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에 젖은 보광사
잔뜩 흐린날은 그런대로 사진 발이 받는다고 믿고 있는 터였다.
언젠가, 가끔 비가 오락가락 할 때 사모바위에서 바라본 비봉은 운무 속으로 꼭꼭 숨어 버리는가 했는데 어느새 봉우리를 반 쯤 드러내 놓는가 하더니만 이내 잠기기를 수 번 반복하곤 했었다.
비봉 주변의 변화무쌍한 기류에 요동치는 운무의 춤사위를 지근에서 바라보기는 간만 이었다.
하드쉘 등산복에 우산을 하나 쑤셔 넣으며 ‘오늘, 혹시나...’ 하며, 불광역에 내렸다.
빗줄기가 굵다.
'쉽사리 그칠 비가 아니네...'
보광사에나 가야겠다.
33번 시외버스 승객은 나 혼자.
지난 2월의 고령산 산행 때 얼핏 지나치면서 가람의 구석구석엔 틀림없이 이런저런 이야기가 있으리라 기대했었기 때문에 계획이 바뀐다 한들 하등 불평할 이유없다.
뭐, 딱히 계획이라고 할 것 까지야... 마음내키는 데로 가면 그만이지.
경내를 꼼꼼이 살피다가 주변의 전망이 좋은 고령산 정상이나 다녀 오고자 했는데, 이마저 여의치 못한 것은 도로변에 장중하게 버티고 선 일주문으로 흘러내리는 빗물의 기세가 심상찮았기 때문이다.
‘으음…경내만 둘러야겠네...’
대웅보전.
원색의 화려함은 아니다.
때묻은 낡은 빛깔의 단청을 처마 밑의 작은 어둠에 감추고, 흠씬 빗물에 젖은 기와의 매끄룹한 검은 때깔이 처마 아래로 흘러내리며 어둑한 단청을 뒤에 둔 허공에서 잠시 사라지는가 하더니 이내 반석 위로 튀기며 산개되어 떨어진다.
언제부터인가 원색의 화려함이 부담이 되는 듯 하여 외면하는가 했는데, 그 틈을 차지한 퇴색한 산사의 적막함은 비에 젖은 채 한층 농익어 가슴에 가득이다.
대웅전 맞은편 종무소(만세루)의 대청마루에 홀로 앉아 축축한 냉기가 스물스물 온 몸을 감싸 흐르고 반팔 티만 안에 걸쳐 추위에 오돌 거리면서 지하철내 가게에서 준비한 천원짜리 가래떡만을 입에 꾸역꾸역 밀어 넣는 것 외엔 달리 방도가 없다.
허기가 지기 보다는 입이라도 오물거려야 이 대책 없는 한기를 좀 견딜까 해서다.
우산을 머리에 바짝 내려 붙이고 처마를 잠시 벗어나 건너편 건물로 가려다가 바람에 흩날리는 비가 얼굴을 슬금슬금 건드림에 운신이 한층 조심스럽다.
돌 층계 위에 잠시 올라 굽어보는 비내리는 산사의 추적추적한 적막 속에서, 너른 경내를 홀로 우산을 바투 잡으며 잔뜩 웅크린 채 기웃거리는 이방인은 그 흔한 독경 소리마저 없는 허방한 마음을 청승맞은 빗소리에 내버려 둔 채 마음으로 두 손을 모은다.
대웅보전 앞의 만세루에서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물
대웅전과 만세루 사이의 경내
장독대에서 본 팔작지붕들
靜寂...그리고 기와에 내리는 비...
경내를 출입하는 쪽문에서 올라서는 돌 층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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