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봉, 그 첫 경험

강기한 2007. 8. 10. 11:12
LONG 글의 나머지 부분을 쓰시면 됩니다. ARTICLE

 

인공암장을 몇 번 정도 오르다 보면 양 팔뚝으로 전해지는 근육의 뭉침은 나 더 이상 못 견디겠소라는 인체 척도의 짧은 신호탄이라, 자칫하면 추락 직전의 순간까지 버텨야 하는 아찔한 공포가 늘 함께하여 그럴 적 마다 아쉬움보다는 믿을 거라고는 10.5 미리 외줄 하나에 의지해야만 하는 허공에서의 존재의 미미함과 편법이 통하지 않는 팔 근육의 마비는 안타깝기 짝이 없고 한 마디로 정말 기분 나쁘다.

 

혹 안전벨트에 또는 카라비너가 과연 날 뎅그러 메고 있는 자일은 나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을련지

아니면 저 밑에서 빌레이를 보고 있는 파트너의 제동기 사용법은 제대로 되었는지 혹 한 눈 팔진 않을련지그러고 보니 벽에 붙어 있는 앙카볼트는 .이런 저런 변수에 생각이 미치면 미칠수록 오로지 믿을 거라고는 내 팔인데 이마저 제대로 제어하지 못함은 실로 분하고 환장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 아니던가. 

 

여지껏 인공암장에서, 비 오고 난 다음날 아침 유리창에 붙은 맹꽁이마냥 실없는 오름짓을 할 동안, 한번도 발이 피곤하다든지 무릎 근육이 아파서...라는 이유로 휴식을 취한 적은 없었다.

그건 지난 여름 간현암에서 변성암벽을 오르내릴 때도 정도의 차이는 덜 하였으나 그 놈의 팔이 늘 문제였다.   

 

소위 그 펌핑아웃 이라는 기분 나쁜 필연을 될 수 있는 한, 동시에 양 팔과 양 발에 전해질 수 있도록 안배를 하는 그 때야 말로 진정 나의 실력이 절정에 이를 때다. 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난 어제(9/26) 북한산 수리봉에서 일어났던, 팔이 전혀 아프지 않았던 대신 발 끝에 전해지던 통증과 눈에 가득 채우고 돌아온 맑은 가을 하늘을 이제 얘기하고자 한다.

 

 

상일 아우와 문기사 그리고 나 이렇게 3명은 독바위 역을 기점으로 하여 수리봉으로 향하였다.

야근을 마치는 문순경은 수리봉에서 만나기로 한 터였다.

 

말로만 전해 듣던 수리봉 암벽장에 대한 기대감과 아울러 모처럼 청명한 하늘을 가까이 볼 수 있다는 것이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기존 등산로를 살짝 벗어난, 말하자면 매표소가 없는 샛길로 접어 들었다.

몇몇 등산객들과 함께 제복을 입은 국립공원 관리인이 떡하고 버틴 곳의 우회로로 접어들기 얼마 지나지 않은 곳이다.

 

깔끔하게 단장을 한 철망 왼편으로 한 관리직원이 버티고 있다.

별 수 없다. 

이번엔 우측으로 간다.

 

5분도 못 갔다.

똑 같이 칙칙한 카키색 유니폼을 입은 직원이 숨을 헐떡거리는 우리들 머리 위에 양팔을 가슴에 괜 체 떡 하니 버틴다.

 

이런

이거 완전히 돼지몰이 식이다.

 

온 산을 이렇게 철조망으로 둘러치면 어쩌자는 거야

 

입장료 천육백원 보다는,

사실은,

공짜에서 오는 그 짜릿한 기분을 쌍그리 빼앗기는 상실감이 더 크다.

 

어릴적,

동네 허허 벌판에 서커스단이 들어올 때면, 그 걸 보고 싶은 악동들은 갖은 수를 다 쓴다.

먹고 살기 힘든 판에 돈은 어림도 없다.

천막 주변의 허름한 허점을 찾느라 빙빙 배회하다가 경비가 잠시 한 눈 판 틈을 타고 악동들은 천막 이음매를 비집고 들어가기도 하고 과격한 애들은 때론 천막을 예리한 것으로 베어내어 들어 가곤 했다.

