暇
봄바람...
강기한
2008. 3. 18. 14:03
밤이 깊은 버스 정류소.
엷은 바람이 쓰윽 하며 분다.
따뜻했다.
얼마 전 가볍게 지나치면서도 콧등을 아리게 하던 그런 바람이 아니다.
택시 하나가 섰다.
여자가 내린다.
젊은 여자다.
뒷 자리에 앉아 있던 남자는 문을 열은 채 내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잠시 싱갱이를 한다.
지갑에서 만원 짜리 대 여섯장을 꺼내 여자에게 주려 하나 만면에 환한 웃음을 띤 여자는 한사코 마다한다.
주거니… 받거니…
그러는가 하더니 남자가 뒷좌석에서 엉덩이를 질질 끌고는 한번 비틀하는가 하면서 시간을
두고 일어선다. 그 때 남자의 엉덩이에서 밀려 나온 뭔가가 짧은 빛을 어둠 속에서 던지며
땅 바닥으로 뚝 떨어졌다.
어둠이 짙었으나 간간이 옆을 스치는 차량들의 불 빛에 순간적으로 반사되며 떨어지는 것을
그는 분명히 지켜 보고 있었다. 그것은 조수석 뒷바퀴에 잠시 머무를 새도 없이 이내 떠나
버린 택시 뒤에 남아 홀로 도로변에 있었다.
여자는 비틀거리는 남자를 부축이며 이내 그 자리를 떠났다.
그는 도로 턱을 잠시 내려서는가 하더니 서서히 그것을 집어 들고는 바지 호주머니 속으로 쑥
집어 넣고는 만지작 거리다가 도착하는 버스를 타고 가버렸다.
밤이 깊은 버스 정류장을 지나치는 차량은 점점 뜸했으나,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은 이미 어
제의 그 바람이 아니었다.
*
길에서 주운 카드 가지고 물건을 사면 어떻게 되나요.
새로 나온 페츨 헤드랜턴이 좋아 보이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