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악을 휘감아 백사실터 내려가기
30년도 더 지난 중학교 수학여행 때였다.
광화문 근처 지금의 세종문화회관 인근에 단체 숙박을 하면서 4대문 안의 고궁이나 동물원(창경궁을 동물원으로 개조하여 창경원이라 하였다) 등을 구경하면서 버스를 타고 지나간 곳이 서울 시가지의 경관이 좋다는 북악스카이웨이 였었다.
딱히 뭘 봤는지 그저 높은 곳에다 관광도로를 내어 서울 4대문을 내려다 보는 그런 정도였다는 희미한 기억 밖에 없다.
그야말로 주마간산 이었다.
서울에 왔다는 것 만으로도 신이 나던 수학여행이었었다.
한번쯤 옛 기억을 더듬어야지 하던 차에, 겸사하여 나섰다.
한성대 지하철 역에서 곧장 이어지는 빠르게 내린 우측 고갯길을 올라선다.
북악스카이웨이의 초입이다.
비탈을 따라 나란히 쏟은 고층 아파트 군상 때문인지 어릴 때의 기억은 전혀 없다.
10여분 가파른 도로를 따라 가뿐히 올라선 성북구민회관에 다다르자 처음으로 조망이 열린다.
정릉 시가지를 앞에 두고 좌로 돌올하게 쏟은 바위 봉이 북한산의 보현봉이다.
그 시선을 잠시 우측 능선으로 이으면 백운대와 인수봉이 선명하고 저편 능선으로 줄지어 내리는 다섯 봉우리의 오봉과 도봉산 주능선 상의 바위 봉이, 예의 허연 뼈자위를 드러내고 있다.
흰구름 몽글한 맑은 하늘아래의 북한산을 이 방향에서 바라보는 첫 맛이 좋다.
굽이쳐 오르는 도로를 바짝 따라 나무데크로 된 산책로가 이내 이어지고 이는 북악산 허리를 휘감아 치며 넘어가는 종로 저 편의 북악스카이웨이 끝까지 나란히 가게 된다.
산 허리를 돌아 나가는 산책로 옆의 숲은 지난날 치열했을 수음은 퇴색되어 낙엽이 된지 오래, 그 덕에 몸을 떨어낸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열리는 도심 내부 순환 고가도로와 저 너머에 놓여있는 우람한 북한산의 모습을 찔끔찔끔 볼 수 있을 뿐이다.
겨울 답지 않은 푸근한 날씨에다가 푸른 하늘에 드문드문 박힌 흰구름은 서울의 하늘치곤 그나마 조망이 괜찮은 것이 다행이다.
계속 이어지는 산책로는 간간이 흙 길로 내려 서기는 하나 그도 잠시, 규격화된 좁은 폭의 나무데크는 한치 어김없이 도로를 따르다가 아주 가끔은 정릉을 거쳐 북한산으로 이어지는 우측 샛길이 반가우리 만치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벗어나고 싶은 기대치와 약간의 허기가 올 때쯤 해서, 팔각정 휴게소가 나타난다.
초입에서 약1시간 반 정도가 걸렸다.
미리 간식거리를 챙겨서 틈틈이 요기를 해도 되겠지만 팔각정에서 간단한 요기를 할 수 있다.
지하 주차장 위 분식점에서 바지락 칼국수 한 그릇을 말끔히 비울 정도로 허기가 진 모양이다.
‘금강산 구경도 식후경’이라 했던 것처럼 든든하게 속을 채우고 난 후, 사위가 훤한 팔각정은 전망대로서는 제격이었다.
위로는 북한산이 자신의 늠름한 남측 자태를 온전히 드러내어 보여준다.
좌로는 족두리봉이 떡하고 버티고 서서는 아래의 불광동을 굽이 내려다 보고 있다가 비봉 능선을 일으키고는 가만이 흘러가다가 빠르게 향로봉으로 치 오른다.
향로봉 바위 길은 얼핏 보기에는 순한 선을 긋고 있으나 조금만 자세히 쳐다 보면 톱날 같은 바위의 오르내림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어 언제나 스릴이 넘치는 리지 코스였으며, 그 옆을 잠시 이은 비봉엔 신라 진흥왕의 순수비(모조비)가 작으나마 그 모습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미 내친 시선을 우로 이으면 사모 바위의 다소 우스광스러운 모습은 너무나 선명하고, 고개를 잠시 숙인 듯 하다가 그 능선으로 승가봉과
그 앞을 이은 산세는 구기동에서 사자능선으로 올라 마음먹고 몸을 세운 보현봉의 웅장한 쏟구침은 이편에서 보노라면 마치 북한산의 주봉인 듯한 착각을 일으키기에 그 위세에 조금의 모자람도 없다.
참으로 헌걸차다.
여전히 출입을 풀지 않은, 나로선 북한산 유일의 미답봉이다.
위풍당당한 보현봉을 우르르 보며 살짝 내려선 듯하다가 정릉 가까이에서 일어나 쌍봉은 형제봉이다.
산책로 초입인 구민회관에서는 완전한 쌍봉을 유지 하였는데 여기 팔각정에서는 윗 봉만 남겨 두고는 아래는 오버랩 되었다.