그리곤 가마니 자리 위를 차지하고는 악동들은 삐에로의 익살맞은 연기에 낄낄대다가 가수들의 쇼를 시작으로 하여 이어지는 서커스의 숨막히는 스릴감을 충분히 맛보곤 하다간 공연을 마치면 입구로 천연덕스럽게 나오던 그런, 내 역사의 한 페이지가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계절마다 찾아 오던 그 써커스를 난 한번도 빠짐없이 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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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밍을 하기 전엔 북한산을 비롯하여 수도권 일원의 산들을 매주 헤집고 다닐 때는 별 몰랐는데 두어 달 만에 찾은 북한산행은 예전과 달리 60미터 자일 한 동 무게만 더 했을 뿐인데 제법 숨이 찬다.

 

삼십여 분 후 눈앞에 떡 하니 버틴 수리봉의 서북사면 쪽으로 갔다.

일반 등산객들은 곧게 뻗은 길을 택하여 갔으나, 우린 서북사면의 바위가 몹시 탐이 났기 때문이다.

 

빠르게 끝을 내린 바위 슬랩을 옆으로 가기가 조심스럽기는 해도 낭떠러지 끝에 배낭을 풀고 한 숨 돌린다.

 

서편 아래로는 구파발 일대가, 그 위로는 북한산성 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하늘을 가르고 북한산의 본격적인 전망이 놓여있는 북쪽으론 비봉능선의 초입에 위치한 향로봉 정상엔 사람들이 꽤 보인다.

출입제한 구역인데도 용케도 많은 등산객들이 철조망을 딛고 올라섰다.

 

작년 년 말에 어떤 아주머니 일행들이 월망하던 것을 따라갔던 향로봉, 정상으로 향하던 폭 좁은 암릉길의 좌우측 절벽을 조망하면서 워킹하던 때의 묘한 오르가즘이 좋았다.

 

그 뒤를 계속 잇는 비봉과 문수봉의 자태는 맑은 가을 하늘과 대비하여 뚜렷한 금을 긋고 있다.  

 

하늘을 향해 올라왔는데도 하늘은 보다 더 높아져 있다.

쪽빛 하늘을 배경으로 한 듬성듬성 박힌 구름은 흰 물감을 듬뿍 찍은 듯이 빛이 다 날 정도로 희다.

 

가을이 왔구나.

 

아쉬움에 핸드폰을 꺼냈다.

한 자리에서 이리저리 방향을 틀다가 수신이 잘되는 순간, 크로바 아우에게 통화연결을 지긋이 눌렀다.

 

십여차례 긴 신호음만 흘러나오다가 반응이 없다.

 

 그 때 못한 통화내용을 지금 전한다.

 

혹시, 계획이 바꼈으면 지금이라도 오라고그래서 이 맑은 하늘과 땅과 이 산을 보라고…’

 

그는,

늘 느낌을 중시한다.

한 번씩 가끔 내뱉는 언어들을 난 공감한다.

그리고,

그건 반대 입장이 되어도 느낌의 미묘한 차이를 알고 있다.

이런 점들은 매우 흡사하다.

고작 5개월여 밖에 되질 않았으나 그 간 드라마틱한 사건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는 한 부분의 분모가 같았기 때문에 난 그를 잘 안다.

 

나와 다른 부분의 느낌은,(이건 내가 배울 점이다)

가끔 나의 무대뽀적(짐작이다. 내 자신을 내가 평가한다면,100 90 이상의 확률)인 그런 부분에 있어 그는 단호하다. -à 시흥 당골 바위에서의 해프닝

 

아마 초보자들만의 1프로라도 위험천만한 등반을 자제했을 수도 있고 클라이밍 후 신통찮은 무릎 관절로 크로스마운틴(불광동에서 정릉이나 우이동으로 하산)으로 산행을 마무리 할 수도 있음의 여지를 남겨둔 탓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 건 순전히 내 불찰이다.

아니면, 그저께 들은 9월초 인수봉에서의 어처구니 없는 사고를 떠 올린 것 때문일지도….

 

 

등산객들로 가득 찬 수리봉 정상엔 바람이 무척 세다.

 

시야는 한결 더 터여 동쪽 멀리 가평의 산 능선이 가물거리고 가깝게는 불광동에서 종로로 이어지는 구기터널 저편으론 북한산 줄기로 교묘하게 주변과 차단되어 서울 최고 부촌의 멋진 자태를 드러낸 평창동의 저택단지와 그린벨트 건너편의 인근 아파트 숲 그리고 남산타워를 비롯한 서울 시가지가 한눈에 차고 강남과 강북을 가로지르는 한 강의 여유로운 흐름은 그저 그림이다.

