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 하늘길 리지 개척작업 [컬럼비아 FT] 080308
따뜻했다.
혹시나 산정에서 바람이 불면 어쩌나 하여, 프로쉘 자켓을 짚티 위에 걸치고 집을 나섰다. 파일자켓은 별도로 하네스와 암벽화 등과 함께 배낭에 넣었었다.
클라이밍이 극성인 악우들은 겨울에도 따뜻한 날은 어김없이 등반을 이어왔음이 틀림이 없을 터였지만 겨울 산의 짙은 고독을 즐기는 나로선 심설산행 또한 호 시즌이라 암벽의 유혹을 애써 멀리하며 겨우내 가평 일원의 심설산을 홀로 부지런히도 쏘다녔던 것이었다. 간만에 들린 카페 악우들의 질타는 당연한 것이었다. ‘뭔일 있었수...아팠쑤…또는 서운한 거 있었쑤…’ 라는 물음엔 ‘에…세계평화를…’ 운운 하고는 저간의 사정을 뭉게 버렸다.
지난해 삼성산의 숨은암을 모암으로 개척한 이래 유리한 어프로우치 때문인지 휴일이면 수십명의 클라이머들이 찾는 예기치 못한 방문으로 진작 개척한 본 카페회원들 조차 줄을 서서 기다려야 등반이 가능할 지경이었다. 그런 과분한 호응이 격려가 되었는지 지난 연말 S.R.A.C. 라는 암벽팀만 별도로 개설한 회원들은 다른 분들이 개척 해둔 바위길을 등반한 것에 대한 보답과 어떤 사명감으로 새로운 리지길을 개척 하자는 얘기가 있어는 왔었다. 그게 지난 겨울새 일사천리로 진행된 모양이다.
작년 숨은암장을 주도적으로 개척한 올해 환갑이신 형님은 의욕이 앞서서 인지 점핑세트로 무리하게 함머질을 하다가 당신의 인대가 손상된 지도 모르는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개척하였는데 진작 뒷짐 지고 있던 힘 좋은 젊은 나는 형님의 그런 열정이 부럽기도 하거니와 한편으로는 안타깝게도 생각 했었다. “행님, 다음에는 내가 할께요.” 라고 농 삼아 말을 던지고는 악우들과 간간이 문자와 메일은 주고 받긴 했으나 이런저런 사유로 두어 달을 불쑥 넘겼더니만, 아 글쎄 이번에는 관악산에다가 리지길을 개척 중이고 오늘이 마지막 마무리 작업을 한다는 것이었다. 형님은 의사의 강력한 협박이 있어 본격 치료를 한다고 하니 다행히도(?) 이번 개척에는 한걸음 뒤로 물러나 있는 것이었다.
아…이런…말이 암벽이지 후등 마저도 갖은 인간적인 수단(?)을 동원하는 주제에 바위의 볼팅작업은 그야말로 언감생심이다. 산아래서 물 길러오기 3년, 장작패기 3년, 불피우기 3년을 거쳐야 그나마 목검 잡는 법을 배운다는 심오한 개똥 철학도 모르진 않으나…아무래도 그게 그러는 거는 아니다.
‘육봉 어디…’라고 했는데 하면서 간 들머리는 경방기간인지 그나마 좁아진 샛길마저 굵은 미제 자물쇠 같은 걸로 채워뒀다. 그 앞을 서성이며 육봉이 처음일 듯한 중년 산객 예일곱명이 나의 씩씩한 걸음을 보고는, 몇마디 묻는가 했는데…단번에 ‘아이씨팔로미’ 라는 품위있는 육두문자를 몹시도 반기는 기색이 역력하는가 했는데 줄줄이 사탕식으로 나의 꽁지를 잡는다.
우회로로 접어든 관악산의 후미진 기슭에서 프로쉘 자켓을 벗지 않으면 안되었다. 왠만하면 입고 산을 타려고 했으나 완전히 풀려 버린 3월 첫 주말은 따사한 바위에 누워 한 잠 퍼질러 자도 좋을만 했고 능선을 찾아가는 육봉리지의 지능선에 올라도 바람 한 점 없다.
문원폭포 위가 개척한 리지의 초입이라 하여 본격 바위 능선이 시작되는 기존 리지를 버리고 건너편 지골짜기를 두어 개 오르내리자 저 아래에서 먼저 출발한 악우들이 이제야 등짐을 벗고 무장을 하는 그림이 보였다. 내가 선 곳은 3피치 출발점이었다. 마커로 바위에 ‘3P’ 라 써 놓고는 나뭇가지에다가 ‘하늘길’ 이라며 빨간슬링에다가 매직으로 꾹꾹 눌러 썼다. 반듯하게 눌러 쓴 고딕의 글씨체를 봐서는, 어지간한 비바람에도 지워지지 않고 길이길이 보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 같다. 나도 그래 되기를 빈다. 이/노/마…
악산의 순위를 매긴다 쳐도 빠지지 않을 관악산이지만 북한산이나 대둔산 그리고 설악산 등과 같이 기슭에서 산정까지 장엄하게 이어지는 바위능선이 아니라 바위덩어리를 하늘에서 군데군데 뿌려 놓은 듯하여 온 산에 걸쳐 바위가 없는 곳은 없으나 그게 연속이 아니라 독립봉들 뿐이었다. 그래서 암장이 북한산 처럼 개발되지 못하고 하드프리용의 소규모의 암장만 별 인기 없이 클라이머들이 간간이 찾아 오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하물며 산정까지의 리지는 연속성이 전제가 되어야 함에 따라 그나마 바위능선을 즐기는 산객은 과천에서 시작하는 육봉리지를 오르곤 하였으나 등반성 이랄 만한 코스는 아니라 그저 워킹 수준을 조금 상회하는 정도이다. 관악산에 리지를 개척한다는 것은 기존의 연속적인 바위 능선이라는 일반 개념과는 달랐다. 오르다가 하강을 하는 것이 정상으로 바로 가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근의 독립봉으로 쏟은 멋진 바위를 찾아 가다 보니 깎아지르는 단애를 횡단하는 사전적인 개념의 트레버스는 아니고 가끔은 산 골짜기를 내려서서 건너편의 바위를 오르기도 한다. 아쉬운 대목이다.
