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락, 그 깊고 푸른 숨은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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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못 가서 생긴 병일까. 오른쪽 어깨의 통증이 예전보다도 더 심해졌다. 가는 병원마다 병명이 달랐다. ‘회전근개파열', 광고 많이 때리는 체인 한의원이다. 회당 2마넌 짜리 약침도 맞고 50마넌 짜리 한약도 먹어야 된단다. 그러면 10번 맞는 약침은 서어비스로 제공. 머라꼬, 서어비스? 우끼고있네. 그러니까 의료보험이라고는 몇 천원짜리 진찰료 뿐이다.
운동하는 사촌 형의 소개로 먼 곳에 있는 정형외과에 갔다. 몇 차례 동작을 취해 보더니만 ‘오십견’이라 간단히 진단내린다. 주사도 필요없고 열심히 물리치료만 하면 된단다.. “아, 예” 했다. 물리치료비 포함해서 오천백원. 그 의사 참 용하고 착하더라.
의기양양하여 집 인근의 정형외과에 갔다. 비슷한 동작 취하게 하더니만 엑스레이 찍고, ‘아니 ‘뼈도 아닌 근육인데 왜 엑스레이 찍냐’ 고 했지만 말은 못했다. 병명은‘어깨충돌증후군’ 그러면서 집에서는 아무런 운동도 하지 말란다. 셋 모두 처방이 달랐다. 적어도 셋 중 둘은 엉터리다. 아니면 셋다. 진단을 좀 더 진중하게 할 순 없나. 돈이 들더라도 정확만 하다면야. 어깨 관련해서 또 무슨 병명이 있는 줄 모르겠다. 우짜겐노 열심히 주사맞고 약먹고 한다.
지난 7월 설악산 동반 산행 이후 산은 통 못갔다. 이런저런 이유로. 어깨 뿐 아니라 마음의 병도 깊어져 가던 차에 검은산님이 좋은 산행을 꾀하고 있었다. 옳커니. 코스가 딱 내 입맛이다. 마투님으로 부터의 임진각 자장구 투어 권유를 애써 뿌리치며 숨을 죽였다. 나, 자장구도 타고 배낭메고 등산도 댕긴다. 나도 처방 내렸다. 운동 열심히 하자. 물론 의사한테는 말안할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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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했다. 위도차가 별로 없는 서에서 동으로 고작 두시간을 달려 왔을 뿐인데 긴팔 티샤쓰 하나로 미시령과 한계령으로 나뉘는 3거리 휴게소의 새벽 밤 기온이 어깨를 움추리게 했다. 몇 산객들은 하드쉘 재킷들을 걸치고는 따끈한 김이 모락거리는 우동이나 해장국 등으로 새참 겸 이른 아침으로 속을 채우는 걸 보고는 동행한 검은산님과 엉겁결에 우동 한 그릇씩 비웠다. 9월 들어서도 낮 더위가 여전하여 반팔로 할까 했었는데 긴팔 짚티를 택한 것이 다행이었다. 반팔짚티를 추가로 준비하려다 괜한 무게 부담을 질 필요가 있나 하면서도 보조자일과 다운 재킷은 기어이 배낭 속으로 챙겨 넣었다. 독주골은 지난해 가을에 다녀온 적이 있어 자일이 없어도 될 터이지만 혹시나 까만 밤에 길이라도 잘못 들면 어쩌나 했었고 이튿날 하산로인 곡백운 계곡의 등로상태는 전혀 파악하지 못한 까닭이었다.
