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산 길을 가면서 ...
물에 불은 누룽지와 오뎅국 까지는 점심이라 치더래도
껍데기 한점, 술 한잔이 아니라
몇점, 여러잔은 자제했어야 옳았고
라면과 김밥도 맛만 보는 선에서 그쳐야 했었다.
젓가락질이 바쁘게 이것 저것 집어서 입으로 옮기며
씹는 둥 마는 둥 하며 연신 삼킨 것은
그야말로 미련 곰탱이 짓이나 다름 아니었다.
초장 호기롭게 짠하며, ‘나를 따르라’며 길잡이를 자청하다가 점심 이후
두어 시간 동안, 외진 산길에서의 곤욕은 그런 곤욕도 없었다.
얼굴로 확 퍼져 올라오는 독주의 화기로 정신이 다 헤롱거렸고
불필요한 것들로 잔뜩 채워진 속은 발걸음을 띄기가 도무지 어려웠으며,
어깨가 내려 앉는 듯한 통증으로 등짐을 반쯤 내려 팔꿈치에 걸어
간신이 걷는 둥 마는 둥 하다가는 급기야 등짐 진 채로 뒤로 꼬꾸라지고 말았다.
한마디로 뻗었다.
뭐 그렇다고 크게 잘못된 건 없다.
무슨 '한강기맥...' 이니 하며 요란하게 능선을 종주하는
대단한 산꾼으로서의 인식을 풍기게 되었으며
여타인들로부터 다소 외경(?)스러운 느낌을 준 것은
본의는 아니었으나 부담이었다.
그러니까, 남 힘들 때 나 힘들고
주체할 수 없는 술 몇 잔에 맥없이 나가 떨어지는 걸
여과없이 보여주게 된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는 거다.
노상하는 변명이지만 이 참에 다시 한 번 밝히자면,
산 길을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다 보니 뭔가 새로운 미답지를 가고 싶은 작은 욕망으로
차츰차츰 발걸음을 넓히게 되었고 뜻하지 않게 이게 기맥 이라는 대단한(?) 곳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자신을 알았을 뿐이다.
이것도 만만한 경기도계 까지만 맴돌다가
홀로는 차마 넘보기 어려운 강원도까지 접어들게 된 것은
함께 걸음해 준 ‘칼부라더스’의 덕분이다.
그야말로 화투판에 꽃놀이 패들고 표정관리 하는 것과도 다름 아니었다.
허나 그들에게 직접 전하진 못했으며 뭐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손 치더래도,
어찌되었건 그건 겉과 속의 온도차가 확연한 나의 성격과 무관하지 않다.
사설이 길었다.
산 걸음이 빠른 것도 아니고 나무 나이테와 다름없는 지도를 보고
산 길을 찾아가는 독도법이라는 그 쉽지 않은 공부에 탁월한 재능은커녕
그저 사람이 다녔을 만한 흔적만 경험으로 용케 냄새를 맡아
더듬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 수준이라
/그러다 보니 가끔 예의 그 알바라는 것도 한다/
누구나 다 갖고 있는 동물적인 감각, 그에 지나지 않는 늘보의 산객이라는 점을
이 기회를 빌어 밝힐 수 있음이 한편 다행이라 여긴다.
사실 별 재미없다.
능선에 올라서면 탁 트이는 조망이 늘 있는 것도 아니고
멋들어진 기암괴석이나 떡하고 산길에 버티고 서있는
잘생긴 소나무를 만나는 것도 쉽지 않다 보니,
발걸음이 처지기 시작하는 산 길에서
가끔은 '왜...' 라는 화두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되돌아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짧은 탈출로로 벗어나지도 않으면서
고집스레 길을 잇고 있더라.
허긴 목적지에 도달하여
직전에 다녀왔던 그 지형지물을 다시 보게 되노라면,
'아... 해냈구나' 라는 것은 있더라.
허나 이 마저도 별건 아니다.
그런데도 산 길을 내려서면 금새 뒤돌아보게 되고
다음 코스에 대한 정보를 뒤적일 동안
맘 속으로 묘한 흥분이 이는 걸 보면,
그 힘든 걸음에도 뭔가 있긴 있는 모양이다.
모르긴 해도 두 발로 이 땅을 버티고 서있을 수 있는 힘이 남아있는
그 순간까지 산 길을 헤집고 다닐 수 있음은 충분히 감사할 일이다.
그러나 그런 여건이 못 되는 훗날엔 그 얼마나 답답해 할까.
아니 어쩌면, 산길을 힘겹게 더듬었던 그 때 그 시절을 그리면서
반추의 낙을 누릴지도 모르겠다.
훗날 대단한 결과와 보상을 기대하며 지금까지도
나를 중심하여 전개되어 온 지난 세월의 초라한 흔적으로,
기대치와는 동떨어진 현실 앞에서 늘 분을 삼키곤 했었는데,
산 길은 그렇지 않았다.
어스름 해가 기웃할 즈음,
마지막 발걸음을 산에서 내려설 때 가슴으로 이는 작은 떨림.
그 건 애초에 대단한 결과에 대한 보상치를 예견한 것도 아니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만치만 기대치를 충족시켜 준다는 점에서
이 외진 산길을 걷고 있을 동안
헝클어진 내 삶의 의미를 찾고 있었던게 아니었을까.
속을 것도 없고 속지도 않을,
진정한 발걸음으로만 다가갈 수 있는 어느 이름없는
외진 고갯길에서의 매순간의 그 한걸음이 새삼 소중하게 느껴진다.
단지 좀 더 일찍 이 걸음에 얽힌 의미를 알려고 하지 않았다는게 아쉬울 뿐이다.
*
능선마루에서 만난 소나무.
뭔 사연이 있길래.
그건, 알 수 없을꺼야.
...α잖아.
삶도 알 듯 모를 듯한, 그 알파.
*
2011. 02. 19.
화방재에서 소삼마치까지의 한강기맥 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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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gether' / Giovanni Marrad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