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루포기의 러쎌산행

강기한 2007. 8. 10. 11:33

 

‘∼∼ 답다라는 말이 있다.

남자 답다.’ 라든지 너 답지 못하게…’ 라던지

 

작년 12월 중간 쯤 만해도 겨울 답지 않은 따뜻한 날씨로 인해 지내기는 뭐 그리 나쁘지는 않았지만, 문제는 겨울 답지 못한 날씨로 인해 낭패 본 사람 들이 많다.

불 경기인 탓도 있겠지만 옷 장사들은 한 철 말아 먹었다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였다.  

 

지금이 절기 상으로는 한 겨울의 중심이다.

지난 연말부터 늦게 시작된 맹 추위는 아직 그 위세를 떨치고 있는 것이 다행(?)이긴 하나 그래도 겨울로써 늘 부족하게 느껴지는 것은 올 겨울 들어 제대로 익은 눈 송이 한번 보질 못했다.

앙코없는 찐빵 이라는 말이다.

 

지난 주, 소백의 칼바람에 그렇게 혼줄이 나고도 한 편 흐뭇했던 것은, 얼굴을 할키던 그 삭풍의 매몰참이 그야말로 겨울다워, 이튿날 늘어지게 퍼 질러 지던 이부자리가 더 없이 푸근하구나라고 역설적으로 느끼게 해 준 탓 일 수도 있다.

 

 

토요일의 일기예보는 강원도 내륙지방의 모처럼 함박 눈 소식을 전하는 것을 놓치지 않고 휴일 행차를 바라던 와이뿌의 눈총이 따갑기나 말기나 기어이 밤 시간에 안내 산악회에다가 전화 넣었다.

 

지난 연말의 운두령에서 오른 계방산 등로에 깔린 뻘줌한 잔설은 산행 내내 밋밋하기 그지 없었는데 아하오늘은 뭔가 보여 줄 것 같은 기대감이 더해지는 건 대충 짐을 꾸리고 나온 새벽, 그 귀한 눈 발이 아파트 주차장으로 흩날리고 있는게 아닌가.

 

어두운 잠실역을 간신히 빠져 나와 탄 뻐스엔 여유 좌석 하나 없이 빽빽하게 산행객으로 넘치고 그 들의 표정엔 한 결 생기가 들어 보이는 것은 아마 나 만큼의 굶주림으로 길을 나섰을 것이 틀림이 없으리라.

 

동으로 동으로 내 달린 차창 밖의 풍경은 함박 눈이 산 기슭의 마당 딸린 외딴 슬라브 집을 동화 속의 세계로 바꾸어 버렸고 그것도 부족한지 하얀 눈송이는 그칠 줄 모르고 달리는 차창을 사선으로 세차게 때리며 길게 끊어진다.

 

얘들이 오늘 단단히 맘을 묵고 은세계로 안내 하려는가 보다 했는데,

,,,,,,하며 염려스러울 정도라고 여기기 까지는 그리 오래 지나지 않는다.

 

여지껏 거침없이 달리던 뻐스는 만만치 않은 도로 사정으로 신중을 기하기 시작하고 이제 그만 내려도 되는데, 하는 맘이 생긴지도 오래 이거늘 그런 산 객들의 바램은 아랑 곳 없이 하염없이 내리는 눈발은 조금도 거침이 없다.

 

아니나 다를까, 가고자 하는 선자령으로의 산행이 어려 울 것 같다는 얘기를 산행 대장이 연락을 취하여 전한다.

하산 지점인 삼양목장 초입까지 차량을 통제한다나어쩐다나

 

계획이 급히 수정된다.

대관령에서 가려던 북쪽의 선자령을 이은 능선이 아니고 하산시 회차가 용이하도록 능경봉을 거쳐 고루포기산을 올라 계곡 길로 산행을 하기로.

 

이미 대관령으로 이르는 길은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정체가 되는 가 싶더니 기어이 령의 마루 직전엔 버스 하나가 빙글 돌아 길을 막았다.

 

몇 걸음 되지 않는 고갯 마루까지 걷고자 버스를 내리니 도로에 쌓인 눈으로 인해 차 내에서 미리 바짓가랭이를 둘러친 스패츠 전부가 잠긴다.

