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북주릉을 걷다. 그리고 한계령에서 ... 091025

강기한 2009. 10. 28. 10:57

 

서둘러 버스를 내린다.

거침없이 달려온 속초가는 버스는 령의 중간지점인 여기 장수대가 아닌 고개 정상인 한계령이 정류소다.

새로 뚫린 춘천간 고속도로는 동서울에서 2시간 여남은 만에 다다르게 했다.

 

장수대에서 오르는 대승령은

좌로는 설악산에서 가장 긴 능선인 서북주릉이 시작되는

지근의 안산을 거쳐 12선녀탕이 있는 남교리로 내려서며

우로는 대청봉으로 장엄한 서북능선이 이어진다.

 

그러니까 남교리에서 안산을 올라 시작하는 것이 서북주릉을 온전하게 타는 것이나

만만찮은 거리는 적어도 입산부터 하산까지 이틀은 산에서 묵어야 가능하다.

 대승령에서 남교리 까지는 예전에 걸음있었다.

 

중청까지 21 Km라는 표지판 뒷편의 산은 만추다.

 

 

 

가을은 이내 올라선 발아래에서 무성할 뿐,

진종일 헤매이던 서북주릉이 그렇게 스산할 줄이야 이때만 해도 미처 몰랐다.

 

저 아래의 44번 국도는 한계령을 넘어 속초로 이어진다. 

 

 

 

금강산의 구룡폭포,개성의 박연폭포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폭포 중의 하나라는

대승폭포는 흘러 내린 물자욱은 진했으나 떨어지는 물이라고는

보기에도 애처러울 정도의 작은 낙수 두어 방울.

허나 비라도 오고 난 뒤 위에서 바닥으로 내리 꽂을 물줄기가 어떨련지

꼿꼿한 높이만 보고도 짐작은 할 수 있다. 

 

 

 

등로에 나와 앉아있던 메뚜기도 기력을 잃은 듯 움직임이 둔했다.

바쁜 걸음만 아니었던들 널 이리 소홀히 대접하지 않았을거다.

 

참 오랫만에 봤다.

어릴적 동네 뒤산에 가면 지천으로 뛰어 다니던 그 기억이 생생한데... 

 

아, 그러고 보니 뒷다리 하나가 없구나!

 

 

 

능선으로 드물지 않게 보이던, 주목 !

언제쯤 이처럼 속을 비우고 살아갈 수 있을까.

천년을 살아야 가능할까.

 

그런데, 비울 속이 있기나 한가.

 

 

 

가리봉과 주걱봉이 있는 가리능선이 서북주릉 우측으로 내내 동행했다. 

 

 

 

귀때기청봉이 보이고 대청봉이 희미하다.

 

 

 

雪嶽은 岳山이다.

서북주릉에서 한계령을 끼며 가지 내린 지능선은 죄다 첨봉으로 이어져 있었고

좌의 내설악에도 빼어난 바위들이 빼곡하였다. 

 

 

 

귀때기 청봉이 지근이다.

얼추 30분 정도면 오르려나 했었는데 너덜길이 만만치 않았으니...

 

이른 새벽부터 설친 탓에 아침은 커녕 여태 점심도 먹지 못했다.

휴게소에 산 옥수수가 아니었다면...

 

이 즈음 해서는, 어지간히 힘이 들었다. 

 

 

 

오름길이 그렇게 급한 경사는 아니었는데,

몇번이나 중간에서 걸음을 멈췄는지 모른다.

 

귀때기청에서 라면이라도 하나 끓일까 했는데... 그만뒀다.

취사가 문제가 아니라 입맛도 그렇커니와 여전히 절반 남은 거리가 마음을 바쁘게 했다.

복숭아 통조림과 옥수수로 간단하게 때운 후

커피한잔으로 마무리 지으며 푹 쉬었다.

 

산정은 늦가을의 허전함이 가득했으나

날은 덥지도 춥지도 않았으며 바람도 불지 않은, 산행하기에는 더 없이 좋았다.