 

강남의 고층 빌딩이며 가깝게는 여의도의 국회 의사당과 성산대교의 월드컵 경기장 인근의 분수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가 선명하고 그 아래를 선 상으로 연결하면 관악산 연주대의 기상 중계탑은 뾰족한 끝을 다 드러내고 있으며 말죽거리에서 일어난 청계산 줄기 저 너머로의 과천과 인근 안양까지도 한 눈에 잡혀온다.

조금 우측으로 눈을 돌리면 인천까지도 한눈에 들어 올 듯하다.

서울에서 보기 드물 정도의 가시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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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한 쪽씩 나누어 먹고 벼랑 한 쪽 끝의 쌍 볼트 앙카에 자일을 묶었다.

어제, 암장에서 오 강사의 곱지 않은 시선을 애써 마다하고 로또 아우를 꼬드겨 하강 시연 하였던 까베스똥 매듭이다.

 

그건 아무래도 반절인 30 미터로는 못 미칠 것 같아 60 미터의 한 줄로 길게 내렸다.

 

문 기사가 시범 조교로 하강을 한 후 내가 다음을 했다.

아무래도 상일 아우는 첫 경험이라 좀 두고 보자는 심산이다.

 

정말 두고 봐야 할 친구다.

내보다도 일천한 경력에도 불구하고 날렵한 몸매하며 비록 실내이긴 하나 제비처럼 홀더를 잡고 몸을 비틀어 제끼는 그 솜씨하며…’이거 물건이다.  라고 우리 초보들은 이미 점 찍어놨다.

 

한 장소에서 그런 하강만 2번이나 더 한 후 늦게 합류한 문 순경을 따라 암벽으로 버티고 선 수리봉 바로 아래의 후미진 곳으로 갔다.

 

이미 많은 클라이머들이 여기저기의 바위 사면으로 잔뜩 붙었다.

 

오버 행이나 직벽 조차도 매우 보기 드문 일견 최대 각도 7,80도 정도의 대 슬랩 이다.

 

순간 교만한 미소가 흐른다.

그냥 걸어가도 올라가겠네.

그런 정도의

 

허나,

턱도 없다라고 알기에는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는다.

 

암벽 한 쪽 귀퉁이의 만만한 페이스 앞에서 퀵드로우 8개를 하네스의 좌우에 나누어 걸었다.

후후가비얍게 올라가야지

 

양손으로 초크를 흠뻑 묻혔다.

 

으흠....

 

??????

왼발을 어디에 딛나?

..어 그리고 그 다음 발은?

 

여기에다가

 

주욱

그럼 여기에다가.

주우욱.

어이구 이런 낭패를 봤나

 

무려 5번이나 미끄러진 다음에야 간신히 2번째 발을 디딘다.

이거 장난이 아니네

 

퀵드로우 1개를 간신히 걸었다.

 

이거 뭐냐

아무리 잡을려고 해도 잡을 게 하나 없다.

 

바로 옆의 젊은 아줌마는 잘도 올라간다..

그리고 그 다음의 어떤 사람도.

우리 루트보다도 어려울 것 같은데도 말이냐.

 

아무튼 퀵드로우를 3개 까지 걸었다.

4개째 걸려고 겨우겨우 기어 올라가다가 팔을 뻗는 순간, 그냥 3미터 정도를 주우욱미끄러 진다.  앙카에 걸린 퀵드로우 덕에 간신히 제동이 된다.

 

이게 아니다 싶으면 제동방법은 없다.

직전 퀵드로우가 걸릴 때까지 그냥 미끄러 져야 한다.

나름대로 버틸려고 무릎을 댄다든지 아니면 몸을 튼다던지 하는 순간엔 이 건 제법 큰 사고가 난다.

직감적으로 그렇게 안다.

고작 최상의 방책이라곤 신발 밑창이 떨어져라하고 화강암벽에 체중을 가득 실어 마찰을 줄 수 밖에 없다.

그렇게 3번을 미끄러지다 보니 이건 아니다 싶다.

밑에서 이래 해라 저래 해라 뭔..소릴 하는거야..

느거뜰도해바라.그기이잘대는쥐.

 

그야말로,

가는 소금말고,김치 담글 때 배추 절이는 검고 굵은 것 말고 그 보다 입자가 고운 하얀 소금

 

그렇다.

