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에서 만난 그 시절 080205

강기한 2008. 2. 8. 21:07

 

1970 6월의 초등학교 때의 경주 수학 여행길.

무르익어 가는 초여름 햇살이 내리쬐는 경주의 여러 유적지를, 길게 늘어선 아이들의 행렬 어느 중간 쯤에서 불국사를 구경했었고 멀기만 했던 높은 언덕 위에 있던 석굴암을 낑낑거리면서 합동사이다를 입으로 쫄쫄 빨아대며 올랐었다.  

그리고 것이 경주의 박물관이었다. 

오랜 옛날인 신라시대의 생활 흔적 내지는 전쟁에 필요했던 각종 무기들을 전시해 놓은 그런 것들을 봤었던 같다.

 

박물관에 대한 선입견 내지 기억은 사람들의 숨소리가 살아있는, 때로는 거대한 공룡이 지구상에 생존하였고, 삼엽충이니 암모나이트니 하는 그런 화석들이 있어서, ‘ 이게 바로 오랜 옛날에 실존한 증거가 아니냐 이었으며 가까이는 희미한 흑백사진에 담겨 있던 조선말의 거리풍경이라든지 보다 가까이는 6.25 전쟁의 다큐멘터리 필름이나 사진 등으로 나타나 그래 맞아!’ 하고는 실체에 대해서 약간의 의문 조차 가질 이유가 없었다.

 

가벼운 여행안내 코너에 소개된 부천의 여러 박물관 투어를 가기 전은, 초등학교 때에 봤던 경주박물관은 규모였음에 의례히 인근의 부천 박물관도 그러려니 하여 바쁜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아담한 규모의 식물원을 구석구석 돌아 다니는 동안 차가운 겨울인 바깥과는 달리 따스하고 환한 실내에서 갖가지 진귀한 식물을 구경할 때도, 바로 옆의 자연사 박물관에서 어두운 실내 조명아래에 전시된 모형내지 희귀한 박제품이나 간간이 살아 있는 생명체를 책이나 화면이 아닌 실제로 접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다시 한번 현장체험의 좋은 볼거리가 되었다.

 

그런데 예기치 않게 내게 다가온 애잔한 느낌은, 전혀 엉뚱한... 그러니까 규모나 오랜 역사를 지닌 유구한 그런 박물관 전시물이 아니라 보기에 따라서는 초라한 들로 부터 받은 아련한 기억을 더듬어 과거로 되돌아 가는 여행을 하게 되었음은 다소 뜻밖이었다.

 

소규모인 식물원과 자연사 박물관을 산책 하듯이 바퀴 돌아 나오면 저쪽의 마당 켠엔 작은 규모의 초가 농가에서 디딜방아와 허름하기 짝이 없는 갖가지 농기구와 구유(우마의 먹이통) 정지(부엌) 등에서 살며시 피어나기 시작한 기억은 전초전에 불과하였다.  

인근의 종합 체육관에 있는 교육박물관을 들어서자 과거의 애잔했던 기억들이 뭉텅거리며 걷잡을 없이 쏟아 오르기 시작 하였다.

 

그건 실제적인 나의 생활과는 다소 거리가 있을 밖에 없는, 고대에서 현대 까지 통틀어 까마득한 전설이나 사료를 통해서만 배웠던 유물 등의 여타 박물관에서 봤었던 교육적인 그런 것들 과는 달리, 이건 시절 자신이 실제 경험하였고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힘겨웠던 흔적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것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아련한 유년시절로 여행을 떠나고 있는 내가 있었다.

 

마네킹이긴 하나 주임교사와 주번의 완장을 두른 간부 학생이 있는 입구는, 교문을 들어설 때의 긴장감이 몸으로 짧게 흐르는 듯하여 엷은 미소가 피어 오르기 시작하더니, 언제나 교과서의 장에 실려 있던 국민교육헌장을 음각화해  책모양의 구조물을 보고는 어느새 끝까지 줄줄 암송해 내고 만다. 

아무런 영문도 모르고 그렇게 외우기만 했었는데 문맥 하나하나를 되짚으며 찬찬이 들여다 보니 빈곤한 시대의 어려움이 글자 하나하나에 깊숙이 베여 있는 것을 보고는 마른 침을 한번 삼키며 뒷목덜미가 아득해져 옴을 느꼈다. 

신문지로 벽을 덕지덕지 바른 단칸방에서 앉은뱅이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는 미니어츄를 결코 쉽게 지나칠 수가 없었던 것은 까까머리의 학생은 다름아닌 나와 친구들의 모습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난로 위에 밴또( 양은 도시락을 누구나 이렇게 불렀다) 겹겹이 쌓아 올린 하며 켠에 켜켜이 먼지가 풍금이 있는 교실에 들어서는 순간엔, 나도 모르게 울컥해지며 40 여년 전의 아득함이 순식간에 피어 오르며 빠르게 날로 되돌아 가고 있었다.  

지금으로선 비록 조악하기 이를데 없으나 당시에 내가 사용하던 문구류와 바랜 교과서에서 묻어 나오는 이야기가 그랬고, 즐겨 가던 나의 만화가게로 들어서서는 딱딱한 나무 의자에 잠시 걸터 앉으며, 비디오는 커녕 텔레비전 마저 귀한 시절의 놀이꺼리가 부족 하기만 했었던 어릴 때의 친구들이 곳에 있었다.

 

지긋한 연배의 안내하시는 선배님(월남 파병 용사라고 하셨다) 오래 신문만평을 비롯한 당시의 시대 설명과 곁들인 여담으로 시공을 넘나드는 귀한 시간은 덤이었다.

보다는 것에 대한 느낌이 오감을 통하여 전해 , 남이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느낄 때의 감흥이 최고임을 새삼 알게 나들이였다.

세상 만난 만화박물관 내를 홀로 이리저리 쏘다니던 작은 아이의 눈높이는 어디에 걸려 있을까   

 

연휴가 시작하는 돌아오는 차안으로, 옛날 전설 속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옛이야기들이 먹먹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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