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날리는 빗 속, 12선녀탕 엘레지. 100626
몇해전, 설악 오색지구를 비롯하여 한계령을 덮친 집중호우로 그 일대는 초토화되었다. 그 후 몇 차례 한계령과 미시령을 넘어가면서 본, 폭우에 휩쓸려 거꾸로 쳐 박힌 가옥이며 반이나 날아간 채 흉물스럽게 방치되어 있던 펜션 등을 비롯하여 엉망진창인 채로 넓혀진 하상 등은 당시의 상황이 어떠했는지를 짐작케 했다. 오랜 복원 공사로 하천및 도로 주변은 말끔히 정비되었으나, 푸른 숲 여기저기로 선연하게 남아있는 희멀득한 흙 사면은 예리한 갈고리로 가슴의 생살을 긁어 내린 생채기처럼 아팠다.
그로부터 수 년이 지난 여물어 가는 여름, 12선녀탕 산행을 위해 서른 여명에 이르는 산객들과 함께 다시 그 곳을 찾아 가는 마음 한 켠에는 집중호우 이전에도 복숭아탕 주변은 가이드 줄을 잡고 건너가야 했던 사면의 등로가 위태로운 기억이 있다. 보조자일을 챙겼다.
산행로는 남교리에서 올라 12선녀탕을 거치고 대승령을 경유하여 한계령의 초입인 장수대로 하산하는 코스다. 남교리 주차장 옆 솔숲에서 스트레칭으로 함께 몸을 푼 후, 본격 산행을 위해 12선녀탕 계곡으로 접어들었다.
가랑비가 내리는 설악의 푸른 숲 사이에 놓여진 등로는 거친 산길이 아니라 왠만한 등로에는 돌이 깔렸으며, 사면을 지난다든지 계곡을 건너야 하는 곳에서는 어김없이 목재데크가 이어져 있는 게 도심의 공원 산책로와 다름 아니었다. 어차피 등산이라는게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불확실성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자기만족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이건 지나칠 정도다. 산을 찾는 인파가 엄청나게 불어났기 때문에 이런 식의 탐방로가 산을 더 보호하는지는 판단키 어려우나 도심의 번잡함을 피하여 산을 즐기는 이들의 관점에서 보면 애석한 마음이 드는 것 또한 사실이다. 쉽지 않은 문제다.
등로 초입
남교리에서 오르면 만나는 12선녀탕의 첫 폭포.
매봉 아래에 있다고 하여 '鷹峰폭포.'
비에 젖은 금마타리
12선녀탕 중 백미, 복숭아탕.
낙수량이 부족한 게 아쉽다.
폭포수가 떨어진 沼는 잘 여문 복숭아처럼 보인다.
허나 그건 대외적일 수 밖에 없는 점잖은 표현.
수십년전 학창시절, 들머리 조차 찾기 어려웠던 이 곳을 찾았었던 이원장님 曰,
'목욕하는 선녀가 눌러앉아 생긴 엉덩이 자욱이다.'라는 그 시절의 소회가 있었다.
그러니까, '12선녀 히프탕...'
측면모습
만물의 근원인 물의 흐름및 웅덩이를 가리키는 숱한 용어가 있다.
沼 潭 湯 池 淵 澤 泉 湖 江 河 灘 海 ...
이 중, 소와 담의 구분은 어떻게 할까.
궁금하다.
그 위, 2단으로 이어지는 폭포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할만하다.
그러면 나무 뒤에 잠자코 있다가 목욕을 마치고 나올 땐,
두 손으로 받들어 날개 옷을 바치련다.
무릎꿇고서...
참조팝나무
참조팝나무
이것도 참조팝나무?
고산에서만 볼 수 있는 朱木은 천년을 산다고 한다.
그것도 속을 비운 채로.
내게 있어서 주목에 대한 기억은,
어느 해 겨울.