 

허나 아쉬웠다.

'그래도 고산인데...'

 

 

 

남의 가리봉은 좀 더 멀어지긴 했으나 여전히 령을 가로 질러 우측으로 솟아있었다.

 

 

 

걸음은 다시 동을 향하면서 내려온 귀때기청봉을 뒤돌아 볼  즈음,

어느새 애잔한 '한계령' 의 음율을 읊조리고 있었다.

 

'저 산은 내게 오지마라 오지마라 하고 발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저 산은 내게 잊어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 내리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 처럼 살다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 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또 너덜을 지나고...

 

 

 

날은 맑은 편이었으나 그리 깔끔한 시야는 아니었다.

간간이 구름이 아래 위로 오르락 내리락 할 뿐,

이내 육신이 구름 속에 잠기긴 해도 그 곳만 벗어나면 멀쩡한 정도.

 

 

 

고사목 사이로 보이는 내설악으로 허전한 가을이 바위로 가득하다. 

 

 

 

 

마지막 너덜을 지날 무렵 다리에 경련이 왔다.

왠만하면 천천이 걸을까 했는데, 통증이 좀체 가시질 않는다.

준비한 침으로 우측 허벅지를 수십차례 찔러 경직된 근육을 푼다.

금새 맺힌 빠알간 핏방울이 곱다.

 

물 한모금 마시고 다시 동으로 이었다.

 

 

 

한계령 3거리

 

 

 

 

 

寒 溪 嶺

 
 
시인과 촌장의 하덕규.
그는 서북주릉을 가면서 죽음을 생각했단다.
'절대고독'
 
그 후, 한사 정덕수의 연작시 '한계령에서'를 발췌하여 곡을 만들었다.
(이는 나중에 알려진 사연이다.)
 
어찌되었건,
곡 전반으로 애잔하게 흐르는 리듬이 마음으로 흐른다.
 
詩를 쓴 이도, 曲을 쓴 이도 함께 느낀 그 감성이
지금 이 길을 걸어가는 내게는... 없다.
섦다.
 
뭇 가수들이 부른 한계령 노래 중에서,
장엄하게 흐르는 능선을 부드럽게 타고 흐르는 운율에 맞춰 아련하게 그려낸... 흔히 알고있는 양희은 외,
감정을 최대한 절제한 듯 했으나 이 보다 더 감성적일 수 없는, 마야의 한계령과
지계곡을 흐르는 시냇물이 암반으로 낙수되어 작은 허공으로 퍼지듯 파열하는, 고병희의 한계령이 좋다.
 
흐르는 곡은 고병희의 한계령이다.
 
 

 

 

능선의 고사목으로 설악의 저녁빛이 스민다.

 

 

 

어스러지는 붉은 햇살이 내설악의 바위 서면에도 널렸다.

 

 

 

설악의 가을 해가 넘어간다.

끝청에서 서편으로 저무는 노을을 본다. 

 

 

 

 

 

 

 

 

 

중청산장의 밤

 

 

 

 

 

나도 온종일 서북주릉을 걸었다.

 

애초 계획한 시간에 중청산장에 도착했다.

깔깔한 입맛이긴 하나, 라면 국물과  햇반으로 겨우 속을 채우고는

초저녁에 침낭으로 처진 몸을 밀어 넣는다.

몸은 고단해도 눈이 쉬 감기지 않았다.

 

글 한줄,

아니, 나의 언어 하나라도 건지면 좋으련만...

.

.

.

 

*

 

'主陵'이 아니고 왜 '紬綾' 일까.

다시 걸으면, 그 의미를 알 수 있을까.

 

 * 

 

장수대 à 西北紬綾 à중청산장 (9시간 40 소요)

 

08:50   장수대

   09:19   대승폭포

10:15   대승령

   13:59   귀때기청

      15:38   한계 3거리

17:52      끝청

   18:30   중청산장