북한산을 이런 모습으로 맞이한 것은 처음이었고 그 능선의 오르내림을 쉽게 기억해 내고는 마치 그 능선을 타는 듯, 숨마저 가빠질 듯한 느낌으로 가까이 다가 왔다.
반대편으로는 남산의 타워가 서울 도심을 사이에 두고 첨탑을 드러내고 있으며 왼편의 동으로는 시선에 별로 걸리는 것이 없어 한강 물줄기 마저 아련할 정도로 산책로 최고의 조망을 보여준다.
종로길로 이어지는 산책로를 따라 10분쯤 걸으면 나타나는 이정표가 가르키는 ‘부암동 백사실’을 보고는 여태껏 쉽게 이어오던 정형화된 산책로를 버리고 산 길 아래로 접어들었다.
이내 나타나는 두 개의 내림길이 애매하였는데 왼쪽으로 내려가야 백사실 계곡으로 이어진다.
자칫하면 엉뚱한 곳으로 내려설 수도 있었으나 마침 그 곳의 주민인 듯한 산책길에 나선 이로부터 길 동냥을 받았다.
내려선 산 허리를 돌면 몇 농가가 보이나 인적은 없다.
맞은 저편 위로는 군 부대가 보인 듯했으나 그도 잠시.
그 동안 산책로에서 이리저리로 쉼 없이 보여지던 서울시가지의 모습이 갑자기 온데간데 없다.
산을 내려선 직후, 계곡 위쪽에서 부터는 사방이 막혔다.
마치 깊은 산속에 있지 않나 하는 듯 했다.
잔뜩 응달진 빙판계곡을 얼마간 내리면 이내 나타난 백사실의 너른 빈터에 내려서서는, 겨울 늦은 오후의 을씨년한 분위기는 깊은 적막감으로 더했다.
몇몇 돌기둥만 남아 있는 집터와 그 아래의 원형 연못에선 섣불리 발걸음을 재촉하는 조급함을 보일 필요는 없다.
주변 지형으로 인하여 바람마저 쉬어가는 듯한 이 곳에서, 잠시 당간 지주에 기대어 있노라면 알 길 없는 백사실의 옛 추억에 잠기게 되는 아련한 회상에 젖을 수가 있다.
산책에서 사색을 떼어낼 수 없다고 볼 때, 백사실의 허허로운 옛터는 단언컨데 지나쳐 온 산책로의 압권이었다.
백사 이항복에서 이어지는 전설 한 자락 정도는 걸려 있어야 제격 일터인데, 도룡농 서식지라는 환경보호 안내문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군데군데 붉은 녹 쓸어 넘어진 산불조심 입간판은 격이 아니다.
백사실 바로 아래의 현통사를 끝으로 그나마 짧은 산길은 여기서 끝이 나고 홍제천을 이은 북악터널로 이어지는 도로 옆에서 자리한 ‘세검정’은 다소 뜬금없다.
칼을 씻으며 반정을 도모하던 그 옛날의 은밀 하였을 흔적은 커녕, 터널을 오르내리는 차들로 인해 정자에 앉아 지기와 담소마저 나눌 처지가 아닐 만치 늘 소란하고 사방으로 훤하게 열려 있었다.
내친 걸음으로 탕춘대성곽을 일으키는 ‘홍지문’을 되돌아 나오면 한옥의 고운 자태를 간직한 ‘석파랑’ 담장이 도로 건너편에서부터 가슴으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도심에서 이런 한옥을 볼 수 있음이 신기하기도 하며 한편으로는 반가움마저 느꼈다.
‘쉽게 접하지 않았다고 하여 친근함이 떨어진다는 건 아닐게다’ 라는 미처 인지 않은 화두가 불쑥 튀어 나오는 건, 치열한 회색 시멘트 속에 내내 갇혀 지낼 수 밖에 없는 현대인의 메마른 정서가 도심에서 뜻하지 않게 접한 옛 것을 보는 순간에 치유되는 차분함으로, 미처 모르고 있던 나의 태생의 흔적을 처음 본 여기 어딘가에 걸려 있지나 않을까 하는 향수에서 비롯된 것 일지도 모른다.
한정식집으로 영업을 한다는 사방이 뻥 뚫린 한옥 정원을 들어서니 대문 바깥이 바로 옆인데 그 느낌만은 사뭇 다르다.
돌계단을 오르내리며 쪽마루에 잠시 걸터 앉으니 아련하게 마음으로 전해오는 옛 맛이 좋다.
현통사 산길에서 맺지 않고 굳이 도로를 따라 석파랑에서 산책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음은 기대치 못한 행운이었다.
성북 구민회관의 담장으로 스며드는 햇살.
쉼없이 이어지던 산책로에서
팔각정
좌, 수리봉에서 우, 보현봉에 이르는 능선
보현봉의 당당한 위세와 그 아래의 쌍봉은 형제봉
팔각정 이후 계속 이어지는 산책로
팔각정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이정표 (백사실은 아래로 내려 서야 한다)
얼어붙은 백사실 계곡
백사실의 원형 연못
현통사 풍경
현통사 일주문의 기와
세검정
홍지문에서 일어나는 탕춘대 성곽
석파랑 입구의 예스런 담장과 대문
담장 안쪽의 풍경
사방의 출입에 막힘이 없다
층계위에서 내려다 봤다
저 쪽마루에 잠시 앉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