이른 3시. 오색 탐방소의 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저마다 이마에다가 불을 밝힌 산객들이 산으로 냅다 달린다. 잠시 뜸한 틈을 타 좌측의 금줄을 넘어 누가 볼세라 종종 걸음을 치고는 잽싸게 초입 독주골의 어둠 속에 몸을 밀어 넣었다. 근데 어떻게 가야 하나. 지난해 가을 대낮에도 몇 번이나 긴가민가 하며 더듬으며 갔었는데…
기우였다. 동행인 검은산님에겐 별 것도 아니었다. 꽁지만 잡고 무턱되고 계곡을 따라갈 때만 해도 그러려니 했으나 등로는 거의 계곡을 따르지만 가끔은 벗어난다는 기억이 있어 행여나 했는데 그는 뭔가를 꺼내더니만 잠시 들여보는 그 긴가민가하는 바위를 넘기도 했으며 작은 소로를 별 망설임도 없이 잘 가고 있었다. “길, 맞는지요.” 하며 들여다 본 그의 스마트폰 화면으로 붉은 선이 그어져 있는 지도가 있었다. “이대로가면 됩니다. 우리가 지금 이점이거든요.” 하면서 붉은 선 한 지점을 가리켰다. “ 아, A 자 우리 위친가 보네요.” “A가 아니라 삼각지시선 입니다.” 그는 산행내내 정확했다. 몇 차례의 동반 산행시에도 느꼈었지만 둘이서 14시간을 함께 가면서도 그의 과묵함은 여전했다.
발걸음에 탄력이 붙고 거침없이 계곡의 바위 들을 오르내렸다. 문득 올려다 본 까만 밤하늘엔 별이 총총했다. “햐, 별 볼일 있네 저러케 빤짝거리는 별을 보니 비가 아니라 내일 날씨 끈내줄 것 같네요.” 하며 물었고 그는 맞장구를 쳤다.
진행방향 저편으로 물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희미한 물줄기가 어둠 속에도 어렴풋이 보였다. "아, 독주폭포를 거의 다 완는 모양입니다. 난 독주보다도 저 전위(前衛)폭포가 더 멋집디다. 폭포는 늘 아래 쪽에서 보아 왔는데 상단 바로옆 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를 바라 보는건 쉽지 안커등요.”
독주폭의 전위 폭포와 흔들리는 검은산님의 헤드랜턴 불빛
등로가 갑자기 급격히 가팔라졌다. 뭔가 이상하다고는 느꼈으나 어렴풋한 기억에 맡긴 채 자꾸만 위태로워지는 사면을 간신이 올라서고 있었다. 발아래에서 흙이 연신 무너졌다. 시원찮은 어깨의 통증을 무릅쓰고 엉거주춤하게 바위의 홀드를 잡으며 버틴다. 이상하다 너무 올라 온 것 같은데…
“길 맞습니까. 따라갈까요” “… 아니 쪼끔만 더 올라가 보고요. 잠시 지달려 보세요” 간신이 두어번 더 올랐나. “...여기 아잉거 가튼대요...” 그제서야 밑에서 마냥 기다리던 검은산님은 뒤돌아 내려가서 다른 길을 찾는다. “여기 길있네요. … 위험하니까 자일 걸고 내려오세요.” 나도 그러고 싶었다. 허나 체중을 실을만한 나무도 없었지만 허물어지는 흙더미에 간신이 붙어 서있는 것들에게 믿음이 안 갔다. 발로 디딘 흙을 밀어 내리자 “우르르~” 하며 작은 돌과 함께 발 아래가 허물어지며 굴러 떨어진다.
“아, 갠찬아요. 자일 없어도 내려갈 수 있어요.” 입으로는 그렇게 외치면서 간신이 내려섰다. 등줄을 타고 진한 긴장이 꼬리로 흘러 내렸다.
이 폭포를 올라서면 바로 독주폭포가 보인다. 폭포상단 바로 옆에서 담았다. 하늘이 이렇게 밝은 건 장시간 노출의 결과다.
독주폭 아래의 너른 암반에서 짐을 풀었다. 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으나 별 것도 아니다. 얼마 전만 해도 까만 밤하늘엔 별이 초롱거렸었는데 하면서 방수재킷 걸친다. 폭포 상단으로 안개가 서린다. 독주폭포 아래 너른 암반에서 라면과 떡국으로 아침요기를 하고는 막걸리로 분음하며 심산에서 흘러 내리는 커피 한잔으로 마무리 짓고는 한참을 노닥거린다. 세상에 부러울게 없다.
길은 폭포 상단을 거쳐 능선으로 이어야 한다. 폭포 우측으로 허물어져 내리는 너덜길로 붙었다. 발디딤이 조심스럽다. 여차하면 디딘 발아래로 근거없는 돌들이 굴러 떨어진다. 다행인 것은 내려설 때가 아니라 오름 걸음이므로 굴러떨어지는게 덜하다는 정도. 바짝 세운 사면에서 용을 쓴다. 그러다가 등짐 진 채로 아랫배로 몰리는 묵직한 기운을 쏟아버리자 한결 몸이 가볍다. 윗 돌 하나를 툭 건드려 그 흔적을 대충 덮었다. 저 위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 검은산님의 외치는 소리가 두어 차례 급사면을 타고 흘러 내려온다. 30분 가량 박박 긴 끝에 폭포 상단으로 겨우 올라섰다.
