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판이 본판이여~
보름달이 뜨면 짖는 개가 있다. 마을 사람들은 동구 밖 언덕 위에서 훤하니 내리는 달빛이 빚은 개의 실루엣을 싸리문 너머로 보면서 그 개의 시성을 짐작하기도 하고 언젠가는 마을을 찾은 낯선 이방인을 심하게 짖어 이를 의아스럽게 여긴 마을 사람들에 의해 그가 좀도둑으로 밝혀진 이후부터 마을 사람들은 오다가다 양지바른 돌담벼락에 앉아있는 그 개에게 그윽한 눈길을 주기도 하며 때론 살점이 붙어있는 뼈다귀를 던져주기도 했다. 그럴때면 그 개는 북실한 황모 꼬리를 좌우로 흔들어 대곤 했다.
그렇게 마을 사람들과 교감을 나누던 어느 날, 그 개에 대해 영특한 소문을 들은 부임 사또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 개는 더 이상 동구를 떠도는 신세를 면하며 관아 입구 곁에 작은 거처가 마련되었고 문을 지키는 나졸들이 번갈아 가며 그 개를 돌보곤 했다. 파수를 쓰던 나졸들이 잠시 자리를 비울지라도 사람들이 문 앞을 서성거릴 때는 개는 어김없이 짖었으며 그 소리가 얼마나 우렁찼던지 가끔은 배가 들어오는 나루터에서 막걸리로 목을 축이던 나졸들은 개짖는 소리를 듣고는 급히 파수 임무를 위해 다시 돌아오곤 했다. 부임한 사또역시 전직 사또의 악행을 척결하라는 특별히 부여된 임무가 있었으나 그는 마을 사람들의 안위보다는 언젠가는 다시 돌아갈 자리를 위해 한양 북촌의 척신들에게 끊임없이 연을 대며 마을에서 공출한 것들을 대기 위해 신경을 쓸 뿐, 나졸들이 파수하다보면 그럴 수도 있지, 라며 뭔일있겠어 라는 식의 대범한 성격의 소유자로 알면서도 그냥 내버려둘 뿐 하물며 관아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새 거처에서의 개는 관아 뒷편의 닭장을 오가기도 했고 하닐없이 늘어지는 생활 중에서도 꼭 보름달이 뜨면 어김없이 휘영찬 달을 보고 짖기도 하여 마을 사람들은 그 개가 여전히 잘지내고 있구나 하며 여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나졸들에게 포박을 당하여 관아로 끌려온 마을 사람이 대청마루 중앙에 떡하니 앉은 사또를 비롯하여 이방과 나졸들에게 머리를 쪼아리는가 싶더니 그는 대청마루 아래의 나무틀에 양팔다리를 꽁꽁 묶인 채 엉덩이를 사정없이 맞는 장면도 봤으며 가끔은 파수를 보는 나졸 들에게 머리를 숙이며 애걸하는 마을 사람들의 장면 등은 심심찮게 일어나곤 했었다.
그 개는 매질에 축 늘어진 죄인이 고기 뼈다구를 자신에게 곧장 던져 주곤하던 대장장이라는 걸 알았고, 고기 써는 칼 몇자루를 외상으로 만들어주고 이를 갚지 않은 푸줏간 주인과의 다툼에서 그만 그가 만들어 준 칼로 그의 등을 찍은 혐의가 있었다. 대장쟁이는 마을 사람들에게 호미 등을 비롯하여 숱한 농기구를 만들어 주고 대신에 수확철에 쌀, 수수 등으로 받았는데 마을에서도 심술이 궂었던 것으로 알려진 푸줏간 주인은 그 간 가져간 가마니에 버려졌던 잡뼈 등을 훔쳐갔다는 등으로 싱갱이가 있은 것 까지는 별일 없었으나, 대장쟁이에게 아비도 어미도 모르는 호로쌔끼 라며 그가 애지중지 아끼고 아끼던 누이를 지난 가을 추수를 막 앞둔 논에서 겁탈하였던 것 까지 떠올라 그만 일을 저질렀던 것이었다. 개는 왜 대장장이가 저렇게 혼을 당하는 것 까지는 알 수 없었으나 차츰차츰 자신의 주인은 나졸들을 부리는 대청마루의 신임사또라는 것 쯤은 날이 갈수록 깊이 알아 차렸던 것이었다.
