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망에 담은 고령산 이야기
10시까지라 했는데….
1시간여 동안 다소 늘어진 지하철 안에서 글 몇 줄 읽다가 불광역이 다가오자 조금 마음이 급해진다.
9시 58분.
햇살이 쏟아져 내려오던 계단으로 급하게 올라서는가 했는데 석우로 부터 폰이 울린다.
“걱정 말거라, 곧 도착할 것 같다.”
시외버스를 가리키는 화살표 방향인 7번 출구에서 이어지는 시장 길로 달려나갔다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기어이 좌판의 할머니로부터 길 동냥을 구한다.
반대방향으로 달려 나왔단다.
‘아이고… 처음 뵙는 분들도 많을 것 같은데…’
거의 5분 이상 허비하였지만 10시 8분에 출발한다는 버스 앞에 반가운 얼굴들이 기다리는 것을 보고 허둥지둥 올라서며 미리 자리한 지기들에게 급히 수인사만 올렸다.
파주로 접어드는 서울의 시골 길을 꾸역꾸역 굴러가는, 버스 차창 밖으로 비친 삼각산의 스카이라인이 그런대로 선명하다.
백운대에 가려진 인수봉 대신에 만경대 우측으로 자리한 노적봉의 침침한 무채색의 웅장함도 삼각산의 한 부분을 대신할 수도 있겠다 싶다.
삼각산의 어원이,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 라기도 하고, 때로는 보는 위치에 따라서 인수봉 대신에 노적봉을 넣기도 한다던데, 아마 이 위치에서 조금 비켜 선 곳에서 바라 보이는, 그러니까 노적봉과 만경대가 겹치지 않는, 김포나 고양 쪽에서 바라 보면 더 실감 날 수가 있지 않을까 한다.
허나, 굳이 삼각의 모양이 아닌 서울산이 차음으로 삼각산이 되었다고 하는 어느 이론에 마음이 더 간다.
말하자면,
서울의 ‘서’자에 세월이 묻어 석 ‘삼’자로 되었고, ‘울’자 역시 된소리로 되어 ‘뿔’로 변음 되어, 뿔 각 즉, 삼각산(三角山) 이라는 이론인데... 뭐, 그럴 듯하다.
여기서 좀 더 비약한다면,
삼각이란 어느 방향에서 보더라도 둘을 발판으로 하여 하나의 뚜렷한 ‘으뜸’을 나타내는 것이고 보면 어쩌면 한 지역의 ‘으뜸산’ 이 아닐까 싶다. (나의 편향적인 주관이라 해도 좋다)
굳이 모양에서 삼각의 의미를 찾기보다, 후 자의 경우는 일종의 자존심인지도 모르겠다.
실로 대도시에 이렇게 대범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산이 또 어디에 있을까 싶다.
어째거나, 하늘을 향해 돌올하게 쏟은 바위 봉의 늠름함이 처음으로 바라보는 이 각도에서도 여전하다는 것이 못내 뿌듯하다.
보광사 일주문 앞에 멈춰선 버스는 매캐한 먼지와 함께 우리 일행들을 쏟아내었다.
古靈山 普光寺.
시멘트 길을 올라서자, 생각지도 못했던 큰 가람이 놓여 있음에 선한 호기심을 자극하여 둘러 보고 싶은 욕심이 일견 일어나나, 이 번 산행에서 더 이상 찍히면 안 된다고 한 것은 지난 번 소백산에서 나 홀로 꼭대기로 내 뺀 이력이 있는지라 조신하게 처신해야지 하며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2리터 조금 안될 듯한 막걸리 8통을 끼욱끼욱 걸망 속에 집어 넣자 그런대로 넉넉한 산행의 묵직함을 즐길 수가 있는 것 같아 좋았다.
떡과 여타 제물꺼리의 덩치도 만만치 않았으나 십시일반 나누어 등 짐을 다시 꾸리고는 흙먼지가 날리는 임도로 쉬엄쉬엄 오른다.
도솔암(兜率庵).
제법 올라선 허름한 암자로 보광사에 속하지 않은 다른 절 인 것 같다.