화강암의 표면입자가 그것보다 커질 않다.

홀더가 전혀 없다.

아니 그게 홀더의 전부다.

 

내려와야 했다.

 

문 순경이 올랐다.

3개 까지는 별 무리가 없다만 마찬가지로 4개째에 애를 본다.

 

옆에 올라서는 사람이 딱하게 여긴 듯 요령을 코치한다.

두어 번 슬립을 더 하는 가 싶더니 기어이 퀵드로우 8개를 다 걸고 내려왔다.

 

이딴게 다 있어

이걸 어떡허나

 

문기사도 끙끙 대더니 겨우 후등하고 내려오면서 고개를 짤래짤래 흔든다.

 

이번엔.

단단히 각오를 한다.

 

무심한 바위는 처음과 다르지 않다.

발끝을 세울 수 있는데 까지 다 세웠다.

그렇지 않아도 신발이 꽉 조여 발가락 끝이 아파 등반 외에는 항상 맨발로 있곤 했는데 오늘따라 엄지 발가락에 끝에 마주한 암벽화에 왜 이리 큰 빈 공간이 생기는지.

 

드물게 콩알(이건 큰 편이다)만한 돌출부위를 보면 악착같이 디뎌 볼려고 발끝을 바위에 그대로 꼽아 넣는다.

홀더 찾는 것은 아예 포기를 하고 손가락은 커녕(바위전체에 손가락 만한 구멍도 없음) 손톱으로 물고 할키고 그러면서 또 미끄러지고

 

..

난 그렇게 사투를 다하고 후등으로 올랐다.

 

발끝에 온 기를 쏟아 부은 탓에 발가락은 얼얼하고 힘의 전달 통로인 허벅지며 종아리의 알알한 통증이 몸으로 번지는데 비해 별 할 일 없었던 팔과 손은 민망할 정도로 아무렇지도 않다.

단지 어깨 안쪽 날개 쭉지의 근육만 하루가 지난 지금 자판을 두드리는데 있어 약간 기분 좋은 통증이 있을 뿐이다.

 

이럴 수도 있구나.

지금까지의 팔의 펌핑아웃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부위의 동작.

 

발끝, 손끝, 머리 끝, 그리고

혹 몸 가락 끝에도 효험이 좋을련지도…^^

 

절실히 느낀 바는,

인공암장에선 별 차이가 없던 그런 싸구려 암벽화말고 제대로 된 암벽화가 있어야 되겠구나 했다.

꼭 그 실력차이만 아니라 해도 다들 머찐 암벽화로 등반을 하고 있는 것을 보니 그런 마음이 절로 난다.

(나중에 겪었지만 3,40 미터 하강 할 땐 오른 손은 물론 왼 손에도 장갑이 꼭 필요하다.

그러니까 가죽으로 된 완전한 장갑 한 짝이 있어야 손바닥 화상을 안 당한다.)

 

암벽화 바닥의 끝은 바위와의 사정없는 마찰로 종 방향으로 흉측한 골을 파고 있었다.

 

 

그렇게 한바탕 홍역을 다들 한 번 씩 치루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난 뒤 난이도가 약간 덜하는 인근 바위로 자일 두 동을 연결하고 4명은 순차적으로 함께 올랐다.

 

앙카와 바위 중간에 쏟은 작은 소나무에 확보를 하고 자일로 서로를 함께 연결하여 북으론 향로봉과 비봉을 배경으로 반대로는 서편으로 기울은 초가을 햇빛이 렌즈에 45도 각도로 바로 박히는 실루엣 배경이 될 한강과 서울 시내를 아날로그 필름에 담았다.

오늘 등반의 압권이다.

 

어떻게 현상이 될련지 두고 볼 일이지만 밑이 아득한 바위에 대롱대롱 메여 달려 눈앞에 펼쳐진 장쾌한 시야와 추석을 이틀 앞 둔 여전히 맑고 투명한 하늘을 등에 기대어 한 끗 늘어진 초가을 오후의 사치를 누린다.

 

프렌드가 없어 더 이상 오르지 못한 것을 차후 과제로 남겨 두고 40미터 가량의 바위를 하강한다.

겨울이 되면 암벽을 못하게 되는 것이 싫다.

 

 

내 취미는 암벽등반이다.

 

 

 

 

                                 2004. 9.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