그냥 여유롭게 흘러가는 계류는 저 끝에서는 거의 100미터 수직으로 뚝 떨어진다. 사진 찍은 곳이 한계다. 더 이상 내려가다가는 멋진 구경 한번 잘하고 그냥 하늘로 날아간다. 좌측 능선으로 붙어야 한다. 골을 따르는 등로가 없는 좌측으로 그나마 만만한 곳을 골라 또다시 오름질이 시작된다. 본격 서북릉이 이어지는 1473봉 까지는1시간 반 가량의 지리한 걸음이 남아있다.
비는 그치기는커녕 빗방울은 점점 더 굵어져 갔으며 독주골에서 발을 헛디뎌 물에 빠진 등산화의 윗 부분으로부터 눅눅한 습기가 느껴지기 시작했었는데 이젠 흥건하게 젖어 발이 등산화안에서 질척질척 거리며 헤엄을 치고 있다.
지난해 가을, 바로 이 지능선에서 옆을 튀어가던 멧돼지에 그만 혼이 빠졌었다. 나도 놀랬지만 그 놈도 아마 내 못지 않게 놀랬을 꺼다. ‘아니 이런 까만 밤에 왠 놈이 겁도 없이 내 나와바리에, 그것도 홀로 …’ 하면서. 어찌되었건 지난 기억들은 난감하고 힘겨운 상황이 많을수록 흥미롭다. 그래, 기대와 달리 좌악좌악 뿌려대는 이 비마저 나중엔 재미있는 기억으로 남을게 틀림없어. 그나저나 사진이라도 찍었으면 좋겠는데 길섶으로 다소곳이 자리한 바이올렛 빛깔로 흠뻑 물든 금강초롱마저 그저 눈맞춤만 하고 산걸음 재촉하는 것이 야속했다.
올라선 서북능선 길에서는 다들 우비를 뒤집어쓰고 중청산장으로 향하는 산객들을 헤치고 서북릉에서 걸음이 제일 사나운 구간인 한계 3거리로 향했다. 잠시 비가 그치는가 했는데 어림없다. 허나 하늘은 맑기만 하다. 요상한 날씨다. 지난 밤 밤하늘의 별빛도 소용없었고 맑은 하늘에서 죽죽 뿌려대는 비는 또 뭔가.
“어떡할까요.” 산행을 계속 이을련지 아니면 탈출을 하자는 건지 그의 물음을 가늠하기 쉽지 않다. 4시 반에 용대리 3거리에서 버스가 우리를 마지막으로 픽업하기로 되어 있는지라 곡백운으로 하산하면 아무래도 여유롭지 않다. 더군다나 구곡담에서 백담사까지의 7키로가 넘는 거리도 그렇고. 혼자였다면 난 한계령으로 하산하여 아마 다음을 기약했을 것 같다. 허나 그게 꼭 그럴까. 늘 그렇듯이 그 다음이라는게 그리 잘 다가오지 않더라. 이왕지사 이번이 아니면 또 언제. “한번 가봅시다.” 한계3거리에서의 결론은 그렇게 내려졌다.
GPS가 가리키는 지점으로 대체 믿음이 안갔다. 등로의 흔적도 없거니와 넝쿨이 무성하여 더군다나 비에 젖은 저길 어떻게 헤치고 내려서지 라는, 그 불확실성.
험로다. 잠시 들여다본 스마트폰은 등로가 100미터나 벗어나 있었다. 허나 별 두려움이 없는건, 언제나 본 길로 접어들 수 있다는 믿음. 단 한가지 우려되는 것은 혹 밧떼리가 모자라지는 않겠지 라는 정도.
얼마 지나지 않아 좁은 골이 나타나고 바위를 넘어서는 한결 수월한 걸음 저 끝으로 리본이 매달려 있다. 반갑다. 허긴 산길이 꼭 하나만 있지는 않을테니.