 

백두대간의 주요 능선인 령의 좌는 북의 선자령 방향이고 우는 남의 고루포기산으로 연결되는 능경봉이다.

 

비탈진 언덕이려니 하며 올라선 눈에 파묻힌 계단을 딛고 능경봉의 들머리로 붙었다.

 

이미 무릎까지 빠진 눈 더미를 새 길을 내어 오르려는 행렬이 길게 이어지고 선두는 노련하게 눈 길을 헤치며 러쎌을 개척한다.

그치지 않는 눈 발로 인해 얼굴을 들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쉴 새 없이 안경을 때리고 시야를 가린다.

 

오늘 산행의 결론을 미리 말한다.

 

지긋지긋했다.

그치지 않는 눈 발과 행여나 헛 디뎌 미끄러 지려나 싶어 앞 사람이 디딘 발자국만 쫓느라 산행 내내 얼굴 한 번 들지 못하고 시험 치는 학생마냥 푹 숙이고 하염없이 걸었을 뿐이다.

 

잔뜩 흐린 날씨로 어렵사리 올라선 능선 위에서 조차 주변 산 군들의 경관은 커녕 언제쯤 이 지겨운 걸음이 멈추어 질련지 하며 목표는 오로지 뻐스타기!’ 로 단순화 되었고 산 능선에서의 펼쳐질 파노라마 풍광의 의미를 부여하기 보다는 심설 산행의 어려움이 더 컸다.

 

2걸음 오르고 1걸음 미끌어 지고 그저 오르고 내리고, 잘못 디딘 내림 길에서 내리 꼽히듯 미끄러지는 것을 버티다 양 무릎 안 쪽으론 굵은 알이 박히는 잠깐잠깐의 경직으로 통증이 이어지고 다져지지 않은 신설위론 아이젠의 예리한 날 끝 마저 땅 바닥에 닿기에는 부족하여 흡사 폭우 치는 도로 위 자동차 바퀴의 수막현상과도 다름 아닌 제동력은 현저히 떨어져 걸음걸이는 이리뒤뚱 저리뒤뚱 하다가 때론 폭삭 쓰러져 옆의 커니스 속으로 자맥질을 한다.

 

산을 오르면서 짜증나는 것 중의 하나가 이정표와 관련된 것인데,

특히 거리 표지가 틀린 경우는 다반사다.

오늘 그랬다.

 

서너 시간 사투 하다시피 눈 무덤을 헤치고 길을 만들어 가며 오르내린 안부에서 정상 1.4 km’ 라는 표지를 보곤 마지막 힘을 모았다.

아무리 오름 길 눈 길이라 해도 1시간도 훨 못 미쳐 도달하고도 남을 거리이기에

2걸음을 걸으면 거의 1미터의 고도를 오를 것 같은 급한 오름길이 30 여분 이어지다가 겨우 올라선 만만한 비탈 길의 반갑게 눈에 들어오는 표지판에 대한 기대치는 앞으로 200 미터? 길어야 300 미터? 정도 남았으리라.

허나,

 

고루포기산 1.1 km’

 

아니 이게 무슨 말인가.

두 표지판의 수치에 의하면 겨우 300 미터 밖에 오지 않았다는 말인가.

실망을 넘어 말 할 수 없는 배신감마저 몸으로 번져온다.

그냥 길도 아니고, 이런 눈 길에서

 

 

 

오늘 산행에서 온갖 생고생을 곱으로 겪은 육신 말고 가슴에 와 닿는 것은 딱히 없다.

허나, 나중에시간이 흐르고 난 아주 나중에

그 날의 기억 속에 남아 있을 오늘 산행은 눈만으로는 겨울다웠다외에 어떤 의미로 되 새겨 질련지는 모른다.

  

아직까지 양 팔꿈치에 전해오는 통증은 스틱에 힘을 모으느라 그랬 

는가 해도 새끼 손가락이 꺽이는 듯 한 아픔의 원인을 알 수 없다.

참 이상한 산행기다.

서론만 잔뜩 늘여놓고 느닷없이 재미없었다로 결론을 내어버린

본론이 없는 그런 밋밋한 글.

 

2005-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