다들 잠시 숨을 모으고 여기저기서 제법 푸짐한 요기꺼리가 나온다.
종무소와 극락전뿐인 두 건물의 마당엔 큼직한 나무가 한 그루 자리하고 기와는 이미 상당히 들 떠 누수가 있는 듯, 양 건물 모두 한 쪽으로 길게 천막으로 내렸다.
그 것도 모자라 처마는 양 쪽으로 수 개의 쇠 파이프로 지지하곤 간신히 지탱하는 것이 안스럽다.
제법 운치가 있기는 하나 내력에 대해 간단한 안내문도 하나 없는 것이 여기의 궁색함을 대변하는 것 같아 편치 않다.
정상 아래공터.
대여섯명의 산 객들이 식사를 한다.
올라온 쪽으로 전망이 있는 햇살이 따뜻한 너른 곳이다.
뒤 차로 합류한 회원들이 긴 숨을 토해 놓으며 이내 도착하자 제물을 올리며 의식을 올린다.
금년 산행 시의 무탈을 기원하며 회원들의 가정에도 행복이 깃들기를 바란다는 요지로 제를 올리며 저마다 프라스틱 돼지의 몸 통으로 성심을 심어 나름대로의 격식을 갖춘다. 회원들의 울림을 한데 모은다는 의미의 각종 세레모니는 우리 일상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라 모두 조금의 망설임이 없다.
고수레와 음복 후, 푸짐한 제물로 점심상을 차리고는, 다소 품위 있는 노래인 찔레꽃의 끝 단락을 되돌이로 하여 다 함께 어울림으로 한데 모으고 그 중간을 한우리의 영원한 바리톤인 콘돌님의 울림으로 퍼지게 하였고, 과감한 갈래머리를 한 재치 덩어리인 듯한 영신님의 허를 찌르는 막걸리장단으로 이어지며 산 상의 여흥을 누렸다.
앵무봉(고령산 정상)
별 높이는 얼마되지 않으나 삼각과 도봉은 물론 양주의 불곡, 파주 감악산의 멀지 않은 전경이 제법 눈 맛이 있었고 발아래 놓여 있는 올망졸망한 저수지의 형상도 그런대로 풍치가 있었다.
守口庵
빠르게 길을 내린 흙먼지 길 끝에 놓여 있는 고색 창연한 암자로 얼핏 보기에는 꽤 오랜 세월을 묻힌 듯한 것은, 처마에서 당간지주에 이르기 까지 단청을 하지 않아 나뭇결의 순박한 빛깔이 그윽하였으며, 講院인 듯한 옆 건물의 쪽마루로 이어지는 문창살의 고색도 나름대로의 풍치가 있는 것이, 소박함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잠시 법당 안에서 두 손을 모은 후, 몇몇 회원분들과 인물 훤 한 스님으로부터 다실을 공양받고는 담소를 나누었다.
조만간, 다시 들러 보광사를 비롯한 주변 암자의 편안함을 가지고 싶다.
사흘 전,
전혀 예기치 못하게 귀경 길에 들렀던 안동 봉정사에서의 다소 충격적인 가람의 낡은 빛깔과 주춧돌 위에서 우직하게 수백 년을 머리에 이며 누대를 받치고 있었을 지주의 대견함에 마음을 다잡으며, 극락전 옆 길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운치있는 돌 층계 위에 놓인, 영산암의 쪽마루에 걸터 앉은 침착한 흥분이 마음을 잠시 휘 몰아 쳤던 것을 어떻게 풀어야 할 까 하고 마음 한 켠을 비워 두고자 했는데…
<후기>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즐겁다.
일일이 예 올리지 못했음은 이 미련한 놈의 천성이려니 하고 여겨 주심은 고맙겠습니다.
2층 노래방에서의 흐트러진 질서!
아,,, 이 번 산행의 백미였습니다.
그나 저나,
지갑에 꽂힌, 행운의 노트.
나에게도 행운을 나누어 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짐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선배제현님들,
사랑합니다.
2007. 2. 26.
평사네 배상.
고령산 정상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