기존의 육봉리지로 오르는 산객들이 바로 옆으로 지나치기도 한다. 어째뜬 8피치 까지 길을 내었다. 8피치의 테라스에서 우측으로 보이는 날렵한 육봉이 푸른 하늘을 배경하고 있는 것은 마음에 든다. 혹 설악의 어디에서 본 듯한 그런 그림이 나온다. 2번으로 끊어지는 하강코스로 볼만하다. 8피치의 옆 선이 또 맘에 있는지 볼트를 몇 개 때려 박고는 9피치라 한다. 보너스인 셈이다. ‘하늘길 리지’를 주도적으로 개척하는 최대장의 사진을 여러 장 박는 것 외에 별 할 일이 없었다. 그래도 괜찮다. 더군다나 요번에는 점핑세트와 함마가 아니라 핸드드릴이다. 착암기 말고 그렇게 잘생긴 핸드 드릴은 처음봤다. 1,2분에 뚝딱하며 한 구멍을 내고 쥬마링으로 올라가는 그림이 무슨 특공대원 같다. 알카에다…그런거 말이다. 그는 바위를 오르는 데 혀를 내두르게 하지만 후배다. 산 후배는 아니고…. 그래도 다음 일요일엔 솔이나 가지고 와서 단애의 조그만 테라스에 붙은 흙이나 깔짝거리며 털어 내어야겠다.
볼트를 박고 방수케미컬 처리를 한 곳을 뒤따라 오르다가 케미컬이 파일자켓에 묻어 고형화 되어 떼는 과정에서 빵구가 났다.
오늘 새로 입은 고어텍스프로쉘 자켓이 아닌 것이 천만 다행이다. 그건 능선에서 바람이 전혀 없었던 덕이기도 했다.
집을 나설 때 잠깐 입고 해질 무렵 산을 내려 올 때는 계속 입고 있었다.
디자인을 내가 말한다는 것은 주제가 넘는 일일 것 같다.
훌륭했다. 그리고 칼라도 차분하였고…
고어텍스의 특성은 악천 후 일수록 그 효과가 지대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터라, 아우
트 자켓을 입고 더운 산 길을 오르는 것은 미련한 일이다. 투습이 된다 손 치더라도.
경험해 본 내지 현 보유하고 있는 일반 3L 고어텍스에 비해 무게가 덜 나가는 것이 2레이
어 때문인지 아니면 30 데니어의 보다 가는 원사를 사용한 것 때문인지...
(무게의 큰 차이는 없었다)
터치감은 팩라이트 보다도 부드러웠고 마찰력 등의 내구성도 강할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굳이 단점을 지적한다면(개성일수도 있겠으나) 지퍼 시스템이 불만스러웠다. 통상의 자켓
과는 달리 지퍼의 손잡이 방향이 반대로 되어 내피를 결합할 경우에는 컬럼비아 브랜드의
자켓과 같은 지퍼 시스템을 따르는 제품만이 결합이 된다는 것이다. 이는 어떤 의미에서는
모험일 수가 있다. 콜럼비아의 외피 자켓을 선택한 소비자가 내피를 선택할 때는 그만
큼 운신의 폭이 좁아지는 것이고 그 반대도 동일하다.
보유하고 잇는 팩라이트의 경우는 짚인짚이 아니어서 그런 문제는 없지만 여전히 반대의 지퍼
시스템에 대해서 익숙하지는 않다. 그런데 진작하고 싶은 말은, 굳이 짚인짚 시스템이필요한가.
외피 하나만 입고 또는 내피 하나만 입을 경우도 있고 물론 둘을 같이 입을 경우도 있지만 지퍼로
함께 체결하지 않는다고 해서 뭐가 불편할까. 한꺼번에 입고 한꺼번에 벗을 때 무엇이 편할까.
결합하지 않는다고 하여 한꺼번에 입고 벗는 것이 어려운 것도 아닐텐데. 혹 과잉 사양은 아닐까.
추가의 제조공정 만큼 원가는 물론 그 만큼 중량도 더 나갈텐데.
조금이라도 중량을 줄이는 것이 더 나으리라 본다.
내피 결합을 위한 양소매와 목 부위의 똑딱이 단추 또한 없어도 되는 부속물은 아닐까.
지퍼에 대하여 몇가지 더 언급할 것이 있으나 좀 더 착용 후 안을 생각해 보겠다.
*
돌아 가는 저 길의 폐가
20 미터 하드프리용 직벽으로 안성맞춤
육봉 능선의 기존 길 옆으로 있는 3피치
자일을 던져라
볼팅 중
깔깔이로 픽싱하고...
방수케미칼 처리 중
하강 코스가 아름다운 8피치의 2번� 하강 볼팅...
함마로 때리기도 하고...
8피치 하강하다가 그림이 좋을 것 같아서... 그냥 갈 순 없잖아.
알카에다 요원의 특수훈련인 줄 알았다는...(근데, 총 저거 등에다 딱 맞게 붙여야 될 것 같은데...)
실루엣 그림도 해보고...
썩은 나무 사이에도 찡가도 보고...
6피치 상단 (기존의 육봉 리지길)
과천...비싼 동네.
육봉능선에서 바라 본 연주대의 첨탑
서 편으로 서서히 찾아드는 어스름
안양 관양동 방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