤 보기 힘든 야생화 등에서도 다소 생경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도마치로 이르기 까지의 등로는 한치 벗어남 없이 날등으로 그어져 있었으며 샛길이라던지 탈출로 따위는 찾아 볼 수도 없었거니와 설사 불확실한 몇 능선 저 아래로 보이는 마을로도 내려설 수는 더더욱 없는 노릇이고 보면 그냥 좁은 등로를 따라 도마치재로 가는 것 외는 달리 방도가 없다.   

 

 

 

산을 다 내려온 개울 옆의, 민들레.

 

 

바람에 훨훨 홀로 잘도 날아다닐 것 같다.

그래서 민들레는 '홀씨' ?

...

 

아니란다, 민들레는 '겹씨'라더라.

어느 전문가의 말이니까 믿는다.

그러니까, 노랫말도 함부로 만드는게 아니구나. 

 

 

 내려선 도마치고개.

 

 

빠르게 내리는 사면 저 아래로 요란한 계곡 물소리가 들릴 무렵, 가평에서 화천을 잇는 도마치재가 우거진 수풀사이에서 휠끔거렸다.  내림길은 늘 바쁘다.  거친 발아래로는 녹아내린 수액으로 퇴적된 촉촉하게 젖은 검은 흙이 연신 허물어졌다.  바삐 찍어대는 쌍지팡이를 잡은 손이 내림 길 낙화 속도를 따르기가 버거워 가끔은 비좁은 사면 아래로 잽싸게 잡은 나무둥치를 중심으로 걸음이 헛회전을 하곤 했다.

 

 

 

 저기 75번 국도를 빠져 나왔다.

명지산을 원점회귀 산행 후, 드라이버 삼아 산골도로로 왔다는 부부 산객의 차를 얻어 타고서...

사진을 담은 곳에서 좌는 사창리 방향이고, 우는 광덕고개를 감고 돌아 포천으로 간다.

헌병초소가 있는 3거리에서 동서울까지 \9,800.

 

 

 

재도로를 따르는 유속 빠른 계류에 머리를 담그자 서늘한 기운 하나가 등줄기로 빠져 나갔다.   대충 훔쳐 낸 물이 어깨를 적셔 갈 동안 수풀사이에 놓여진 한적한 도로를 털레털레 걸었다.   계절은 여름으로 가는 길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