정선의 장구목이로부터 올라 가리왕산에서 중왕산으로 러쎌 산행시
밤사이 내렸던 눈 무덤이 허리까지 잠기는 그 엄청난 순백의 향연과
산 길 한 켠으로 허허로이 속을 비운 채 언 땅을 딛고 서서는
새파란 잎 하나하나로 하얀 눈송이를 듬뿍 담으며
천 년의 어느 하루를 이어 가고 있던 주목의 처연함이 떠오르고,
그 보다 오랜 얘기로는,
군 제대를 앞 둔 즈음해서 나무 결이 고와 다들 조각한답시고
주목 동가리를 주야장창 손에 쥐고서 깎고 다듬던... 그런 기억이 있다.
찍고 찍히고...
30여명이 쑥 넘어가는 일행들의 산 걸음은 그리 바쁘지 않다. 비가 내린다고는 하나 그건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찌는 듯한 더위 먹고 오름 걸음하느니 보다는 이런 정도의 가랑비에 적당하게 식은 대기는 거친 호흡 달래는 데에는 한결 낫다. 등로 옆으로 간간이 피어 있는, 때로는 저편 바위 끝으로 위태롭게 붙어있는 들꽃에 지긋한 눈길 한번 없이 바쁜 산 걸음 할 이유는 없다.
누군가의 가리키는 손 끝을 따라 수십 개의 시선이 한꺼번에 모여지는 듯 하더니만 이내 여지없이 디카 질을 해댄다. 그러면서 외우려는 듯, 두어 번 그 이름을 반복하면서 등로로 삐져나온 젖은 수풀을 헤치며 저편 모퉁이로 연이어 사라지곤 한다.
박새가 꽃을 피우는 시기도 지금이다.
남교리에서 오르는 등로는 그리 급하지도 않으며 초기에는
나무데크로 이어지다가 정상 즈음해서는 이런 잔돌들이 깔렸다.
백당나무.
산수국 같기도 허구먼.
앤, 뭐지...
아직 덜 여물은 금마타리 몽오리도 이 비 그치면 막 터질꺼다.
'능선끝 쉼터'
오늘 오른 최고지의 이정목.
유일하게 본, 종덩굴.
누른 잎 끝을 보건데 아마 끝물인가 보다.
꽃개회나무.
얼른 봐서는 병꽃을 닮았다.
애잔한 연분홍 색으로 보건데, 이게 낫구먼.
병꽃은 희끄무레하게 퇴색된 게, 늘 끙끙 앓는 것 같더라.
북한의 국화인 산목련 (일명, 함박꽃)
대승령 인근의 범꼬리.
산꿩의 다리
다음 생을 준비하는 종덩굴
인제에서 속초를 넘어가는 한계령의 초입인 장수대에서 1시간 남짓하여 올라서면 대승령으로 닿는다.
령의 서 편으로는 남교리의 12선녀탕에서 올라서서 남설악의 경관이 빼어나는 안산으로 솟구치고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서북능선은 귀떼기청을 거쳐 중청과 대청으로 장엄하게 흘러간다.
서북릉은 설악의 주요 능선 중의 하나로 산악인들에게 종주 코스로 많은 인기가 있으며
잘알려진 '한계령'이라는 노랫말도 향토 시인이 여기 서북주릉을 걸어가면서 느낀
연작시의 일부로 산걸음을 되짚어 보는 아슴한 그리움이 있더라.
'대승령을 알리는 碑 라도 있으면...'
장수대 하산길에서 수액 자양분을 취하는 거대한 애벌레를 일행의 손등으로 옮겼다.
손가락으로 쓰다듬어 본 등은 토실토실한 살점이 차갑게 다가왔다.
남설악의 대승폭포는 금강산의 구룡폭포,개성의 박연폭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폭포 중의 하나로 불리운다.
골이 그리 깊지 않아 낙수량이라 할 것도 없는 애처로울 정도이나
본 장마에는 까마득한 허공에서 떨어지는 물줄기의 위세가 대단할 듯.