그 날 이후에도 예전에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김진사네 머슴이 관아의 나무틀에서 매를 맞는 것도 봤던 터라 관아에 오기 전 자신을 이뻐해 주던 마을 사람들은 그의 기억에서 사라졌으며 어느 날 부터는 관아를 들어오는 누구에게나 으르릉 거리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은 그 개의 행동이 바뀐 걸 알기는 했으나 그 뿐,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비가 내린 보름날, 달은 보이질 않았고 칙칙한 달빛만이 관아의 뜰을 은근히 적실 때 개는 관아 우측 후미진 건물 안을 기웃거리다가 끙끙 신음소리를 앓던 대장쟁이를 향해 사정없이 짖어대기 시작했다. 달빛에 젖은 그 개목소리가 얼마나 우렁찼던지 관아는 물론 온 마을로 울려 퍼졌고 예전에도 그런 일이 있은 후로 좀 도둑을 잡은 적이 있던지라 마을 사람은 물론 그 마을에 있는 모든 이의 귓청으로 찾아 들었으며, 지난 번에 한양으로 올려 보낸 상의 척신인 이조전랑으로 부터 이제나저제나 기별을 기다리던 참이었는데 기대와는 달리 별 것도 아닌 걸로 뭘 도모하겠느냐 라는 핀잔을 들었던 참이라 사또는 뭘 보낼까 라며 고민 중이던 그 밤에 그 개소리가 들렸다. 순간 사또는 아 , 이 영특한 개를 보내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미쳤으며 우선은 뭔일이 있다는 판단이 들어 긴급히 나졸들을 불렀다. 나루의 주막 매월의 낭창한 두차례의 요분질 끝에 막 잠에 빠진 이방을 비롯하여 술찌끼미와 부꾸미 한점 먹고 늘어지자마자 눈을 비비고 나타난 나졸들이 축시에 달빛이 축축한 관아로 모여들었고 엉거주춤하는 자세로 개가 짖어대는 옥문을 살피게 되었다. 아, 그런데 이게 뭔 광경인가! 그 개는 옥문 밖으로 대장장이의 늘어진 옷자락을 물어 뜯고 있었으며 며칠 전 사또의 말 한마디에 꼼짝없이 매질을 당하던 대장장이를 지 마음껏 유린하다 못해 사또에게 온갖 온 몸과 마음을 다바쳐 대장장이를 해꼬지하고 있는 것이었다.
개는 영문도 모른 채 자기를 잡아 입을 틀어 막으려는 나졸들에게 끌려가다가 뭔 일이 심상치 않음을 알고는 목줄을 잡고 있던 나졸의 손을 뿌리치며 관아 밖으로 도망치고 말았다.
개는 다시 정처없는 자신의 처지가 가련했기도 하거니와 마을 사람들이 예전처럼 자신을 돌봐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관아에서 한껏 늘어진 생활을 그리워하며 다시 돌아갈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늘 보름날 밤이면 동구 밖 언덕에서 달을 보며 짖는 것은 여전했거니와 달이 조금 이즈러진 사나흘 뒤까지도 짖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마을사람들의 관심이 없자 이를 의아스럽게 여긴 나머지 보름달은물론 반달이고 초승달이고 그믐달이고 밤만 되면 짖기를 하다가 그래도 반응이 없자 이제는 훤한 낮 달을 보아도 짓기를 계속하였다가 급기야 아침해를 보며 짖었으며 그 개짖는 소리에 참다못한 마을사람 몇몇은 그건 달이 아니고 해니 그만 짖어라고 하자 개는 그게 달이지 어째서 해냐고 따지듯, 이젠 시도때도 없이 짖으며 사또, 아니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 세우려 혼신의 힘으로 짖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허나 사또는 임기 말년에 그 따위 개 한마리에 관심이 없었고 하물며 나졸들조차 개를 찾기는커녕 그 개로 인하여 자신들에게 닥칠 어떤 불이익을 염려하기 시작하였으니...
마을사람들은 익히 그 개의 패악을 알고 있던지라 그 놈의 개를 잡으려 몇몇이 몽둥이를 들고 개를 향해 몇번 휘두르기는 했으나 이제는 사람들의 행동거지 쯤은 익히 알고 있는 개는 요리조리 피하다가 급기야는 자기를 쫒는 사람들의 발목을 물기도 하였는데 화가 머리 끝까지 난 개잡는 사람은 몽둥이를 힘껏 휘두는데도 불구하고 그저 털이 북실한 꼬리 끝에만 스쳤을 뿐이었으며 개잡이 두 세사람이 떼를 지어 아무리 휘둘려 쳐도 요령부득인 것은 매일같이 한치 어김없이 순서가 정해진 몽둥이질에 맞을 개도 아니지만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은 성가시기만 할 뿐, 그저 개가 지풀에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개잡이 사람들은 오늘도 몽둥이를 들고 개의 뒤를 쫒아 다니고 있으나 별무 소득이다.
“개조또모르는거떠리~” 하면서 개는 도망치면서 짖어대었고, 개잡이들은 “개조즌뼈가있는데왜내가몰라”하며 뒤를 쫒고 있으나 '개조가튼몇'을 뺀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은 “개조지고나발이고간에배고파주께쓰,씨바~”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