이내 너른 암반이 눈앞으로 펼쳐지는가 했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한무리의 산객들이 우리 뒤를 따라 숲에서 하나 둘 씩 나왔다. ‘아니, 이 비오는 날에 어떻게 여기를…’ 내가 생각했던 만큼이나 그들도 우리를 보고 그렇게 여겼으리라.
길은 멋졌다. 아니 별도로 길은 있질 않았다. 너른 암반으로 타고 흘러 내리는 계류를 이리 건너고 저리 건너고 하는데 무슨 등로의 표시가 있을 필요도 없었다. 그러다가 앞이 뚝 떨어지는 폭포를 우회하는 숲길로 접어들면 또 한바탕 넝쿨을 헤치는 곤욕을 치뤄야 했다.
마음은 바쁜데 왜 이리 발목을 잡을까. 방금 지나온 저기서도 발을 떼기가 어려웠는데 여기서는 또 우짜란 말인가. 그래 찍자, 찍어...
아래는 물이 콸콸거리며 쏟아지는 45도 정도 경사가 진 저 바위사면을 트래버스 해야 했다. 비에 젖은 경사진 암반으론 믿을 만한 그 아무 것도 없었다. 아니나다를까, 여기서 사단이 벌어지고 만다.
사단이 벌어지고 난 후의 검은산님이 수습하는 장면이다.
디카를 들이대기 뭣했지만, 내심은 그 멋진 장면을 담아 내지 못한 아쉬움이 더컸다. 아, 용서하시라.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그저 “… 어? 어어, 어,… 에휴 !” 이게 다였다. 다만 안타까웠던 그 똑소리 나던 스마트 폰도 심심찮게 나의 순간들을 잡아채던 그 디카도 잠수를 탔다. 그걸로 검은산님의 최첨단 장비는 무용지물. 그걸 보고 난 어떤 심정이었겠나. 나의 배낭을 디카를 저편으로 건네줄 수도 없고… 운은 하늘에 맞긴 채 물에 젖은 경사진 바위 슬랩을 그저 발발 기었다.
직백운과 곡백운 합수부
기존 등로로 내려선 시간은 2시 10분. 다시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달리며 산을 내렸다. 버스를 타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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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 하나.
백담사에서 마을 버스 탄 것 빼고는 근 8키로 이상을 내뺐다. 버스, 버스를 타야 했기 때문에. 발바닥에 불이 다니고 무릎이 쉴 새 없이 요동이 쳤다. 시간에 맞춰 질 것 같았다. 백담사에서 용대리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전화를 넣었다. 조금 늦을 지도 모르겠다고. 고작 5분? 허나 안내 산악회 담당자왈, 대번에 난색을 표명한다. 아, 이런 장장 13시간을 그것도 길도 없는 등로를 헤치고 비도 쫄딱맞으면서 점심도 못먹고… 난 당연히 ‘예 수고했습니다. 안 다치도록 천천히 오세요, 혹은 예 빨리 오세요 기다릴께요, 라는 답을 들을 걸로 했는데. 30분도 아니고. 허나 여지없이 나의 상식적인 기대가 무너졌다.
그는 쉼없이 걸음 재촉하는 내게 전화가 두 번 더 왔다. “다른 사람들이 그냥 가자고 해서 기다릴 수 없다”고. 이건 협박이다. “아… 증말, 100미터 남았다고 해짜나욧” 하며 까시가 숭숭박힌 한마디를 그의 귀구멍에다 쑤셔 넣고는 폴더가 떨어져라 하며 닫았다. 3분 늦었더라. 4시 33분. 잔뜩 벼뤘는데, 버스 기사고 다른 승객 들이고 싫은 기색은커녕, 우리보고 “수고 했습니다” 고 인사 넣더라. 한참 연배로 보인 그 분, 그럴 필요있나. 그렇다고 서울 출발시에도 정시에 출발한건 아니질 않는가. 평소 얼마나 분초를 따지면서 사는진 몰라도... 실명거론은 좀체 사양하지만 그래도 '요들산악회', 정나미 뚝 떨어지는 이 이름만은 꼭 밝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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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 중 4귀퉁이가 모두 들뜬 사진은 동행한 검은산님이 찍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