한계령 건너편인 남설악의 연릉들은 운무에 잠겼다.
산행 종료 즈음해서야 날이 개이기 시작하는게 아쉽다.
운무 속에서 머리만 잠깐 보이는 주걱봉
좌에서 고도를 세우며 일어서는 바위능선 아래는 44번 국도가 달리는
한계령 초입의 장수대가 있으며, 북으로 올라서는 바위단애의 우측으로 대승폭이 놓여있다.
장수대 뒷편, 남설악 능선으로 운무가 떠 다닌다.
6.25 전쟁 중 치열했던 설악산 전투에서 산화한 장병들을 기리기 위해 한식으로 건립한 장수대(將帥臺)
*
반듯반듯하게 잘 다듬어진 등로는 집중호우 이전보다 훨씬 편안한 길이었다. 마음같아선 울울한 수풀사이로 흐르는 계류를 따르다가 힘들 즈음해서는 등짐내리고 계곡물에 발이라도 잠깐 담그고 싶었다. 허나 내키는 마음과 달리 인공으로 조성한 산책로는 발길을 그 쪽으로 돌리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강제적이었다. 그건 산행내내 그랬다.
폭포 곁에서 가랑비 맞아가며 다들 급히 점심을 먹느라 애로가 있긴 했으나 생김새도 요상한 박쥐나물을 된장 찍어 쌈을 싸먹을 때, 입안 가득히 쌉싸레한 향이 퍼지던 그 맛하며 빗물 두어 방울쯤 섞인 본향에서 가져왔다는 복분자 술 한잔으로 입가심하던 그 운치마저 반감되는 건 아니다. 오래 전 등로가 없는, 때로는 산 짐승들의 희미한 발자욱을 따르다가 수풀 사이로 앞이 트이면서 느닷없이 나타났을, 하염없이 쏟아지는 폭포수를 처음 마주칠 때의 그 감흥… 그 건 아마 여기가 천국이었으리라.
모처럼 뵌 이원장님 그리고 이회장님, 여전하셨다. 향토 먹거리및 이것저것 준비하신 분, 그리고 간만에 뵙는 분 또 초면으로 함께 산 걸음한 분...일일이 반갑고 감사하다는말, 이제사 전한다.
*
건강과 체력을 위해 시작하게된 산행이 산정을 오르내리면서 저편의 경관을 바라볼때 마음으로 일렁이는 희열이 점차 산을 더 찾아가는 계기가 되었다. 그 덕에 다리에 힘이 제법 붙을 즈음해서는 숲 속 여기저기로 피어나는 야생화를 보는 새로운 재미가 쏠쏠하였다. 허나 이름을 알기는 커녕 낯선게 대부분이었지만 그것도 몇차례 대하다 보니 관심과 함께 귀동냥으로 알게된 정도였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식생들의 생태까지 안다는건 어불성설이고 사진으로 올리는 것 또한 거진 모르지만 인터넷 덕에 그 이름이나마 적어봤다. 그러니까 철저한 아마츄어의 시각이므로 그게 틀릴 수도 있고 모르는 것도 많다. 한 수 배운다고 해도 그게 잘 외워지지 않을 것 같다. 그건 확연하게 외관이 다른건 그렇다손 치더라도 얼핏 보기에도 고만 고만한 것 들의 이름이 제각각 인 것이 많다는 걸 알고 부터는, 부러 익히려는 마음 이전에 이미 질려버렸다. 알면 아는대로 모르면 모르는대로. 그렇다고 해서 가르쳐주는 걸 굳이 외면하겠다는건 더더욱 아니고, 머리가 아닌 그때 그때 마다 몸걸음하여 익히려 한다. 몇 번 반복하다 보면 '절로 알 수있지 않을까...'. 한마디로 '너무 편하게 알려한다' 라고 해도, 별로 틀리지않다. 산... 바쁠게 없다.
moldau
http://210.218.66.12/~hryun/MP3/Classic/스메타나-몰다우.as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